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물고기

함정임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0년 5월 15일 | ISBN 978-89-374-0344-7

패키지 양장 · 46판 128x188mm · 280쪽 | 가격 7,500원

책소개

질주하지 않고는 생의 상실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 가만가만 흔들리는 호수 물결 같은 일상, 그러나 들여다보면 균열된 상처투성이의 삶을 겨우 버티고 있는 현대인의 초상이 담담한 문체 속에 때로 아프게, 때로 슬프게 그래서 때로 아름답게 아로새겨 있다.

편집자 리뷰

함정임의 소설 한가운데에는 운명에 맞서 앞길을 열어 나아가는 굴강의 의지가 힘차게 뻗어 있다.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고통을 껴안고 폭풍의 한복판으로 온 삶을 던지는 거대한 의지와 \’저쪽\’을 향하는 뜨거운 열망이 장엄한 역동의 세계를 일구어 낸다.
-정호웅 (문학 평론가·홍익대 교수)
 
함정임의 이번 소설들에서는 떠나간 존재가 남긴 흔적들이 오히려 존재의 증명이 되는 삶의 아이러니를 목도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을 \’고통의 승화\’나 \’삶에 대한 긍정\’이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이 작가에게는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슬픔과 남겨진 자의 고통이 추상명사가 아닌 고유명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운명적인 별리를 잊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더불어 살아가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통으로부터 달려나오다가 고통과 함께 달리기 때문에 이 소설집은 고통에 바쳐진 헌사이자 치유를 위한 주술로 읽힌다.
-김미현 (문학 평론가)

치유를 위한 글쓰기  - [어떤 다다름으로 숨막힘은 트일 때가 있다]
함정임의 소설집 『당신의 물고기』(중단편 7편 수록)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당신의 물고기』는 자신의 업을 줄기차게 이어 달라는 남편 김소진의 마지막 다짐을 힘겹게, 꿋꿋하게 지켜 낸 또 하나의 작품이다.
생과 사의 기로에서 남편 김소진과 주고받은 마음들을 실명의 목소리로 담아낸 『동행』(1998년)이나, 짧았지만 찬란했던 김소진과의 만남과 5년 여의 결혼 생활을 애끓게 거슬러 올라간 『행복』(1998년)이 고통의 질식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는 일종의 생존적 글쓰기였다면, 이번 신작 『당신의 물고기』는 그같은 숨 막힘이 트이고 난 뒤 자기 치유를 위해 담담히 써 내려간 이른바 주술적 글쓰기인 셈이다.
소설 속 인물들의 훼손된 마음(왜곡된 샤먼)들을 정화, 해소시키고, 그럼으로써 작가 자신도 구원을 받는 그런. 우리 인생에 말없이 왔다가 큰 자국을 남기고 가는 것이 사랑과 죽음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그 둘에 훼손된 채 세상을 부유하는 사람들이다.
남편을 잃고 마음을 다잡을 수 없어 파리로 홀연히 떠나보지만 어디서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미망인, 느닷없이 닥친 혈육의 죽음으로 일말의 소통 가능성마저 철저히 박탈당한 여인, 창졸간에 두 아들을 잃고 평생 신산스런 삶을 견뎌 온 어머니, 아이엠에프로 파산을 맞고 임신한 아내에 대한 면구스러움을 벌충하기 위해 자살 소동을 벌이곤 하는 중년 남성, 죽은 애인의 아이를 임신한 채 망자의 흔적을 맴돌고 있는 미혼모. 함정임 소설을 채우고 있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상처에 홀리고 죽음의 상흔이나 기미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질주하지 않고는, 은빛 비행기에 몸을 실어 이륙하지 않고는 생의 상실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다. 가만가만 흔들리는 호수 물결 같은 일상, 그러나 들여다보면 균열된 상처투성이의 삶을 겨우 버티고 있는 이 같은 현대인들의 초상을 함정임은 담담하지만 촘촘하게 풀어 나간다. 그러나 함정임의 소설은 슬픔과 자기 연민의 넋두리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랑과 죽음은 안타까움과 두려움을 남기지만 그것이 없으면 인생이 빛을 잃는다는 진리에까지 도달하고 있다.
       
