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이야기

원제 Companion Piece

앨리 스미스 | 옮김 김재성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4년 7월 24일 | ISBN 978-89-374-5631-2

패키지 양장 · 46판 128x188mm · 304쪽 | 가격 17,000원

수상/추천: LA 타임스, 가디언, 워싱턴 포스트

책소개

앨리 스미스의 ‘계절 4부작’의 뒤를 잇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걸작

편집자 리뷰

앨리 스미스의 ‘계절 4부작’의 뒤를 잇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걸작

 

 

영국 《타임스》의 문예 부록인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가 선정하는 “현재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뽑힌 앨리 스미스의 걸작 ‘계절 4부작’에 이은 자매편인 『이어지는 이야기』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계절 4부작’은 브렉시트 이후 격변하는 영국 사회의 현재를 담기 위해 앨리 스미스가 펭귄 출판사와 기획한 프로젝트로, 브렉시트 찬반 국민 투표가 실시된 2016년 첫 권인 『가을』이 출간되었고,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한창인 2021년에 마지막 권인 『여름』이 완간되었다. ‘계절 4부작’ 시리즈는 “포스트 브렉시트를 본격적으로 그려낸 최초의 소설”로 평가받았고, 『가을』은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마지막 작품 『여름』은 최고의 정치 소설에 수여되는 조지 오웰 상을 받았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계절 4부작과 내용상 직접적으로 연관되지는 않으나, 팬데믹의 마지막 시기를 지나는 기간 동안, 격리되고 떨어져 지내던 사람들이 기이한 인연 또는 자그마한 기적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전작들과 같은 결을 공유하고 있다.

 

 

■‘도요새(curlew)와 통행금지(curfew),

선택하세요.’

 

팬데믹이 막바지로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화가 샌드 그레이는 대학 동창인 마티나 펠프로부터 예상치 못한 전화 연락을 받는다. 박물관 보조 큐레이터로 일하는 마티나는 귀중한 중세 공예품인 ‘부스비 자물쇠’를 프랑스에서 받아와 입국하려다가 여권 문제로 공항 검문소에 붙잡혀 한나절 동안 빈방에 감금돼 있었다. 그녀는 그 방에 혼자 있을 때 들은 기이한 말소리에 관해 샌디와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사실 샌드 그레이와 마티나 펠프는 같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었으나 접점이 거의 없는 사이다. 감수성과 언어 감각이 남다른 샌드는 그 시절 반전주의자에 예술을 사랑하는 히피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고, 마티나는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먼, 보수적이고 실용적인 주류 학생들의 세계에 속해 있었다. 수업에서 과제로 내준 e. e. 커밍스의 시 분석 레포트를 제출해야 했던 마티나는, 시 자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친하지도 않은 샌드를 불쑥 찾아와 시를 해석하는 법에 대해 배운다. 두 사람의 인연은 그게 다였다.

 

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지고, 아버지의 집과 키우던 개를 지키며 병원에서의 소식을 기다리는 중년의 샌드는 몇십 년 만의 연락이 그리 달갑지 않았으나, 마티나가 겪은 그 빈방에서의 일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다. 감금실에 홀로 있던 마티나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도요새(curlew)와 통행금지(curfew), 선택하세요.’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걸 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후 샌드의 일상에도 기이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 어깨에 도요새를 얹은 소녀

 

마티나의 전화를 받은 얼마 뒤, 샌드는 아버지의 집에서 기이한 존재와 마주친다. 기다란 부리의 도요새를 데리고 있는 꾀죄죄한 차림새의 십대 소녀다. 소녀는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샌드에게서 신발 한 켤레를 요구한다. 그리고 쓰러져서 잠이 든다. 다음 날 일어나보니 도요새와 소녀는 사라지고 없다. 마티나와 샌드는 각자 겪은 이 기이한 일로 인해 몇 차례 전화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어느 날, 샌드가 머물고 있는 아버지의 집 앞에 웬 젊은 쌍둥이 여성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샌드에게 최근 자신의 어머니 마티나가 이상하게 변했으며, 샌드가 마티나를 유혹해서 그렇게 만든 것 아니냐고 따져댄다. 실용적이고 속물적인 삶을 살던 마티나가 돌연 삶의 아름다움과 신비에 취해 완전히 딴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사건들로 인해 샌드는 마티나의 온 가족과 차례로 만나게 되고, 그들은 아예 샌드의 집 근처에 이사를 오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한 고아 소녀가 있다. 글을 익힐 정도로 총명하며 손재주가 좋은 소녀는 마을의 여성 대장장이인 앤 섀클록의 도제가 된다. 당시 대장장이 일은 여성에게 일종의 금기였으나, 말굽을 박을 때 말을 섬세하게 달랠 줄 알고, 대장간 일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소녀는 앤 섀클록 밑에서 많은 것을 배워가기 시작한다. 소녀는 시대의 기술을 뛰어넘는 정교한 세공품까지 만들어내는 장인으로 성장하지만, 앤 섀클록이 병으로 사망한 후에 마을 사람들의 협잡으로 성폭행을 당하고, 일자리와 집을 잃고 떠도는 신세가 된다. 그리고 죽음의 문턱에서 소녀는 새끼 도요새를 만난다.

