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0번으로 이광수의 『무정』 출간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돼 폭발적인 인기와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이자 연애소설
무정
시리즈 세계문학전집 250 | 분야 세계문학전집 250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이자 연애소설로 널리 알려진 이광수의 『무정』이 세계문학전집 250번으로 출간되었다. 이로써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전집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출간 12년 만에 250권을 돌파했다. 이번에 출간된 『무정』은 한국 근대문학을 전공한 정영훈 경상대 국문과 교수가 1918년 7월 신문관, 동양서원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된 『무정』을 저본으로 《매일신보》 연재본과 그 후에 출간된 단행본들을 참고하여 편집한 것이다. 원칙적으로 현재의 ‘한글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되, 작품의 분위기에 영향을 준다고 판단되는 방언과 고어, 구어체 표현 등은 그대로 살려 당대의 언어 감각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무정』은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되는 동안 폭발적 인기와 사회적 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킨 당대 ‘가장 뜨거운 소설’이자, 한국 최초로 문학에서 근대적 ‘개인’을 발견해 낸 기념비적 작품이다. 춘원 이광수는 형식과 영채, 선형의 관계를 통해 연애 감정 앞에서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낱낱이 묘사한 동시에, 자아를 발견하고 각성한 그들이 민족 주체의 진취적 앞날을 모색하는 과정까지 다뤘다. 개인과 사회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깨어난 청춘’들의 모습은 21세기를 지나친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으며, 오히려 우리 삶의 조건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현대 한국인의 원형으로서 해가 갈수록 커다란 울림을 준다.
근대적 ‘개인’, 자아의 ‘발견’을 보여 준 한국 최초의 소설
『무정』은 형식과 영채, 선형을 둘러싼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소설 속 인물들은 이성(異性)을 보고 가슴 설레 하고, 상대가 자신을 사랑해 줄까 노심초사하고,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한탄하고, 상대가 한눈팔지 않았을까 질투한다. 자칭 타칭 ‘깨었다.’ 하는 형식은 영채가 정조를 지켰을까 잃었을까 고뇌하고 선형의 몸에 대한 욕망을 드러낸다. 얌전한 처녀인 영채는 남자를 생각하면 후끈 달아오르는 자신의 몸을 자각한다. 도도한 신여성인 선형은 형식의 외모에 실망하고 영채의 등장에 저도 모르게 강한 질투심을 드러낸다. 부모가 자식의 결혼을 결정하는 것이 당연했던, 연애를 한다 해도 ‘춘향과 이도령’식 지고지순한 사랑이 부각됐던 시대에 이러한 인물상은 매우 낯선 것이었다.
이처럼 『무정』의 주인공들은 완전무결한 이상적인 인간이 아니라 스스로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발전하기 위해 애쓰는 개인이다. 그리고 개인이 ‘자유연애’를 경험하고 욕망을 느끼는 과정에서 자아를 발견하고 각성한다. 이러한 ‘개인’ 혹은 ‘자아’의 발견은 곧 근대성의 발견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형식이 김선형과 처음 만나 인사를 주고받던 이 시대만 해도 사정은 사뭇 달랐다. 자유연애란 자율성의 다른 이름이었고, 자율성은 근대적 인간의 표지(標識) 바로 그것이었다. 근대적 인간은 선험적으로 주어진 다양한 가치들을 곧바로 받아들이는 대신 의심하고 질문에 부친다. 그는 스스로 입법자가 되어 가치를 만들어 내고 가치의 주인이 된다. 이광수는 ‘따르도록 만들 수는 있으나 알게 할 수는 없는(可使由之 不可使知之)’ 타율적 도덕이라고 유교 도덕을 비판하는데, 자유연애는 이와 상반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가 짝지어 준 사람을 자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사랑하는 사람을 스스로 결정하는 방식의 관계란 근대적 의미의 도덕률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일종의 본보기였던 셈이다.―「작품 해설」에서
특히 동경 유학생인 형식이나 신식 교육을 받은 선형과 달리 고전적 여성상인 영채의 변화는 놀라울 정도다. 불의의 습격으로 겁탈을 당해 정조를 잃은 영채는 ‘자살’이라는 전형적인 선택을 하지만, 개화한 신여성 병욱을 만나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다. 병욱은 영채에게 부모가 강요하는 거짓 사랑과 유교 도덕에 갇힌 채 살아가는 조선 여성의 운명을 설파하며 ‘제 뜻대로’ 살 것을 주문한다. 순종적인 여성이었던 영채가 신문물을 접하고 자신의 욕망을 실현해 가는 과정은 지극히 ‘근대적’이다.
