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있고, 이야기가 있어. 인간에게 내려진 저주는이 둘을 잘 구분할 줄 모른다는 거야.
일어난 동시에 일어난 적 없는 기이한 유괴 사건.그로테스크한 우연의 장난이 불러온 비극의 그림자.한 남자의 삶을 담보로 우주적 딜레마를 풀기 위해 벌이는두 비범한 물리학자와 한 형사의 치열한 두뇌 게임.
독일 서적상(2002), 에른스트 톨러 상(2003) 수상 작가독일 문학계의 떠오르는 신예 율리 체의 지적 추리 소설클라우디아 레만 감독 연출로 영화화 예정
여러 인생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면 우리는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자유로운 선택을 즐길 수 있을까? 통계학적으로 지구의 생성 확률은 10의 59승 분의 1밖에 되지 않고, 따라서 우리 존재의 개연성도 그 정도로 미미하다면, 우리는 이러한 삶의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우주의 해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두 비범한 물리학자와 한 형사의 두뇌 대결을 그린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이 민음사 모던 클래식(38번)으로 출간되었다. 특유의 문체와 기발한 이야기로 독일 문단 내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신세대 작가 율리 체는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시도하며 흥미로운 지적 담론을 생성해 왔다. 세 번째 장편소설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 역시 추리의 스릴과 함께 흥미진진한 현대 물리학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추리 소설이다. 수상한 의료 사건이 발생한 프라이부르크를 배경으로 어수룩해 보이는 천재 노형사 실프가 수수께끼 같은 기이한 사건을 해결해 나가며 현대 물리학의 쟁점과 삶의 본질을 탐구해 간다. 물리학 박사 출신인 클라우디아 레만 감독의 연출로 곧 영화화될 예정이다.
■ 우주의 해석을 가로지르는, 추리 소설 이상의 추리 소설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은 얼핏 추리 소설 장르의 법칙을 그대로 따르는 듯하지만, 물리학 지식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이어 가며 장르의 법칙을 뛰어넘는 의외성과 대담함을 보인다. 여느 추리 소설처럼 이 작품 역시 평화로운 일상을 뒤엎는 기이한 사건이 발생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연이라고 믿을 수 없는 심상치 않은 의료 사건이 연달아 네 건이 발생한 수상한 도시 프라이부르크가 그 사건의 중심지이다. 어느 날 물리학자 제바스티안은 아들 리암을 보이스카우트 캠프에 데려다 주던 중 잠시 휴게소에 들르는데, 그사이 아들이 갑작스레 실종된다. 하지만 리암은 며칠 후 보이스카우트 캠프에서 발견되고 아이는 자신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기이한 상황이 펼쳐진다. 이때 이 모든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형사 실프이다. 어딘가 ‘형사 콜롬보’를 연상시킬 만큼 어수룩해 보이면서도 천재성을 보이는 이 독특한 캐릭터는 “경찰청에 좀처럼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며 사건을 어느 정도는 수면 중에 해결”한다고 알려져 있다. 물리학에 관심이 많은 괴팍한 50대 노형사인 그는 “두 개의 모순되는 진술들은 대부분 둘 다 옳은 동시에 둘 다 틀립니다.” 혹은 “우연은 인간이 범하는 가장 큰 오류의 이름입니다.”와 같은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대는 인물이다. 한때는 평범한 인생을 살았지만 기억을 떠올릴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사건으로 가족을 모두 잃은 이 남자는 제바스티안에게 깊은 동정을 느끼며, 일어난 동시에 일어나지 않은 이 사건이 누군가가 연출한 평행 우주임을 간파하고 그를 돕기로 결심한다. 여기서 형사 실프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시간과 우주에 대한 현대 물리학의 해석을 이해하는 과정과 다름없다. 여러 개의 우주 또는 인생이 과연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가. 우연은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인간의 삶에 오류를 일으키는가. 이 질문들을 이해하는 순간, 사건의 수수께끼는 풀린다.
■ 현대 물리학의 두 진영을 대변하는 두 비범한 물리학자의 지적 대결
율리 체의 소설에는 늘 비범한 두 인물이 등장하여 대척점을 이루는데,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에는 두 천재 물리학자가 등장하여 치열한 토론을 벌인다. 하지만 현대 물리학의 쟁점을 둘러싼 그들의 팽팽한 주장은 상대를 향한 자신의 욕망을 투영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사실 제바스티안과 오스카는 대학 시절 첫눈에 서로에게 끌려 함께 물리학을 공부하며 둘만의 세계를 공고히 만들어 가던 사이였다. 하지만 제바스티안이 오스카에게서 열등감을 느낀 이후 둘은 어긋나 버리고, 제바스티안은 마이케라는 여자와 결혼한다. 그때부터 둘은 인생에서뿐만 아니라 물리학 연구에서도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즉 오스카는 여전히 제바스티안만을 바라보며, 다중 세계 해석을 부정하는 동시에 이른바 만물 이론을 추구하고, 마이케와 결혼한 삶과 오스카와 함께하는 삶을 동시에 원하는 제바스티안은, 세계의 모든 가능성을 인정하며 여러 우주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다중 세계 해석을 지지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믿음은 필연적이다. 제바스티안은 두 세계가 모두 존재한다고 믿지 않고서는 과거의 결정에 대한 후회를 견딜 수가 없고, 오스카는 제바스티안이 실수를 인정하고 단 하나의 세계를 선택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제바스티안과 오스카의 갈등은 소설에 시종일관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우주의 해석에 대한 그들의 토론이 물리학 담론에 그치지 않고 삶의 본질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게 한다. 제바스티안의 주장대로 평행 우주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선택으로부터 비롯된 결과물의 무게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어쩌면 평행 우주는 우리 욕망의 또 다른 가능성일지도 모른다.