 고통과 더불어 달리기- [더 이상 상처받을 일도 원망할 일도 없이살아가야 한다면 그보다 더한 지옥은 없을 것이다]
사랑과 죽음은 지나갔지만 상처받고 남겨진 자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권두 작품 「골프 클럽 파티」는 산 자로서, 그리고 상처받은 자로서 자기 삶을 방어하는 함정임의 방식이 얼마나 성숙한가를 잘 드러내 주는 작품이다. \’달리는 여자\’라는 이색적인 부제를 달고 있는 「골프 클럽 파티」는 제4회 <21세기 문학상>  심사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작품의 두 여주인공 미나와 승희는 사랑하는 남편과 사별하고 프랑스 파리에서 힘든 시간을 견뎌 내고 있는 여인들이다. 이 둘 모두 고통을 견디기 위해 마냥 달린다. 미나와 승희는 자매처럼 서로를 아끼던 대학 동창생으로, 골프 클럽 파티에서 우연히 재회한다. 밤마다 홀로 캠퍼스 광장을 달리던 승희. 미나를 매혹시켰던 그녀의 이국적 화려함과 당당함 뒤에는 그녀를 달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깊은 상처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 엄마로부터 버림받고 아버지를 따라 외국을 전전해야 했던 승희는 \”아웃사이더에게 주어지는 선입견과 무관심을 자유로움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고독감과 상처에 이미 익숙해진 것이다. 7년 만에 만난 승희는 여전히 혼자다. 그사이 남편의 죽음까지 끌어안아야 했던 그녀는 \’몇 겹의 인생을 더 살아낸 여인네처럼\’ 지쳐 보였지만 7년 전 그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더 치열하게 달리고 있다.    
     일요일 새벽 5시면 개선문 앞 광장에 수천 명의 애들이 모여. 롤러 블레이드를 타고      파리 시내를  달리는 거야. 세상의 어떠한 잡음도 틈입시키지 않고 오직 나 자신이 선     택한 소리만으로 두 귀를 꽉 채운 채 종횡무진 스피드를 즐기는 거지. (36페이지)                   \”긴 머리를 휘날리며 젊은 물결에 휩쓸려 롤러 블레이드를 타고 파리 시내를 누비는\” 30대 중반의 상처 깊은 여성, 이 강렬한 이미지는 언뜻 보아 삶의 중심을 상실한 사람의 우직한 돌진이나 자포자기적 투기(投棄)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안쪽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는 상처입음이며 그 상처들과의 동행이며 그 상처들의 핏빛 폐허 위에 무엇인가를 싹 틔우고 세워 올리는 것이란 사실을 정시하는 깊은 눈이 그 안쪽에 빛나고 있다.
     더 이상 상처받을 일도, 원망할 일도 없이 10년이고 30년이고 살아가야 한다면      그보다 더한 지옥은 없을 것이다. 송두리째 뿌리 뽑혀 거덜 난 사람만이 그럴 것이다.      롤러 블레이드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달리고 있는 너를 만나서 반가웠다. 네가 달리고      있는 한 우린 어딘가에서 또 만나게 되겠지. (38페이지)         모든 삶의 상처와 아픔의 무게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모습은 「호수 저쪽」에서도 목도된다. 「호수 저쪽」의 장서진은 후배의 소개로 우연히 만난 송철규와 급속하게 사랑에 빠진다.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서진의 삶은 철규에게 결혼한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는 괴로움, 후배가 연모하는 남자임을 알면서도 사랑을 지속하는 데 대한 죄책감, 이제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버린 애인에 대한 격렬한 그리움까지 겹쳐 하루하루가 힘겹다.
    광장을 선회하는 아이의 은빛 자전거와 어두운 허공에서 더욱 강렬하게     빛을 뿜으며 선회하는 비행기를 지루하게 보면서 여자는 어렴풋이     떠나고 싶다는, 아이의 빛나는 은빛 자전거에 실려, 추락의 공포를 딛고    어디론가 지상을 이륙하는 비행기에 실려, 어디론가 먼 곳으로 가고 싶다는    욕망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97페이지)                 그러나 그토록 애타게 그리워하던 송철규는 이미 후배의 애인이 되어 있다. 기대감과 그리움을 해소하기 위해 날아간 프랑스에서 서진은 오히려 사랑의 상실로 인해 고통의 정점에 서게 된다. 이제 \”허공 어디에도 은빛 비행기는 보이지 않는다.\” 어떠한 해결점이나 출구가 보이지 않는 막막한 운명 한가운데서 서진은 되려 고통 전부를 수용함으로써, 그리고 다시 \’저쪽\’을 향하는 의지를 분기시킴으로써 고통에서 해방된다.
     에펠탑이, 마치 살아 있는 거대한 짐승처럼 빛을 뿌리며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여자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탑신을 꼭대기까지 올려다보며 마치    자기의 몸이 불꽃을 내며 소멸하는 듯한 격렬한 열기에 휩싸였다.    그 속에서 여자는 고통의 절정에서 해방되는 나른한 쾌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여기에서 무엇인가 해결을 볼 수 있을 것 같았지. 그래,      이제 알 것 같아. 출구를 찾지 못할 때, 해결을 볼 수 없을 때는, 스스로      타오르며 해소되는 길도 있다는 것을. 저기, 저쪽처럼. (116페이지)              
        
