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

아서 밀러 | 옮김 최영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2년 5월 25일 | ISBN 978-89-374-6286-3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2x225 · 256쪽 | 가격 10,000원

책소개

집단 안에서 희생당하는 개인의 비극을 고발한 거장 아서 밀러마녀 사냥이 횡행하던 17세기 미국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을 무대로고발하는 자와 고발된 자의 일그러진 인간 본성이 그려 낸 비극적 초상
▶ 아서 밀러는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지극히 드문 성실함을 견지한 작가이다. — 해럴드 핀터▶ 극작가는 자신이 몸담은 나라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만일 그럴 수 없다면 그곳을 떠나야 한다.— 아서 밀러

현대 사회와 그 안에서 왜곡되어 가는 인간의 비극을 선명하게 그린 현대 희곡의 거장 아서 밀러.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시련』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286)으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1950년대 미국의 공산주의자 색출 운동인 매카시즘의 광풍 한가운데 발표된 시대의 역작으로, 당시 미국 사회의 왜곡된 모습을 1690년대 어느 폐쇄적인 공동체에서 일어난 마녀 사냥에 투영하여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청교도 이념이 지배하는 폐쇄적이고 금욕적인 개척자 사회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 그곳에 부임한 패리스 목사의 조카 애비게일은 영악한 소녀로, 일시적인 내연 관계에 있던 존 프록터를 향한 배덕적인 욕망에 불타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를 증오한다. 그러던 어느 날 패리스 목사는 흑인 노예 타투바와 동네 소녀들이 모여 벌인 집회를 현장에서 발견하고 마녀 행위의 징후를 의심한다. 애비게일은 작은 마을에 불기 시작한 마녀 재판 바람을 이용하여 엘리자베스를 제거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다른 소녀들을 선동하여 고발의 고리를 만든다. 고발당한 자가 자신의 생명을 보전하고 이익을 지키기 위해 다른 이웃을 고발할 수밖에 없는 파멸적인 연쇄 작용. 가장 약한 자부터 희생당하고 가장 고결한 자마저 옭아매는 이 소용돌이 가운데, 존 프록터의 정숙한 아내 엘리자베스는 마침내 마녀 혐의로 체포되고, 애비게일의 음모를 간파한 존 프록터는 아내를 지키기 위해 진실을 밝히려 나선다. 한 사회의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적 결속이 초래한 비정한 상황 가운데, 인간 본연의 욕망과 질투, 애정과 연민, 그리고 숭고한 희생의 장면이 펼쳐진다.
개인적 이익과 사회적 이념이 결부되어 집단적 광기로 번져 나갈 때 드러나는 인간 본성의 가장 추악한 진실을 생생하게 보여 준 이 작품은 매카시즘 열기에 대한 통렬한 풍자로, 사상을 의심받은 작가를 법정에 세운 당대 최고의 문제작임과 동시에, 오늘날까지 전 세계 무대 위에 상연되고 영화화되어 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문학이 사회에 제기할 수 있는 가장 준엄한 고발의 목소리로 여전히 살아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가장 나약하면서도 가장 강인할 수 있는 ‘인간 본성’의 양극성비극이 거대하면 할수록 그 발단은 매우 사소해 보인다. 딱딱한 청교도 규범이 지배하는 폐쇄적인 작은 마을에서 바베이도스 출신 흑인 노예가 동네 소녀들과 춤을 추며 강령 의식을 벌인다. 그 모임은 놀이라곤 없는 지루한 일상, 예배와 묵상으로 이어지는 조용한 나날 가운데 어른들 몰래 벌인 가벼운 배덕, 시시한 일탈일 뿐이다. 그러나 지나가던 동네 목사가 아이들 앞에 갑자기 들이닥치고, 자기 아버지를 발견한 목사의 딸이 경기를 일으키며 기절하면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절대적인 이데올로기가 집단의 규범을 이끌 때 생길 수 있는 끔찍한 비극을 다룬 『시련』은 동네 소녀들이 재미 삼아 시작한 한밤의 집회가 청교도 윤리에 가장 크게 위배되는 죄악인 ‘마녀 집회’로 오인받으면서 벌어지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보여 준다. 단지 매를 맞기 싫었던 소녀들은 자신들이 악마의 희생자임을 주장하고, 처음 단계에서는 힘없는 노파나 흑인 노예가 아이들을 유혹한 죄로 연행되며, 그 와중에 개척지의 면적을 가지고 다투던 이웃끼리 서로를 고발하기 시작하고, 불륜 상대를 잃고 싶지 않았던 소녀의 일그러진 정열이 불륜 상대의 아내를 지목해 집단 광기를 부추기면서 무고한 목숨들을 희생시킨다.
마녀 재판의 가장 잔혹한 점은 바로 다른 마녀를 지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목하면 자백으로 살 수 있고 이웃을 고발하는 일을 거부하면 교수형에 처해진다. 증거는 불문, 처벌은 무조건 죽음인이 극도로 불합리한 재판 과정 가운데 사람들은 평소부터 갖고 있던 작은 불평을 갑자기 고발의 도구로 사용하며 함께 살아가던 사람들의 죽음을 방관하기에 이른다.

