내 묘비명에는 뭐라 쓸수 있을까

심경호
출간일 2018년 3월 16일

책의 부제(副題)가 눈을 사로잡았다. <옛 사람이 ‘스스로’ 쓴 58편의 묘비명 읽기>이다. 자기의 죽음을 예상하며 살아 온 삶의 흔적들을 돌아보고 애도하는 만시(輓詩,挽詩)이다. 즉, 이것은 “죽음에 대한 사색이자 곧 삶에 대한 사색이며, 자기 안의 숭고함을 되찾는”행위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자기 자신을 비로소 음미할 시간을 갖는 것, 그들은 죽음 앞에서 어떤 생각들을 적어 나갔을까? 그리고 내 묘표 혹은 묘지(墓誌)에는 무엇을 쓸 수 있을까를 생각게 된다.

첫 장을 여는 자찬묘지(自撰墓誌)는 고려 말 보문각 대학사를 지낸 김훤(金晅)의 것이다. 그는 “복숭아와 배가 문에 가득하다(문생들이 많은 것의 자부를 은유함)”며, ‘이만하면 괜찮다!’라고 했다. 과연 이처럼 내 한 평생을 만족스러움으로 술회해 낼 수 있을까? 내겐 무수한 시행착오와 근심, 모욕, 어리석음, 부박함이 먼저 떠오른다. 어찌보면 반백년을 넘어선 내 삶의 자취란 오욕(汚辱)의 세월인 것만 같기도 하다. 그래서 책 속 인물들의 내면(內面)세계를 기행하려는 욕구는 더욱 밀도 있게 다가서게 한다. 삶에 대한 자기 고백이 과연 얼마나 충실 할 수 있는 것인지.

수록된 대개의 인물들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이조. 예조, 호조, 병조 등 각조 판서, 참판, 대제학, 대사헌 등 소위 최고의 사대부 계층들의 것이다. 그래서인지 몇 안 되는 범인(凡人)의 자명(自銘)이나 자지(自誌)는 더욱 시선을 끈다.

“재주 없는 데다 덕 또한 없으니 사람일뿐.

살아서는 벼슬 없고 죽어서는 이름 없으니 혼일뿐.

근심과 즐거움 다하고 모욕과 칭송도 없어지고 남은 것은 흙일뿐.”

1512년 중종 대의 사람인 이홍준의 자명이다. 육신은 생전의 근심과 즐거움을 다 잊고 모욕과 칭송도 다 없어져 흙으로 돌아갈 따름이라는 이 허허로운 문장에서 달관의 늠름함이 느껴진다. “하루라도 아직 죽지 않았다면 그 하루만큼 아직 근심과 책임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人生蓋棺論定, 一日未死, 卽一日憂責未已)”라는 명나라 유대하의 말처럼 죽음으로 비로소 평안을 얻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임을 체득한 육신의 언어일 것이다. 읽어나가다 멈칫 유사한 자기 조롱의 문장들이 반복되는 것을 깨닫는다.

“규모를 시험 받았지만 본시 넓지 않았다.”

“결정해야 할 기로에서 우물쭈물하기만 했을 뿐….”

“성격이 본디 졸렬하고….자기 몸에서 터득할 수가 없었으니…”

“어려서부터 익혔어도 백발이 되도록 엉터리이다.(童而習之, 白紛如也)”

이러한 자기 폄하의 서술을 ‘이상적인 인물에 맞추어 스스로 꾸짖거나 조롱’한 것이라고 평하기도 하지만, 죽음이라는 절박함 앞에서 하는 언어이기에 외려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삶에의 열망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영,정조 대 노론계 학자로서 이조판서 등을 제수 받았으나 출사하지 않았던 박필주의 “성격이 본디 졸렬하고….자기 몸에서 터득할 수가 없었으니, 실제 얻은 것이 있다고 해도 결국 휩쓸려서 잃어버리고 말았다….지금 거의 70세가 박두했거늘, 여전히 오도카니 한낱 용렬한 사람일뿐이다….얼굴이 뜨거워 진다.” 라는 자지(自誌)는 ‘근대 이전(조선조)의 개인은 욕망하는 개인의 진리를 탐색하지 않았다.’는 실존적 존재로서의 미흡성이라는 진단을 전복시킨다. 수치를 깨닫는 것, 결여와 결핍을 깨닫는 것은 진정 삶의 열렬한 애정이요,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진경산수화로 잘 알려진 강세황의 기록 중 아내 유씨의 죽음에 대한 비통한 문장은 대제학의 자식으로 태어나 현달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처절한 회오(悔悟)와 사랑의 감정이 짙은 감동의 여운을 남겨준다.

“공인(아내 유씨)이 가난했던 것은 내가 살림을 모른 잘못이고, 공인이 곤란하게 지낸 것은 내가 과거를 하지 못한 잘못이며, 공인이 병을 앓은 것은 내가 치료하는 방법을 모른 잘못이다……나는 무슨 마음으로 얼굴을 쳐들고 이 세상에서 사람이라는 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자의식의 드러냄을 회피하거나, 자아의 대립을 직접 반추하지 않았던 당대의 사대부에게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진솔 담박한 정신과 마주하는 기쁨을 준다.

58편의 자찬비명을 통한 선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해의 기록물인 이 책은 이와 같은 숭엄한 자기 성찰의 변(辯)뿐만 아니라, 대개의 인물들이 조선 조 역사의 주체적 역할을 수행한 이들이기에 사적(史的) 사실의 주변을 거닐 수 있는 안목을 넓혀주기도 한다. 남한산성에 갇혀 논박을 거듭하던 김상용을 비롯하여, 성리학의 거두인 이황, 실학자인 유한준, 정약용, 서유구에 이르는 인물들이 스스로 써내려간 비명을 보는 것은 지적 횡재이면서 또한 우리네의 삶을 둘러보는 데 의미 있는 지표가 되어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