 

 

■ 거기 당신,

안녕하세요?

 

계절 4부작의 완결 직후 쓰인 소설 『이어지는 이야기』의 원제는 ‘Companion Piece’로, 직역하자면 ‘자매편’이라는 뜻이다. 이는 계절 4부작의 자매편이라는 뜻일 수도 있지만, 이 ‘companion’이라는 단어는 작품 속에서 다층적이고 중의적인 의미로 여러 차례 등장한다. 샌드의 늙은 아버지의 동무(companion)인 늙은 개이기도 하고, 병으로 쓰러지기 전에 아버지와 개가 공원에서 늘 만나던 다정한 소녀이기도 하며, 대장장이 소녀를 지켜주는 보호자와도 같은 도요새이기도 하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온갖 고단한 삶의 동반자가 되어주는 존재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앨리 스미스는 이 작품에서 ‘companion’ 외에도 영어의 여러 단어에 실린 참뜻을 되살리기 위해 각종 언어유희를 구사한다. 문학 작품의 단어를 표상으로 삼아 그림을 완성하는, 뛰어난 언어감각을 지닌 샌드의 분석을 통해 영어의 여러 가지 가능성이 탐구된다. 샌드를 무작정 찾아온 마티나의 두 딸 쌍둥이들은 소위 MZ 세대가 즐겨쓰는 각종 줄임말(IMO[In my opinion, 내 생각에는], NBD[No big deal, 별일 아닌], WFH[working from home, 재택근무] 등)들을 쏟아내며 샌드와 코믹한 말싸움을 벌인다. 또한 코비드로 인해 격리되고 멀어진 세상에서, 영어의 가장 대표적인 인사말인 ‘hello’라는 단어에도 주목한다. 타인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의 안녕을 확인하고, 온기를 건네는 수단으로서 갖는 말의 진정한 힘에 대해서.

 

고립된 삶을 살아온 샌드와, 속물적이고 실용적인 삶을 살아온 마티나, 그리고 마티나의 삶에 미친 샌드의 영향력에 이끌려 연이어 샌드를 찾아오는 마티나의 가족들. 이들은 ‘도요새와 소녀’, 그리고 신비로운 유물인 자물쇠를 통해 서로 ‘연결된다’.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500년 전의 대장장이 소녀가 만들어낸 이 정교한 자물쇠와 그녀의 동반자인 도요새는, 예술과 자연이 인간에게 미치는 근원적인 영향력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앨리 스미스의 전작인 ‘계절 4부작’과 연결된다.

 

브렉시트의 여파로 우경화되고 경직된 사회, 그리고 거기에 더해 연이은 죽음과 상실을 안긴 팬데믹의 시대를 통과하는 영국의 초상을 담아낸 걸작 ‘계절 4부작’은 예술과 자연을 통해 우리가 만나고, 연결되고, 사랑하게 됨을 일깨워 주었다. 그 시리즈에 미처 담아내지 못한 언어와 소통의 힘을 담은 후속작 『이어지는 이야기』는 고단한 삶을 살아 내는 이 시대의 우리에게 작가가 선사하는 화합과 사랑에 대한 빛나는 찬가다.

 

 

■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앨리 스미스와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근사한 일이다. 스미스는 엄격하면서도 민주적이고 따뜻하며 즐거운 지성을 지닌 작가다. _《LA 타임스》

 

팬데믹 시대를 담아낸 천재적인 이야기. 시적인 비전과 우화와 소극(笑劇),

역사가 맞물려 만들어낸 ‘계절 4부작’의 자매편. 《가디언》

 

재치가 번득이는 작품. 마치 우리의 삶처럼,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슬프며 아름답고 신비하다. 《옵서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신선한 눈으로 보게 하는 작품. 차갑고 우울한 나날을 환하게 밝혀 준다. 《뉴 스테이츠먼》

 

음악과 언어의 빛으로 살아 숨 쉬는 작품. 《워싱턴 포스트》

 

 

■ 본문에서

 

벽 너머로 기이한 목소리를 들었다고 내게 말해 주려고? 내가 말했다.

아니.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가 기이한 건 아니었어. 내가 묘사에 원체 약했지. 너도 기억할 거야. 그게 아니고, 그 목소리가 말한 것, 말한 내용이 기이했어. 그러고 보면 딱 기이하다고 할 수도 없는데, 달리 뭐라고 표현할지, 그게 말한 걸 어떻게 이해할지 모르겠거든.

뭐라고 말했는데? 내가 물었다.

도요새(curlew) 아니면 통행금지(curfew).

뭐라고 말했다고?

그거야. 그뿐이야. 그 낱말들뿐이었어.

