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지나가다

함정임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2년 7월 12일 | ISBN 89-374-0396-X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40x214 · 260쪽 | 가격 8,000원

책소개

▶ 함정임은 ‘삶은 미적이어야 한다’고 믿는 작가다. 이 ‘유미주의자’의 다섯 번째 창작집 『버스, 지나가다』는 그 믿음을 날렵하게 그려낸 인상적 소묘다. -조선일보

편집자 리뷰


아름다운 환각에 닿은 존재와 운명의 목소리들
뼛속 깊이 스며드는 존재론적 고뇌 속에서 두 남녀는 모두 초원에서 말을 달리는 유목민의 꿈을 꾼다. 버스는 다시 올 것이고, 사라진 자신의 몽고반점을 찾는 여자와 남자는 다시 한 번 유목민의 자유로운 삶을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함정임은 『버스, 지나가다』에서 적절하고 풍부한 상징과 은유로 현대인의 단절과 고립, 그리고 인간 교류에 대한 희망을 잘 형상화시키고 있다. – 김성곤(문학평론가)
함정임 소설의 운명은 한 세기나 두 세기에 한번 피는 꽃과 같은 것. 운명과 일상의 변증법은 아름다움의 환각에 이르렀다. 운명과 일상과 욕망이 만나는 지점에 피어난 고목의 환각, 그리고 입속에서 웅웅거리는 언어들. 나는 우리 소설사에서 운명을 초월이나 구원으로 환원시키지 않고 운명과 일상의 변증법을 이처럼 잔혹한 지점까지 추구한 작품들을 알지 못한다. – 김동식(문학평론가), 작품 해설에서
함정임의 소설 『버스, 지나가다』는 작가의 재기랄까, 문장력이랄까, 혹은 말의 울림이랄까, 요컨대 연기처럼 가볍지만 쉽사리 공중분해되지 않는 묘한 분위기를 창출해내고 있다. – 김윤식(문학평론가)
함정임 작품집 『버스, 지나가다』는 작가의 다섯 번째 소설집이며, 2000년 여름부터 2001년 겨울까지 씌어진 소설 11편을 모은 것이다. 특히 작가는 최근 번역서 『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시아』(2001)와 산문집 『하찮음에 관하여』(2002)를 내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여 왔다. 이번 작품집은 농익은 글솜씨와 숙성된 작가 세계를 바탕으로 한 빼어난 작품들을 한데 모았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들 세계에 출몰하면서, 소통하려는 의지를 북돋지 않으면서, 소통되는 것들에 가만 기울어지면서, 한 시절을 살았다. …… 이 책은 그런 내 마음의 산물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함정임 문학의 세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함정임의 소설들은 특유의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리고 작가에게서 『삶은 허공을 걷는 헛걸음질과도 같은 것이며 허공에 흩날리는 벚꽃과도 같은 것이다』(작품 해설). 그런 나직하고 조용한 삶을 사는 인물들은 운명이라는 거창한 삶과 맞서거나 대결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비)운명적인 겸허함, 또는 존재의 운명적인 수동성을 보여준다. 함정임 소설 속의 인물들이 이러한 존재의 수동성을 보이는 것은, 작가의 이력과도 관계한다. 작가 자신의 개인사와도 같이, 소설 속 인물들은 사랑의 상실과 죽음의 상흔을 겪은 후 비로소 운명과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이 운명은 또한 합리적 설명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풍부한 상징과 은유로 운명을 그리되, 삶을 특정한 목적에 의해 인도하지 않는 것. 세계와 주체 사이에 잠재되어 있는 우연성의 영역을 운명의 형식으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방식. 작가는 그러한 관조적 태도를 그의 인물들을 통해서 형상화하고 있다.
『버스, 지나가다』는 『운명 없이 사는 삶』을 그린, 운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나쳐가는,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물지 않는 버스의 풍경처럼, 우연에 치우친 생의 단절적 측면을 스케치하듯 그려냈다. 작가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일상과 운명을 몇 개의 상징적 고리로 엮어서 들려준다.