메리 워렌 : 오즈번 부인이…… 교수형을 받게 됐어요!프록터 : 교수형이라고! (메리 얼굴을 들여다보며 큰 소리로) 교수형이라고 했니?메리 워렌 : (흐느끼면서) 네.프록터 : 부지사께서 그것을 허가하실까?메리 워렌 : 그분이 교수형을 선고한걸요. 분명히 그렇게 할 거예요. 그렇지만 세라 굿은 아니에요. 세라 굿은 자백했기 때문이죠. 그래요.프록터 : 자백이라고! 무엇을?메리 워렌 : 자기가 (기억하기도 두려운 듯) 악마와 계약을 맺고 악마의 검은 책에 자기 이름을 써 넣었다고요……. 자기 피로요……. 그리고 하느님이 쓰러지고 우리 모두가 영원히 지옥을 숭배하게 될 때까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기로 맹세했다는 것을요. — 87~88쪽에서

아서 밀러는 『시련』에서 고발을 거부하고 죽어 간 숭고한 사람들의 희생과 목숨을 건지기 위해, 혹은 이웃의 땅을 빼앗기 위해 다른 이를 희생시킨 사람들의 추악한 면모를 동시에 보여 주며 극한 상황에서 발현되는 인간의 두 가지 서로 다른 얼굴을 상기시킨다. 한 사회를 광기에 몰아넣는 것은 언제나 ‘개인’들의 잘못된 선택이다. 집단 광기의 한가운데 평범한 구성원인 개인이 할 수 있는 ‘올바른 선택’과 ‘잘못된 선택’. 재판장에서 자신의 목숨,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거짓들이 또 다른 거짓을 낳고, 그 결과 ‘개인’들이 모두 파멸에 이르게 되는 이 부조리한 상황을 지켜보는 독자들은 자신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나는 고발을 거부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 이웃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한없이 나약하게 좌절하면서도, 가장 용감하고 고결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인간. 그 존엄에 대한 환기가 『시련』이 오늘의 독자들에게 던지는 가장 큰 의미일 것이다.

