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 각자는, 그저기억의 조각을 지키기 위해 사는 거야.”
비밀스러운 기억과 고백을 품고 있는 미스터리한 책상을 두고전하는 이와 전해 받은 이, 되찾으려는 이가 공유하는 두려움과 슬픔,삶에 뿌리내리지 못한 그들이 상처 난 기억으로 더듬어 가는 위대한 집.
《그란타》 선정 ‘미국 최고의 젊은 소설가들’(2007)《뉴요커》 선정 ‘40대 이하 최고의 작가 20인’(2010) 전미 도서상, 오렌지 상 최종 후보작
미국 문단을 이끄는 차세대 대표 작가 니콜 크라우스의 신작 『그레이트 하우스』가 민음사 모던 클래식(50번)으로 출간되었다. 니콜 크라우스는 전작 『사랑의 역사』와 『남자, 방으로 들어간다』로 “미국 문학사의 떠오르는 별”이라는 명성을 얻었으며 《그란타》, 《뉴요커》 등 권위 있는 매체들이 선정한 ‘최고의 젊은 작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녀의 작품들은 한국을 비롯한 35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어 전 세계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그레이트 하우스』는 니콜 크라우스가 2007년 《하퍼스》에 발표한 단편 「다니엘 바스키의 책상에서(From the Desk of Daniel Varsky)」가 근간으로, 한때 그것을 지녔던 사람들의 전부가 되어 버린 커다랗고 오래된 책상을 둘러싼 상실과 후회, 기억에 관한 소설이다. 니콜 크라우스는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된 후 보다 깊어진 눈과 진중해진 목소리로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전해지는 두려움과 슬픔’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와 미스터리한 구성이 정점에 다다른 『그레이트 하우스』는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해 전미 도서상과 오렌지 상 최종 후보에 올라 5년의 공백에도 녹슬지 않은 작가의 역량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 거대한 나무 책상에 담긴 고통스러운 결핍과 상실의 고백들
뉴욕에 사는 작가 나디아는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칠레 출신의 젊은 시인 다니엘에게서 크고 육중한 책상을 물려받는다. 얼마 후 다니엘은 피노체트의 비밀경찰에 끌려가 행방이 묘연해지고, 나디아는 그의 책상에서 이십오 년 동안 글을 쓴다. 어느 날, 다니엘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젊은 여성이 나디아를 찾아와 책상을 돌려 달라고 한다. 책상을 보낸 후 나디아의 삶은 휘청거린다. 한편 나디아와 사고로 얽히게 된 유대인 판사의 늙은 아버지는 아내의 장례식에서 다시 만난 아들과 화해하기를 바라지만, 오랜 세월 동안 틀어진 관계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수풀이 우거진 영국의 어느 집에는 자신의 과거를 잠가 버린 소설가 아내가 죽은 후 그녀의 비밀 앞에 선 남자가 있다. 과거에 얽힌 모든 것을 짐스러워하면서도 누군가에게 선물받은 책상만큼은 몸의 일부처럼 여기던 아내가 아무 연고도 없이 그들을 찾아온 청년 다니엘에게 그것을 줘 버린 후 부부의 삶은 숨은 균열을 조금씩 드러낸다. 유대인 골동품상 와이즈는 1944년 나치가 헝가리를 점령했을 당시 부다페스트에 있던 아버지의 서재를 복원하기 위해, 딸 레아를 시켜 그곳에 있던 책상을 되찾아 오게 한다. 자신을 스쳐 간 사람들의 상실과 욕망과 후회의 응집체가 된 책상은 뉴욕의 어느 창고에서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이어 갈 새로운 상속자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 책상은, 완전히 다른 물건이었다. 그렇게 단출하고 작은 방에서 그 책상만이 무슨 엽기적이고 위협적인 괴물처럼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었다. (중략) 정말 그 책상이, 그 유령 같은 책상이, 책상이 아니라 한 척의 배처럼 보였다. 어디에서도 육지를 만날 수 없다는 절망 속에, 달빛도 없는 어두운 밤에 더 어두운 암흑의 바다를 항해하는 배, 그런 생각 때문에 그 책상이 더욱 신경 쓰였다.
『그레이트 하우스』를 이루는 이야기들의 중심에는 크고 작은 열아홉 개의 서랍이 달린 비밀스러운 책상이 있다. 불우한 어린 시절에서 비롯된 결핍, 부모와 자식을 등진 죄책감과 상실감, 무너진 과거의 세계를 완벽하게 복원하려는 갈망 등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인물들은 나눌 수 없는 고통스러운 기억과 불안정한 감정을 단단하고 거대한 책상 앞에 쏟아 낸다. 인물들의 무거운 고백이 침묵 속에 쌓이는 동안 거대한 책상은 그들의 삶 전체를 압도하고, 대신할 수 없는 어떤 상징이 된다.