우체국 직원 송연에게는 두 번의 운명(아버지, 그녀의 첫 남자)이 있다. 아버지가 죽은 날, 그녀는 남자와 관계를 가졌고 북경반점 이층에 방을 얻었다. 얼마 후 남자는 죽었고 그후 십년 동안 남자는 없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버스 지나가듯이 그녀의 곁을 스쳐갔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 고아나 다름없는 처지. 남자는 여자가 근무하는 우체국에 몽고에 보내는 편지를 가져온다. 둘은 모두 몽고에 대한 환상에 젖어 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남자는 우연히 설치 미술 작품 『몽고인의 텐트』를 보았고, 여자는 방을 제공해 준 중년 남자가 죽었을 때 몽고의 환영을 보았다. 여자는 방을 제공해 준 중년 남자가 죽었을 때 몽고를 떠올린다. 그들의 삶의 목적이 결코 몽고인 적은 없다. 그렇지만, 여자는 편지를 내미는 남자의 『공룡 가슴뼈 화석 같은 손』을 바라보며 고대의 환영에 사로잡힌다. 잠시잠깐의 욕망일 뿐인데도, 여자의 유목민적 상상은 단절과 고립을 소통에의 희망으로 바꾸어놓는다. 남자가 가고 난 길은 흐름 없이 고요하다. 그렇지만, 누군가를 맞이하듯이 버스가 다시 올 것이라고 여긴다.
『사랑인가』는 운명이 비유적인 차원에서 이야기된다. 주인공 남자는 포항에서 실내 인테리어를 하는 매형 집에 얹혀 살면서 피아노학원을 온통 푸른색으로 칠해 주었다. 그리고 말이 없는 여자를 만났다. 성악을 하는 그 여자는 갑자기 목소리를 잃었다. 무의식을 가지고 운명 없는 삶을 도박하듯이 살아가는 남자와, 성악가라는 운명을 잃어버리고 운명 없는 삶을 사는 여자. 사랑도 없이 순식간에 섹스를 했다. 그리고 남자는 무심결에 베네치아로 갈 거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여자와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서 베네치아로 갈 거라고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의 말 한 마디가 운명 없는 삶을 살아가는 여자의 욕망을 불러일으켰고 그녀가 욕망하는 운명의 기호가 되었다. 수개월이 지난 후, 여자를 다시 찾은 남자는 다만 이 말을 그녀의 언니에게서 들을 뿐이다. 『베네치아에 갈 거라고 했어요. 한사코 막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그애에게 꿈이 생겼다는 것이 얼마나 큰 희망인가를.』 운명은 마치 베네치아처럼 무의미하면서도 우연하게 만들어진다.
『사랑처럼』은 현재에서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이다. 과거의 회상에서 더 이상 진전되지 않는데, 그 과거는 두 여자의 처녀성 상실에 관한 것이다. 대학 시절 영신은 프랑스 여자 에브에게, 그리고 재인은 시위 도중에 올라탔던 트럭 운전수에게 처녀성을 주어버린다. 그리고, 십여 년이 지난 후 『그』가 『그녀』를 만나자는 연락을 해온다. 여기서 『그』는 트럭 운전수이지만, 동시에 에브이기도 하다. 트럭 운전수의 만나자는 연락에 대해서 재인 대신에 영신이 나갔다가 튤립나무만 보다가 돌아온다는 것으로 작품은 끝맺는다.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사건과 인물의 전체성을 다루고 있지도 않다. 다만, 사건 이전이나 이후 또는 사건의 주변만을 다루고 있다. 소통과 지시가 없는 지점에서 이러한 운명을 기다리는 존재는 수동성의 존재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사건의 부재를 형상화함으로써, 운명 없이 살면서 운명이 되돌아올 자리를 마련하고 사는 삶을 그려보인다.
『소풍』은 욕망의 우연성을 드러내 보여주는 작품이다. 『소풍』은 가족들과 함께 바람 쐬러 간 이야기와 낯선 남자와 바람을 피운 이야기가 병치되어 있다. 수주의 어머니 월아네의 생일을 맞아 가족 모두가 고기 구워 먹으러 나들이를 간다. 수주는 신도시 외곽에서 채팅으로 만난 남자와 서로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번개팅(=섹스)을 한다. 이 작품에서 가족 이야기와 성에 대한 이야기는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성은 한 개인이 가족과 무관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이다. 다만 여기서는, 남자가 접어주는 종이 개구리와, 수주가 조카들에게 접어주는 종이개구리를 욕망을 대신하고 있는 메타포로 등장시킨다.
함정임의 이번 작품집은 그녀의 앞선 작품들과는 또 다른, 그리고 다른 일군의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과는 다른, 하나의 지층을 깊게 형성하고 있다.
이번 작품들에서 작가는, 운명적인 사건과 일상적인 사건의 변주를 소설적 탐험의 주 대상으로 삼는다. 그 탐험에는 일상을 넘어서거나 운명을 선험적으로 채택하는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것이 아니다. 구원의 가능성과 초월의 지평이 설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함정임 소설은 운명을 초월이나 구원으로 환원시키지 않고, 일상 속에서 운명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한, 처절한 몸짓들이다.(해설 참조)

목차

버스, 지나가다조용한 날들의 계단사랑인가사랑처럼그의 즐겨찾기그녀는 노래 부른다꽃구경꽃을 본 적이 있다치사휴일소풍
작품해설 / 김동식_운명이 되려다 만 것에 대하여작가의 말

작가 소개

함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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