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

함정임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4년 12월 20일 | ISBN 89-374-8050-6

패키지 양장 · 46판 128x188mm · 220쪽 | 가격 9,000원

책소개

한국문화예술진흥원 2005 우수문학도서 선정불꽃 같은 사랑의 열정과 시대를 뛰어넘은 예술적 교감이뜨겁게 꽃을 피운 아름다운 현장의 기록 『춘하추동』은 화가 나혜석으로 알려진 어떤 여인의 삶을 ‘소설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그러나 『춘하추동』은 나혜석의 평전도, 그렇다고 완전하게 허구인 ‘이야기’도 아니다. 역사적 인물을 현재로 불러내거나 과거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고증하는 방식으로 쓰인 소설은 흔히 볼 수 있다. 그것은 등장인물에 대한 독자들의 친근감을 매개로 쉽게 소설 속에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이러한 장점 때문에 많은 소설가들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인물의 삶을 소설의 모티프로 삼곤 한다. 만일 함정임도 그러한 형식을 차용했다면 『춘하추동』은 조금도 새로울 것이 없는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1920년대에 일본으로 미술 유학을 떠나 유부남이었던 시인 최승구와 공개 연애를 하고,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쿄토제대 출신의 변호사 김우영과 결혼하여 구미 여행을 했으며,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명이었던 최린과의 염문설로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여자. R. 다큐멘터리 작가이자 유부남인 애인을 둔 서른두 살의 가은. 뜨겁게 사랑할 줄만 알 뿐, 결코 구차스러워지거나 배반할 줄 모르는 여자. R의 일대기 속에서 자기 자신의 긍정형과 부정형을 모두 바라보며 고통스러워하는 여자. 그리고 소설가 함정임. 함정임의 『춘하추동』이 매혹적인 소설일 수 있는 까닭은 바로 R이라는 인물-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의 얼굴을 빌려 작가 자신을, 진짜 살아 숨쉬는 예술가 함정임의 얼굴을 그려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리고 있는 초상화가 내뿜는 그 차갑고도 뜨거운 불꽃의 마력은 여전히 신비롭고도 강력한 힘을 가졌다.