능동적으로 자신의 사랑과 운명을 결정하는 법을 배운 현대 한국인의 탄생
1918년 단행본으로 출간된 『무정』은 1만 부 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이는 『무정』에 연애를 중심으로 한 ‘오락적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형식과 선형, 영채의 삼각관계가 흥미진진하게 진행되고, 갈대같이 흔들리는 주인공들의 마음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또 ‘이상적인 외모’와 형식의 얼굴을 비교하는 선형이나, 병욱의 오빠인 병국에게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 못해 가슴 졸이는 영채의 모습은 현대 여성들과 별반 다르지 않고, ‘돈’과 ‘미모’ 없음을 한탄하고 선형과 영채를 이리저리 견주어 보는 형식의 모습은 현대 남성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무정』이 1910년대 유행했던 상투적인 연애 오락 소설에서 벗어나 ‘근대성’, ‘계몽성’까지 담은 작품이라는 점이다. 『무정』을 쓰던 당시 이광수는 나약하고 불완전한 개인이 성장해 가면서 민족 주체가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 사적 이익이 공적 이익과 충돌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사적 이익을 통해 공적 이익이 실현될 수 있다고 봤다.
이광수의 초기 논설을 보면 그가 개인의 욕망에 충실한 것이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상치되지 않을뿐더러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이해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동물들은 순전히 생물학적 욕구에 따라 행동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조물주의 작용을 통해 종의 번식이라는 결과를 낳는 것처럼 인간 세계 역시 그렇다는 것이 이광수의 논리였다. 이광수는 나중에 개인의 욕망을 앞세우는 것을 이기적인 태도라고 비난하는데, 이는 개인의 욕망과 공동체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음을 깨달은 데서 온 변화일 것이다. 『무정』을 쓰던 때의 이광수에게 사적인 세계와 공적인 세계 사이에는 뚜렷한 경계선이 존재하지 않았다.―「작품 해설」에서
이광수는 능동적으로 자신의 사랑과 운명을 결정하는 법을 배워 가는 청년들이 조선의 앞날을 새롭게 써 나가기를 희망했다. 각각 미국으로, 일본으로 떠나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형식과 선형, 영채는 끔찍한 수해 현장을 목격하고 조선의 앞날을 걱정한다. 그리고 그들은 ‘교육으로, 과학으로’ 조선 민중을 계몽해야 한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유학에서 돌아온 주인공들 앞에는 ‘문명한 조선’이 기다리고 조선은 그들의 도움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이렇듯 조선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그린 『무정』의 결말은 이광수의 간절한 기대이기도 했다. 비록 이광수의 이러한 꿈은 현실이 되지 못했지만, 시대의 한계 속에서 그가 실현해 냈던 문학적 성취는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 줄거리
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경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젊은 지식인 이형식은 개화 지식인의 딸이자 근대 교육을 받은 신여성 선형에게 영어 개인 지도를 해 주면서 조금씩 연정을 품게 된다. 그런 형식 앞에 옛 은사이자 한말 지식인 박 진사의 딸 영채가 나타난다. 영채는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구하고자 기생이 되었지만, 어린 시절 정혼한 형식을 위해 절개를 지켜 왔다. 형식이 두 여성 사이에서 방황하던 중 영채가 겁탈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좌절한 영채는 유서를 남기고 형식을 떠나 버린다. 결국 형식은 영채를 잊고 선형과 결혼해 미국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한편 실의에 빠졌던 영채는 평양으로 가던 기차 안에서 개화한 신여성 병욱을 만나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는다. 그리고 각각 미국과 일본으로 떠나기 위해 탄 기차 안에서 형식과 선형, 그리고 영채는 운명적으로 만난다.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이자 연애소설
연애를 둘러싼 ‘사랑’과 ‘욕망’, ‘질투’를 솔직하게 드러낸 당대의 문제작
독자 평점
4.3
북클럽회원 3명의 평가
한줄평
밑줄 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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