니콜 크라우스는 전작에서도 기억상실증(『남자, 방으로 들어간다』), 잃어버린 원고(『사랑의 역사』) 등을 소재로 ‘상실’이라는 문제를 일관되게 다뤄 왔다. 특히 『사랑의 역사』에서 한 권의 책을 중심으로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탁월하게 엮어 냈는데, 『그레이트 하우스』에서는 ‘책’이라는 이미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라, 앞에 앉은 사람마다 다른 이야기를 쏟아 내게 만드는 ‘책상’이 각각의 이야기를 잇는 매개가 된다. 단단하고 구체적인 사물인 책상은 인물들의 모호한 정서와 불안정한 관계 맺음에 대비되면서 ‘상실’이라는 문제를 더욱 부각시킨다.
중요한 것은 책상이 한 인물에게서 다른 인물에게로 전해진다는 점이다. 니콜 크라우스는 『그레이트 하우스』가 “유산이라는 짐”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책상을 물려받는 사람은 이전 사람이 쏟아 놓은 고통스러운 기억에 일말의 책임감을 더해 받고, 물려주는 사람은 이미 자신의 삶이 된 그 짐을 잃은 상실감에 휩싸이는 것이다. 위협적이고 거대한 괴물 같은 책상은 결국 우리 각자가 지고 있는 삶의 무게일 것이다. 니콜 크라우스는 아이를 낳은 뒤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고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그레이트 하우스』를 썼다고 한다. 그녀는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전해지다’라는 속성을 가진 인간사의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는 두려움과 슬픔을 깊이 파고든다.
■ 부표처럼 떠도는 사람들의 기억이 꿈꾸는 위대한 집
‘그레이트 하우스’는 1세기경 유대인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가 예루살렘을 잃어버린 유대인들을 위해 세운 학파의 이름이다. 나치의 손에 삶이 무너진 기억을 지닌 유대인 골동품상 와이즈는 당시 부다페스트에 있던 아버지의 서재, 그때의 세계를 완벽하게 복원하기 위해 책상을 찾아다닌다. ‘그레이트 하우스’라는 제목은 결국 인물들의 삶을 지배하는 결핍과 상실의 원형이자 그에 대한 기억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작품의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유대인이거나 유대인만큼이나 정서적으로 뿌리내릴 곳을 찾지 못하는 이방인이다. 그들은 평범해 보이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가족이나 연인에게 마음을 열어 보이는 대신 고통스러운 기억과 감정을 필사적으로 숨기려 한다. 나누지 못하는 삶은 고독할 수밖에 없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이 고통을 견디고 살아가는 방법이다.
아내는 자신의 슬픔 때문에 괴로워했지만 그걸 숨기려고, 점점 더 작게 쪼개서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흩어 놓으려고 애썼다. (중략) 그런 독립성이 바로 생각만 해도 끔찍한 비극을 자신 안에 담고도 견딜 수 있었던 힘이었고, 주변에 쌓아 올린 고독, 자신을 줄이고, 종이처럼 접어 더욱더 작게 만들고, 안에서 울리던 소리 없는 외침을 혼자만의 작업으로 바꾸며 지낸 고독한 생활이 그런 견딤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아내가 쓴 이야기들이 아무리 황량하고 비극적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을 쓰기 위한 노력, 그것들을 써 냈다는 사실 자체는 하나의 희망이었고, 죽음의 거부, 혹은 죽음에 맞서 내지르는 삶의 외침이었다.
한 척의 낡고 큰 배 같은 책상에 스스로 몸을 묶고 타인의 세상을 부표처럼 떠다니며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잃어버린 것들의 꿈을 꾸는 고독한 사람들. ‘그레이트 하우스’는 그들이 서글픈 유랑을 끝내고 머물기를 원하는 튼튼한 집일 수도 있고, 끔찍한 비극을 자기 안에 담고도 견디며 살아가는 인간 정신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그것은 허상이기도 하고 희망이기도 하다.