편집자 리뷰

1990년 등단 이후 일곱 권의 소설 단행본을 출간한 작가 함정임의 여덟 번째 책 『춘하추동』은 작가에게 남다른 의미를 가졌다. 단편소설집은 다섯 권을 냈지만 장편으로는 두 번째라는 점도 그렇고, 이제까지 작가가 추구해 온 문학적 지향성을 총체적으로 드러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존의 그 어떤 소설보다도 가장 예술적인 방식으로 작가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함정임에게 중요한 작품이다. 세 여자의 초상 혹은 세 겹의 거울 ―사랑과 예술과 시대를 뛰어넘는 연대감으로 이룩된 독특한 메타 픽션 『춘하추동』은 실존하는 인물을 모티프로 해서 쓴 소설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의 모습 그 자체다. 그 어떤 소설에서도 작가가 이처럼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낸 적은 없다. 그것은 다른 규정이나 기억이 덧붙여지지 않은, 소설가 함정임을 투영하는 거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세 겹의 층을 가진다. 소설의 모티프가 된 화가 나혜석과, 소설 속에서 R로 암시되고 있는 나혜석의 생애를 재구성하는 다큐멘터리 작가 가은, 그리고 그녀를 쓰고 있는 소설가 함정임. 이 세 여자를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은 바로 예술이다. 이 소설은 여성으로 예술하며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묻고, 사랑과 시대와 생의 신고를 뛰어넘는 어떤 매혹적인 순간들을 포착해 낸다. \”『춘하추동』은 R의 일대기를 소설로 쓴 것이 아니다. 저술 작가의 평전식 소설이 아닌, 등단 이래 지금껏 내가 지향해 온 소설 기법으로 쓰인 ‘독립적인 메타(또는 액자) 소설’이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연구자나 평전 전문 작가가 아닌 소설가의 입장에서 R을 소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소설을 통해 그동안 묻혀 있었거나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을 만나 의미를 부여한 것은 열외의 소득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라혜석 정월(晶月) 나혜석은 1896년 수원시 장안구 신풍동에서 일명 ‘나 부잣집’ 둘째 딸로 태어나 수원 삼일여학교(현 매향여자경영정보고등학교)와 서울 진명여학교를 거쳐, 1913년 4월 오빠 나경석의 지원으로 도쿄 사립여자미술학교 입학했다. 그곳에서 오빠의 소개로 유학생 문인 최고의 시인으로 명성을 떨치던 게이오 대학의 소월(素月) 최승구를 만나, 결혼을 전제로 한 공개 연애를 했다. 그러나 최승구에게는 이미 고국에 조혼한 아내가 있었다. 1915년 아버지의 결혼 강요로 1년간 학교를 휴학하고 여주 공립보통학교에서 교원으로 근무했다. 이듬해인 1916년 4월 도쿄로 돌아가 서양화 고등사범과에 1학년으로 복학했지만, 첫사랑 최승구는 폐결핵이 심해져 당시 전라남도 고흥의 고흥군수로 있던 형 최승칠의 집으로 요양을 가게 된다. 보고 싶다는 최승구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 나혜석은 도쿄에서 고흥까지 찾아갔고, 나혜석이 다녀간 다음 최승구는 눈을 감았다. 1917년 7월, 최초의 여성소설 「부부」를 도쿄여자유학생친목회 기관지인 《여자계》에 발표한 것으로 추측이 되고(미발굴), 이듬해인 1918년 3월, 나혜석의 두 번째 소설이자 대표작으로, 현존하는 한국 최초의 여성 작가 소설로 꼽히는 「경희」를 《여자계》 2호에 발표했다. 이 소설은 아버지의 결혼 강요로 휴학한 채 수원과 여주에서 보낸 시절이 밑바탕이 되어 축첩 제도와 결혼 제도에 대한 비판과 한 여자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미래를 열어 나가려는 당시 나혜석의 번뇌와 의지가 고스란히 표출된 작품이다. 1917년 오빠 나경석의 주선으로 쿄토제대 법학과 재학생인 김우영을 만나 1920년 4월 10일 서울 정동 예배당(현 정동제일교회)에서 신식으로 결혼했다. 김우영은 나혜석보다 아홉 살 연상으로 상처했고, 전처 소생의 딸이 하나 있었다. 결혼 후 나혜석은 신혼여행으로 신랑 김우영을 데리고 첫사랑 최승구의 묘를 찾아가 비를 세우고 돌아왔다. (이 일화는 염상섭에 의해 『해바라기』로 소설화되었다.) 1921년 3월, 만삭의 몸으로 경성일보사 내청각에서 이틀 동안 유화 개인 전람회를 열었고, 행사는 대성황이었다. 같은 해 9월 남편 김우영이 만주 단동에 일본 외무성 관리인 부영사로 부임함에 따라 나혜석은 외교관 부인으로, 화가로, 문필가, 어머니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1922년 조선 총독부 주최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 1927년까지 매회 출품 입선했다. 1927년 일본국 외무성 관리인 김우영에게 장기간 벽지 근무에 대한 포상으로 구미 여행의 기회가 주어졌고, 나혜석은 세 아이를 부산의 시모에게 맡긴 채 부부 동반으로 유럽과 미국 여행길에 올라 7월 파리에 도착, 정착했다. 남편 김우영은 베를린으로 법률 공부를 위해 떠나고, 나혜석은 10월에 파리에서 천도교 교령 최린을 만나 가까워졌다. 두 사람은 11월 20일 파리 소르본 광장 가에 있는 셀렉트 호텔에 함께 투숙했다. 1929년 귀국 후에 최린과의 스캔들이 문제가 되어 나혜석은 1930년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이혼당했다. 그녀는 1929년 파리에서 돌아와 낳은 셋째 아들 건을 포함 네 자식과 생이별을 해야 했고, 이후 사회적인 냉담과 혹평이 지나쳐 화가로서 문필가로서 사회운동가로서 활동하는 데 암울한 상태에 빠졌다. 1933년 자전 장편소설 「김명애」를 써서 당시 조선일보 부국장으로 있던 이광수에게 보냈으나 발표되지 못하고 6.25 전란 중에 유실된 것으로 전해진다. 1934년, 김우영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고 이혼하기까지의 십여 년을 솔직하게 회고하고, 여성에게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도덕과 인습을 비판하는 「이혼고백장」이라는 사상 초유의 글을 《삼천리》에 발표했다. 이어 9월에는 최린을 상대로 ‘정조유린죄’에 대한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 이 사건이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 보도되었다. 이 두 사건을 계기로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심각한 고립 상태에 빠진 나혜석은 첫사랑 최승구와 남편 김우영 그리고 돌보지 못한 네 자식에 대한 회한을 가슴에 품은 채 수덕사와 마곡사, 해인사, 다솔사를 떠돌고 안양양로원과 청운양로원을 전전하다가 1948년 행려병자로 파란 많은 생을 마감했다. 라혜석의 또 다른 얼굴, 가은 나, 가은은 서른두 살의 여자다. 나에게는 M이라는 애인이 있다. M에게는 아내와 아들이 있다. 또 나는 중학교 때부터 읽었던 소설들의 첫 문장을 기억하고, 아버지의 숨겨진 여자로 일생을 살았던 작은어머니를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서양 최초의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생애를 그린 평전과 멕시코 출신의 여성 화가 프라다 칼로의 생을 바탕으로 쓴 소설을 번역하고, R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의 작가로 글을 쓴다. 