  남겨진 자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축제의 날과 같이」는 고통의 한복판에서 꿋꿋하게 삶을 굴려 나가는 시어머니의 모습을 좇고 있다. 교통사고로 졸지에 두 아들을 잃고 이제 작은 며느리의 병간호를 위해 짐을 꾸리는 시어머니. \’나\’는 한때 \”참척의 고통\” 속에서도 \”수그러드는 기색 없이 왕성하게 돋아나는 어머니의 식욕을 보며 몸서리를 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와 마주 앉아 함께 짐을 꾸리는 동안 \’나\’는 어머니의 그같은 원초적 생명력이야말로 상처를 견디게 하고 살아남은 자를 계속해서 살아가게 하는 위대한 추동력임을 깨닫는다.
함정임은 묵묵히 걸레질을 하는 이 시어머니의 \”살진 등\”에서 죽음 못지 않게 엄숙하고 소중한 것이 삶이며, 죽음은 지나갔지만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값진 메시지를 읽어 낸다.    「별은 빛나고」 역시 눈길이 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함정임은 독특한 삶의 글정에 도달하고 있다. 교통사고로 인한 남편의 죽음과 낙태. 더 이상 고통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주인공 인희는 자살을 결심하고 섬으로 향하는 길에 사촌 오빠 순재를 방문한다.
아이엠에프로 경제적 파산 위기에 몰린 순재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삶을 옹색하게 꾸려 가고 있다. 그날 밤 순재는 약간의 무게도 버티지 못하고 부러지는 감나무 가지에 줄을 메고 자살을 시도한다. 이미 두 번이나 벌였던 순재의 자살 소동은 임신한 아내에 대한 면구스러움을 벌충하고, 자식에게 누가 될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머니에 대해 죄책감을 덜어 보려는 제스처일 뿐이다.
인희에게 순재는 \”마주 오는 사람과 부딪치지 않게 하기 위해 등불을 든 눈먼 장님\”이며, 감나무는 \”자살자를 막기 위해 다리 위에 설치한 창살\”이다. 함정임은 순재의 절망을 가짜라 비웃지 않는다. 나름의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등을 든 장님 순재에게서 자살 방지용 창살을 만들고 감나무 가지를 선택하는 인간의 희극성을 발견할 뿐이다. 「별은 빛나고」는 자살의 사건에서 비장함을 없애 버리고 그 희극성을 발견함으로써 \”별은 빛나는데 환장하게 죽고 싶은 시절\”이지만 \”더럽고 치사해서 안 죽는다.\”라는 삶의 긍정을 이끌어 낸다.
 
 상처들 사이의 대화, 타인의 고통 끌어안기
  함정임의 소설들은 시종 따뜻함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자신의 곤고한 삶은 물론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든 가엾은 존재들을 넉넉히 껴안기 때문이다. 「검은 숲」은 공간에 대한 상징적 성찰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상처를 함께 나누려는 노력이 지속되는 한 \”검은 숲은,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작가의 전언이 빛난다.    
 이혼 수속 중에 남편의 죽음을 맞이한 경연은 \”뒤틀린 현실이 얹어준 노여움과 비참함\”에 지칠대로 지쳐 있다. 해외 취재차 파리로 날아간 경연은 힘들 때마다 자신의 의지처가 되어 준 영우를 만나기 위해 독일로 향한다.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파리와는 달리 슈투트가르트는 완벽한 단절과 고립을 실감케 하는 아주 낯선 이방이다. 게다가 그녀를 마중나온 사람 또한 영우와 가까워 보이는 유진이란 낯선 여자다.
그러나 \”지긋지긋한 일상\”의 시간으로부터, 숨막히는 고통의 현실로부터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하던 경연은 이탈과 망각의 해방감 대신 \”의식의 단층이 툭 끊어지는 것 같은\” 현기증과 한국에 두고 온 어린 아들이 자신을 애타고 부르고 있다는 환청에 시달린다. 가지고 있던 시계마저 몽땅 고장나는 바람에 \”시간 개념 자체가 완전히 허물어져 버린\” 이국땅에서 경연에게 심리적 시계가 되어 준 이는 바로 유진이다.
영우를 사이에 두고 서로 긴장할 수밖에 없는 관계이면서도 동일한 상처를 가지고 있기에 그들은 서로 소통할 수 있고 보듬을 수 있다. 유년시절 언니의 죽음을 겪어야 했던 유진은 언니와 닮은 경연에게 해묵은 상처를 고백한다. 경연 또한 유진을 통해 회피하고 싶었던 자신의 상처와 대면하게 되고 나아가 타인의 고통까지 끌어안는 포용을 배운다. 어둡고 스산한 상처의 숲에 한 줄기 빛을 틔워주는 것은 낯설게만 보이는 또 한 사람의 상처이다. 상처야말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진정한 소통과 교류를 가능케 한다는 함정임의 통찰이 더욱 절박한 공감을 낳고 있다.  
함정임의 소설은 읽지 말고 겪어야 한다
  신작 『당신의 물고기』에는 죽음이라는 배음(背音)이 짙게 깔려 있다. 아마도 작가 본인의 고통스런 체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함정임은 글쓰기의 힘을 바로 이 농밀하고도 핍진한 체험 세계에서 퍼올린다. 지리멸렬한 일상사의 나열이나 한가로운 에세이 난발로 너무도 쉽게 소설을 채워가는 요즘, 『당신의 물고기』는 그 체험의 진정성과 문학적 내공의 깊이로 승부한다. 독자들은 함정임의 소설을 다시 한 번 겪어 내야 할 것이다.

목차

1. 골프 클럽 파티 – 달리는 여자2. 검은 숲3. 호수 저쪽4. 축제의 날과 같이5. 별은 빛나고6. 가난한 마음7. 당신의 물고기작가의 말

작가 소개

함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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