다음 세상에서는, 기억에 대한 기억 속에 우리 모두 함께 지낼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건 우리에게 준비된 세상은 아니야, 라고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너나 나를 위한 세상은 아니겠지. 우리는, 우리 각자는, 그저 기억의 조각을 지키기 위해 사는 거야. 영원한 후회와 한때 존재했음을 알고 있는 어떤 곳에 대한 갈망에 빠진 채, 그곳의 열쇠 구멍에 대한 기억, 바닥의 타일과, 열린 문 아래 닳아 버린 문지방에 대한 기억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전해 주고, 그들은 우리의 꿈과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어떻게 동화되는가? 우리는 상실, 파괴,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니콜 크라우스는 부모가 된 자신에게 던져진 이 질문들로부터 피할 수 없는 상실을 직면했을 때 불변하는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인간의 기억에 관한 원대하고 강력한 소설을 탄생시켰다.
■ 자기 재능의 정점에 선 작가가 그린 성숙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피노체트의 비밀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받던 중 소식이 끊어진 젊은 칠레 청년, 나치 수용소에서 부모를 두고 탈출해 아이를 낳은 뒤 입양을 보낸 유대인 아내, 전쟁에서 전사한 동료를 구하지 못하고 그 아버지에게 “자네가 죽었어야 해.”라는 말을 들은 뒤 세상에 등을 돌린 아들 등 실제로 『그레이트 하우스』에 담긴 이야기는 상당히 폭력적이고 어두운 역사, 민족 문제이다. 니콜 크라우스는 공적이고 정치적인 어조로 격렬한 상황이나 사건을 서술하는 대신 특유의 서정적이고 담담한 문체로 일상 속에 스며든 슬픔, 특정한 사실보다 더 강렬한 감정들을 탁월하게 전달한다. 전작 『사랑의 역사』의 슬픔이 비교적 높고 떠들썩했다면, 책상 앞에서 말없이 쏟아내는 『그레이트 하우스』의 슬픔은 한층 깊고 엄숙하다.
회상과 독백, 서술이 무질서하게 뒤섞인 화법은 의식 없는 낯선 판사에게, 화해를 청하고 싶지만 이미 사라져 버린 아들에게, 평생 자신의 비밀을 보여 주지 않은 채 죽은 아내에게 이야기를 전해야 하는 화자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전달하기에 적절하다. 첫 번째 화자를 제외한 모든 화자를 주인공이 아니라 곁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가족으로 설정해 독자의 호기심과 소설 진행의 속도를 맞추고, 정체가 불분명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독자가 이야기의 아귀를 맞추는 데 주저하도록 한 것은 끝까지 작품의 비밀을 분명하게 열어 보이지 않는 작가의 영리한 구성 능력을 짐작하게 한다.
『그레이트 하우스』는 각각의 이야기들이 한데 모여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흩어진 채로 저마다의 결말을 맞이한다. 이 소설이 잃어버린 것에 대한, 흩어져 버린 기억의 조각들이 모여 만들 ‘그레이트 하우스’에 대한 갈망임을 작품 스스로 말하게 하는 작가의 대담함을 보라. 그녀가 바로 “문단의 분더킨트(신동)”라 불리는 니콜 크라우스다.
■ 이 책에 쏟아진 찬사
▶ 정교하게 선택된 감각적인 세부 묘사를 통해 강렬한 감정의 반향을 일으킨다. 예술가의 진실한 손길이다.—《뉴욕타임스》
▶ 아름답고 신비롭다. 크라우스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자신의 언어로 이뤄 낼 수 있다.—《보스턴글로브》
▶ 말 없는 나무 책상에 담긴 하나의 정교한 은유가 ‘살아 있다’라는 것의 의미를 얼마나 깊게 일깨울 수 있는가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엘르》
▶ 모든 작가에게 분명히 꼭 쓸 수밖에 없는 한 권의 책이 있다면, 마찬가지로 독자 개개인에게도 꼭 읽을 수밖에 없는 한 권의 책이 있을 것이다. 각 곳의 수많은 독자들에게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 될 것이다.—《북페이지》
▶ 니콜 크라우스의 거장다운 인물 연출은 아슬아슬하고 흥미롭다. 이 명작은 그녀의 전작들을 사랑하는 독자들을 완벽하게 만족시킬 것이고 더 많은 독자들을 그녀에게로 불러들일 것이다.—《북리스트》
※ 『그레이트 하우스』 북 트레일러
http://www.youtube.com/watch?v=y6lr3BrRWus (유튜브)
http://tvpot.daum.net/my/ClipView.do?ownerid=yWkHD4S.DCY0&clipid=34381833&q=(다음tv팟)
1부
전원 기립 ․ 11
진정한 친절 ․ 69
수영 구멍 ․ 106
아이들의 거짓말 ․ 150
2부
진정한 친절 ․ 233
전원 기립 ․ 274
수영 구멍 ․ 330
와이즈 씨 ․ 388
옮긴이의 말 ․ 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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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고리를 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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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