주인공 가은은 사진작가이자 연인인 M의 소개로 다큐멘터리 감독인 박윤식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의 열정에 이끌려 R의 생애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물론 그것은 박윤식 때문에도 M 때문에도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R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떤 인간 속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한 사람이, 거울에 비친 자신을 자꾸만 바라보게 되는 심정인지 모른다. 그리고 R의 삶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R이라는 인물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나는 그녀의 뜨거운 예술적 열정과, 거침없는 사랑과, 시대적 조건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여성으로 예술가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용기에 매료된다. 하지만 동시에 결과가 뻔히 내다보이는 상황에서도 무모하게 불속으로 뛰어드는 그녀의 기승스러움에 견딜 수 없는 안타까움과 고통을 느낀다. 나는 냉정하게 분석하고 판단하고 차가운 정신으로 기록하는 관찰자로 머물지 못하고 그녀의 생 속으로 자꾸만 끌려들어가는 자신을 부정하려 애쓴다.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는 사이, M을 버려두고 스페인으로 떠났던 그의 아내가 되돌아오고, 나는 M을 잊어버리지도 간직하지도 못한 채 자꾸만 길을 떠난다. 도쿄로, 파리로, 수덕사로, 수원으로 R을 좇아 걷는다. 그런 나에게 이유항이 다가온다. 물고기를 잡아다 주는 남자 이유항은 M과는 전혀 다르다. 그는 젊고 그늘지지 않았고 생의 어떤 비애감으로 짓눌리지 않은, 그래서 응석을 부릴 줄도 아는 자신감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적극적일수록 나는 자꾸만 M의 기억으로 돌아간다. 혹은 R에게로 돌아간다. 그 끊임없는 오고 감의 여정이 마침내 끝나는 순간, 나는 R이 아닌 자신의 초상이 완성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내가 끝까지 사랑한 한 사람은 M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R이 불우하게 생을 마감했던 그 지점에서, 나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커다란 한 걸음을 내딛는다. 함정임―소설가, 예술가, 연인, 어떤 여자, 인간 함정임은 이미지와 서사를 대단히 독특하고 낯선 방식으로 결합시켜 끊임없이 새로운 결과물을 창조해 내는 작가다. 함정임의 소설은 언제나 대단히 세련되고 능숙하게 부조화의 세계를 조화의 세계로 탈바꿈시킨다. 그것은 거칠고 과격한 이미지나 사건의 전개 없이 시작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어떤 지점에 반드시 도달하고야 만다. 과도한 상상력이 난무할 때 빚어질 수 있는 부자연스러움이나 핍진성의 결여라는 함정을 피해 가면서도 독자에게 전혀 새로운 무엇을 바라보게 이끈다. ‘순간’을 응집해 내는 탁월한 문장들 때문에 함정임의 단편들은 예민한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깊이 각인되어 왔다. 그런 함정임이 이번에 『춘하추동』으로 긴 호흡을 가지고 하나의 주제를 끝까지 밀고나가는 장편의 힘을 보여준다. 함정임은 2년 이상의 시간을 나혜석의 일생을 치밀하게 조사하고 자료를 수집하며 보내면서도 정작 그것을 연대기 순으로 나열하거나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기본 틀로 삼아 상상력으로 변형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는다. 작가는 긴 시간을 나혜석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고 생각하고 상상하며 기다린다. 그러는 사이 끊임없이 고통스럽고 견딜 수 없이 힘들고 도망치고 싶을 만큼 시달린다. 스스로를 들볶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함정임은 나혜석이 아닌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액자식 구성은 이러한 과정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형식이다. 그리고 독자들은 그 속에서 나혜석도, 소설의 주인공인 가은도 아닌, 그 여인들을 통해서 스스로를 말하고 있는 어떤 여자 소설가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함정임은 몇 겹의 삶이 뒤엉킨 독특한 메타 픽션의 형식으로 나혜석의 삶을 재구성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초상화를 완성하고, 이 계보에 자신의 이름을 추가했다. 약 백 년 전의 여자, 정월 나혜석의 덧없는 사랑과 예술적 열정은 그녀의 발자취를 쫓는 나, 함정임의 그것에 의해 시간의 풍화작용을 딛고 지금 이곳의 동시대적 이야기로 생생하게 재조명된다.” ―신수정(문학평론가) 생의 곡진한 체험을 남다른 예민함으로 응시하고 무심히 지나쳐버린 생의 순간들을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오르게 만드는 부력을 가진 작가 함정임.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사랑을 했고 어떤 추억을 가졌고 어떤 만남과 떠나감들을 겪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점은 그녀가 끝끝내 자신의 수레를 밀고 간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녀가 밀고 가는 수레에 올라타는 순간, 독자들은 그 쓸쓸하고 아름답고 아프고 경쾌한 리듬에 맞춰 함께 나아가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함정임1964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다.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한신대 문예창작과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광장으로 가는 길」이 당선되어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소설집으로『이야기, 떨어지는 가면』『밤은 말한다』『동행』『당신의 물고기』『버스, 지나가다』 중편『아주 사소한 중독』과 장편소설 『행복』이 있다. 서양 최초의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평전『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시아』를 우리말로 옮겼다. 여행과 일상과 예술을 아름답게 엮어낸 산문집으로 『하찮음에 관하여』 『그리고 나는 베네치아로 갔다』 『인생의 사용』 『나를 사로잡은 그녀, 그녀들』 등을 펴냈다.

목차

동(冬) 도쿄 흐림 춘(春) 벚꽃 지다 하(夏) 해바라기를 따라가다 추(秋) 파리의 하늘 밑 동(冬) 한 사람을 사랑했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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