우리 안에 내재된 ‘믿음’을 이끌어 내는 ‘드라마’의 힘아서 밀러가 극작을 시작한 동기 중 하나는 연극이 관객과 직접 말할 수 있으며 사회를 개혁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미국의 꿈’이라는 거대한 신화를 깨뜨린 경제 공황, 그리고 인간들이 서로에 대한 책임을 갖는 사회라는 개념을 파괴한 유대인 학살을 동시대에 목격한 밀러는 이러한 극한의 상황에서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은 ‘저항’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회란 한 배에 몸을 실은 운명 공동체이며,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연극이 그러한 운명 공동체를 제대로 표현하고 사람들을 직접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1692년 세일럼에서 실제로 일어난 마녀 재판을 소재로 한 『시련』은 당시 뉴잉글랜드 지역을 휩쓴 집단 광기와 1950년대 초반 미국을 휩쓴 또 하나의 광기인 매카시즘 사이의 유사성을 통해 인간 본성에 내재된 문제들을 고발한다. 고발자들이 결백하고 고발당한 자들이 죄인이 되어야만 하는 시기.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백을 하고 자백한 자들은 또 다른 자들을 고발해야만 하는 이 배신의 연속은 1951년 미국 내 공산주의자를 색출하자는 매카시 상원의원의 연설에서 촉발된 이념적 마녀 재판을 또렷이 겹쳐 보여 준다. 이 작품은 개인을 파괴하는 절대적 힘을 발휘한 매카시즘과 세일럼의 청교도주의가 결국 사회 구성원 각자의 자의적인 선택에 의해 일어났음을 밝히며 역사 속에서 이러한 비극을 또다시 재현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개개인이 용기와, 그리고 명료한 정신을 가지고 자유를 위해 맞서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댄포스 : 어째서? 석방된 후에는 이 고백을 부인하겠다는 뜻이오?프록터 : 아무것도 부인하지 않습니다!댄포스 : 그렇다면, 내게 설명을 해 보시오. 프록터, 왜 당신이 거부하는지…….프록터 : (온 영혼을 다하여 외친다.) 그것이 내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내 평생 또 다른 이름은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거짓말을 했고 거짓말에 서명을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교수형을 당한 이들의 발바닥 먼지만큼도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 이름이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난 당신에게 내 영혼을 주었습니다. 내 이름만은 나에게 남겨 주십시오!— 211쪽에서

하나의 극작을 통해 관객을, 독자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 그렇게 변화된 관객과 독자가 결국 사회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이 같은 확고한 믿음에 의해 쓰인 아서 밀러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오늘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충격을 받고 나와 다른 사람들,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 안에 내재된 개인의 존엄과 자유에 대한 믿음 역시 세월이 지나도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 소개

아서 밀러

1915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빵집 배달원, 자동차 부품 회사 점원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쳐 미시건 대학에 재학하면서 극작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뉴욕 연방 연극 프로젝트에 참여해 라디오극과 드라마 대본을 집필했다. 1944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모든 행운을 가졌던 남자』가 평단의 호평에도 공연 나흘 만에 막을 내렸으나, 1947년 발표한 『모두가 나의 아들』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949년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퓰리처 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입센의 작품을 각색한 『인민의 적』, 세일럼 마녀 재판을 소재로 한 『시련』은 당시 미국의 공산주의자 고발 운동인 매카시즘 열풍에 대한 첨예한 비판 의식을 드러내며 높은 평가를 받았고, 그 때문에 반미 지식인으로 몰려 법정에 서기도 했다. 1956년 영화배우 메릴린 먼로와 결혼, 1961년에 이혼한 후 이듬해 오스트리아 출신 사진작가 잉게 모라스와 재혼했다. 1964년 『타락 이후』와 『비시에서 생긴 일』을 발표하고 1983년 베이징 인민 극장에서 『세일즈맨의 죽음』을 연출했으며, 자서전 『시간의 굴곡』을 출간하는 등 말년까지 집필과 연극 관련 활동을 쉬지 않았다. 2005년 코네티컷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최영 옮김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교육 대학원을 수료한 뒤 미국 오클라호마 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셰익스피어의 정치관」, 「셰익스피어에 있어서의 현상과 실제」 등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독자 리뷰(2)

독자 평점

4.5

북클럽회원 2명의 평가

한줄평

깊은 주제를 재밌게 풀어냈다

밑줄 친 문장

저는 저 자신의 죄만을 말할 따름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을 심판할 수 없습니다.
도서 제목 댓글 작성자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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