도요새 아니면 통행금지? 내가 말했다. (29쪽)

 

나는 손안의 전화기를 들여다보았다. ‘몽상가’라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어쩐지 아직 끊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 그녀가 묘사한 대로 창문 하나 없는 공항 접견실의 싸구려 탁자 위에 부드러운 천으로 둘러싸여 펼쳐진, 담쟁이 아닌 담쟁이에 감춰진 자물쇠를 뜻밖에도 제법 생생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와 같은 사물은 어떤 장소든 변화시킬 수 있어서, 그녀가 일곱 시간 반을 갇혀 있었다며 묘사해 준 그런 유의 무미건조한 공간마저 무슨 박물관처럼 보이게 만들 것이다. (35쪽)

 

나는 이불을 밀어젖혔다. 그리고 일어나 앉았다.

방 안 건너편 아버지의 개 또한 나 때문에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잠을 깨운 것이 그저 나였음을 깨닫고 도로 누웠다.

개는 보통 함께 있어 주는, 동무 같은(companionable) 존재다.

동무(companion)가 되어 주는(able).

고립되거나 수감되거나 외롭거나 그랬을 적에 온갖 뜻밖의 장소나 사물에서 우의(companionship)를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43쪽)

 

아버지의 손목시계를 내가 갖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만 해도 아직 작동하던 시계의 줄 안쪽에는 땀이 남긴 얼룩이, 아버지의 체취가 남아 있었다.

아버지의 안경을 내가 갖고 있었다. 그것이 들어 있는 해진 안경집 안쪽에는 아버지의 이름과 전전번 집 주소가 단정한 필체의 펜글씨로 쓰여 있었다.

아버지의 늙은 개를 내가 갖고 있었다.

나의 뚱한 아버지.

아버지의 뚱한 개. (51쪽)

 

그 꿈속에서 나는 온몸에 늑대 가죽 같은 걸 뒤집어 쓰고 있었다. 머리 위에도 늑대 머리를 얹어 거울을 보면 머리가 두 개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은 속이 빈 가죽이 아니라 제 몸을 내 어깨에 둘러 걸친 살아 있는 늑대였는데, 전혀 무겁지 않고 따뜻했으며 마치 히치하이킹이나 즐기듯 안락한 품새였다.

잠이 깬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이래로 내가 어떤 형태의 늑대하고도 같이 다닌 일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오랜 세월이었다.

안녕, 늑대야. 꿈속에서 내가 말했다. 그동안 어디 있었던 거니, 정다운 친구?

거울 속에서 늑대의 눈이 나와, 그의 내면의 양과 눈길을 나누는 것을 보라. (75쪽)

 

IMO. 그녀가 다시 말했다.

음. 그렇군요. 내가 해명해야 할 거란 게 정확히 뭐죠? 내가 말했다.

우리 엄마를 더는 흔들지 말아 주세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자신들은 펠프 부인의 딸들이라고 말했다.

내가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모르는데요, 그 무슨 부인이라는…… (124쪽)

 

엄마는 웬만해선 웃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밤낮 웃어요. 아줌마가 방금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이 엄마에게 말을 하고 있을 때조차. 그리고 자꾸 무슨 말인가를 해요. 아주 큰 소리로요.

잠깐, 그 말은 대화를 한다는 거잖아요. 내가 말했다.

그게 아닌 게,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고요. 그냥 말들을 해요. 전에는 엄마 입에서 나온 적도 없었던 말들을.

어떤 종류의 말인가요? 내가 말했다.

그냥 서서 “정말 놀라워.” 이래요. ‘셀린’ 쌍둥이가 말했다. “인생이란 놀라워.” 그리고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같은 말을 한 다음 그대로 선 채 미소를 짓고 고개를 가로젓죠.

약간 사랑에 빠진 것 같은데요. 내가 말했다.(269~270쪽)

 

 

목차

선택하세요 · 11

마도요 · 115

통행금지 · 227

 

감사의 말 · 302

작가 소개

앨리 스미스

1962년 스코틀랜드의 인버네스에서 태어났다. 애버딘 대학교를 졸업하고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은 뒤 1995년 발표한 단편집 『자유 연애(Free Love and Other Stories)』로 데뷔작에게 주어지는 샐타이어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97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좋아해(Like)』에 이어 두 번째로 출간한 『호텔 월드(Hotel World)』(2001)는 언론과 평단의 열렬한 지지와 더불어 맨부커상과 오렌지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스코틀랜드 예술 협회 도서상과 앙코르상을 수상했다. 2005년에 쓴 『우연한 방문객(The Accidental)』 역시 맨부커상과 오렌지상 최종 후보에 오르는 동시에 휘트브레드상을 수상하며 앨리 스미스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했다. 이후 이피스 신화를 토대로 재구성한 『소녀 소년을 만나다(Girl Meets Boy)』(2007)로 클레어 맥클린상과 르 프린스 모리스상 후보에 올랐다. 2011년 『그리고 사라진(There But For The)』을 발표했으며, 2017년 ‘사계절 4부작’의 첫 권인 『가을(Autumn)』을 출간해 문단과 언론으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김재성 옮김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며 출판 기획 및 번역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나의 우울증을 떠나보내며』, 『밤에 우리 영혼은』, 『우상들과의 점심』,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 『푸른 밤』, 『불안한 낙원』, 『아름다운 폐허』, 『신디 로퍼』, 『한 문장의 철학』, 『501 위대한 작가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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