■ 각각의 우주의 관찰자가 말하는 진실과 우연의 실재
율리 체는 현대 물리학의 구성주의적 관점, 즉 관찰자가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에 대한 관심을 계기로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을 구상했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 범인의 계획은 기묘한 우연의 장난으로 끔찍한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소설은 이것이 정말 우연인지를 묻는다. 자신이 관찰자로 존재하는 각자의 우주에서 각자 구축한 세계의 진실은 각각의 개연성을 지닌다. 이것들이 한 세계에 현상으로 나타났을 때 이것은 단지 기묘한 우연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바스티안은 우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느 산책하는 사람이 잔잔한 호숫가에 서 있듯이 인간이 현실 앞에 서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매끄러운 수면은 그에게 익숙한 세상을 반사하고 그 기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은폐합니다. 이제 커다란 나뭇가지 하나가 이 수면 아래 흘러가고, 단지 두 잔가지 끝만 각각 서로 다른 지점에서 물 밖으로 솟아 있습니다. 우리의 산책자는 이것을 그로테스크한 시간적 일치라고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적절하게도 그는 이 잔가지들이 물 아래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삼을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는 우연이 뭔지 이해한 것입니다.(222쪽)
역시 우연을 믿지 않는 형사 실프는 사건의 책임을 우연으로 돌리지 않고, 범인에게 윤리적 죗값을 치르게 한다. 법조인이기도 한 작가는 실프를 통해, 소설을 관통하는 물리학 이론의 논점을 삶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뿐만 아니라, 윤리적 관점에서도 죄와 책임의 문제를 분명히 짚는다. 율리 체는 소설의 모든 것을 프롤로그에 밝혀 놓았다. 비록 에필로그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의미를 알 수 없지만, 프롤로그에서 밝힌 것처럼 독자는 소설이라는 전(全) 우주의 관찰자가 되어 “모든 것을 들은 것은 아니지만, 대신 대부분을 보”면서 사건의 진실을 점차 이해하게 된다.
■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에 쏟아진 언론의 찬사
▶ 경탄할 만한 서술 기술을 대가답게 구사한 작품이다. 이 정도 짐을 지고는 다른 작가들은 겨우 물장구밖에 못 쳤을 것이다. 그러나 율리 체는 여기에 심지어 위트까지 담아 침착하게, 그리고 거뜬히 항구까지 항해해 간다. —《벨트 암 존탁》
▶ 사람들은 이 책을 마치 귀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 두 손에 들고 있다. 놀라운 인식, 아름다운 문장, 시적인 이미지, 기교 넘치는 대화로 터질 듯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율리 체가 아주 훌륭한 글을 쓴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아멜리에 프라이트
▶ 완벽함을 갖춘 율리 체의 미로는 차갑게 남아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율리 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율리 체의 미로는 너무나 영리하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적재적소에 웃음을 주는 장치들이 드리워져 있고, 벽을 따라서는 최근에 보기 힘든 번뜩이는 문장들이 포진하고 있다. — 엘마 크레겔러, 《디 벨트》
▶ 율리 체의 소설은 언제나 모험이다. 매번 이 작가가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들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양자역학을 일반상대성이론과 통합하는 야심 찬 주제를 다룬다. 다시 말해 새로운 세기의 위대한 정신적 계획 중 하나를 다루는 것이다. 하지만 물리학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 이야기의 마력에 빠져들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율리 체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표현들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처럼 우리를 경탄하게 만든다. 게다가 언제나처럼 율리 체의 작품에는 우연과 범죄와 같은 악의 세계로부터 온 가공할 만한 스토리가 있다. 히치콕의 명작처럼 삐딱하고, 우리를 긴장시키며, 결코 잊히지 않는다. —《브리기테》
프롤로그 7
일곱 부분으로 이루어진 1장 제바스티안이 곡선을 오리다. 마이케가 요리하다. 오스카가 방문하다. 물리학은 연인들의 것이다. 9
일곱 부분으로 이루어진 2장범죄가 시작되다. 인간은 어디에서나 짐승들에게 둘러싸인다. 61
일곱 부분으로 이루어진 3장살인하기에 최적의 시간. 처음에는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지만 이후에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보여 주는 것은 결코 위험하지 않은 일이 아니다. 88
일곱 부분으로 이루어진 4장리타 스쿠라에게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인간은 무(無) 속의 구멍이다. 뒤늦게 형사가 개입하다. 132
5장 형사가 사건을 해결하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192
일곱 부분으로 이루어진 6장 형사가 고사리 덤불 속에 웅크리다. 사소한 증인이 두 번째로 등장하다. 많은 사람들이 제네바로 차를 몰다. 254
7장범인이 밝혀지다. 결국 내면의 심판자가 결단을 내리다. 새 한 마리가 날아오르다. 337
에필로그 401옮긴이의 말 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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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있으나 쓰지 않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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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