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꽃』이라는 이 잔혹한 책 속에 내 모든 심정과 내 모든 애정과 내 모든 종교와 내 모든 증오를 담았음을.” ―샤를 보들레르
”보들레르보다 위대하고 강력한 재능을 가진 시인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시인은 없다.” ―폴 발레리
● 현대시의 창시자 샤를 보들레르의 정신적 자서전
샤를 보들레르의 중학생 시절인 1832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해인 1866년까지의 편지 43통을 엄선한 『우울의 고백: 샤를 보들레르 서간집』이 인문학 클래식 시리즈 3번으로 출간되었다. 『악의 꽃』이라는 단 한 편의 시집으로 현대시의 서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보들레르는 프랑스에 알려지지 않았던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들을 최초로 번역하여 소개하고 당대 최고의 문인들만 선발되었다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입후보에 지원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 문단의 천재였다.
『우울의 고백』에 수록된 시인의 편지들은 평생 시인이 맺어 온 인간관계와 성장 배경, 경제적 상황, 그로 인해 형성된 정서 등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되어 주며, 작품 세계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1차 자료로서 귀중하게 활용되고 있다.
“교류의 방편이 오로지 우편뿐이던 19세기 중엽 시대상에 비추어 볼 때 보들레르가 써서 보낸 편지 통수는 그의 교우 관계의 의미 있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불문학자 이건수는 총 1,420통의 편지 중 보들레르를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이 되는 43통을 선별하여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피슈아의 플레이아드판 『보들레르 서간집』, 인디애나대학 교수였던 로즈메리 로이드가 번역한 『샤를 보들레르 서간 선집』, 도쿄대학 교수를 역임한 아베 요시오가 1999년에 출간한 『보들레르비평 4: 아포리즘, 서간 초(抄)』를 참고하였다.
『우울의 고백』은 부모의 애정을 갈구했던 보들레르의 유년 시절부터 금치산자로 지정되어 법정후견인이 설정된 사건, 『악의 꽃』 소송, 아카데미 프랑세즈 입후보 사퇴, 벨기에 망명 등 보들레르가 겪어야 했던 실패의 에피소드들을 편지글로 엮었다. 시인의 삶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내밀한 고백을 통해 보들레르의 작품 세계를 다채롭게 이해할 수 있는 첫걸음을 마련하였다.
● 보들레르의 폭풍 같은 내면에서 끌어올린 고백들
보들레르의 작품과 비평 세계는 편지에 적힌 진솔한 의견과 감정을 읽어냄으로써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좋은 그림과 문학 작품을 알아본 시인의 안목은 중학생 시절의 편지에서부터 드러난다.
사실 회화에 관해서는 문외한이기에 제가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그림들은 손에 꼽을 만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어리석은 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오라스 베르네의 그림 몇 점, 아리 셰퍼의 그림 두세 점, 그리고 들라크루아의 「타유부르의 전투」를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네요. 잘은 모르지만 르노의 조제프 공작의 결혼에 관한 그림 역시 제외해야겠군요.
―1838년 7월 17일 자 편지 「베르사유의 그림들」 중에서
저는 현대 작품들만 읽어 보았습니다. 어디서나 언급되는 명성이 있어 모든 이들이 읽어 대는 이런 작품들 중에는 좀 나은 것도 있답니다. 글쎄, 모든 것이 생경하고, 과장되고, 기괴하고, 부풀려져 있지요. 특히 제가 유감으로 여기는 이는 외젠 쉬로, 그의 책이라고는 딱 한 권 읽었을 뿐인데 지루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에 염증이 납니다. 제 마음에 들었던 것은 드라마들, 빅토르 위고의 시들과 생트뵈브의 책 한 권(『관능』)뿐입니다.
―1838년 8월 3일 자 편지 「문학에 질려 버렸습니다」 중에서
보들레르는 문단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화가 에두아르 마네와 교유하며 친분을 쌓았는데, 이는 편지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미술비평가 테오필 토레에게 마네가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적극적으로 해명해 주기도 하고, 마네에게 판화가 펠리시앵 롭스에 대한 긍정적으로 평가를 적어 보내기도 하는 등 보들레르의 미술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악의 꽃』에서 ‘사바티에 부인 군(群)’으로 분류되는 시 아홉 편 중 일부도 수록되어 있다. 사바티에 부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쓴 시 「고해」, 소네트 「오늘 저녁 너는 무엇을 말하려는가……」 등은 익명 편지에 먼저 적었다가 이후 『악의 꽃』에 수록된 작품이다. 이 외에도 『악의 꽃』 소송의 선처를 구하며 외제니 황후에게 보낸 편지, 『파리의 우울』을 구상하고 집필하며 산문시에 대해 아르센 우세이에게 쓴 편지 등도 수록되어 보들레르의 창작 과정을 알 수 있다.
● 보들레르의 인간적 면모들
일명 ‘자살 편지’로 알려진 1845년 6월 30일 자 편지에서 보들레르는 평생의 뮤즈였던 잔 르메르에서 유산을 모두 주고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그 과정에서 내비치는 가족에 대한 원망, 애정과 인정을 갈구하는 모습은 작품만으로는 알 수 없는 보들레르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 준다.
저는 고통 없이 자살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고통이라 부르는 혼란스러움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빚이 있다고 고통받은 적은 결코 없었습니다. 이런 혼란들은 제겐 별것이 아닙니다. 제가 자살하려는 진짜 이유는 잠들고 깨어나는 삶의 피곤함이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라는 사람은 남들에게는 필요 없는 존재이며, 나 스스로에게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자신을 불멸이라 믿고,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에라도 저는 자살하려는 것입니다.
―1858년 2월 19일 자 편지 「스물다섯 살의 유서」 중에서
파리의 고독한 산책자로 알려진 보들레르의 우울과 불안은 그의 작품 색채에 영향을 미쳤다. 법정후견인 나르시스 앙셀, 평생 애정을 갈구했던 어머니와 나눈 편지들은 작가로서 화려했던 삶 이면에서 보들레르가 겪었던 경제적, 정서적 어려움을 보여 준다. 후일에는 매독에 걸려 건강도 좋지 않았지만 작품에 대한 열정만큼은 끝까지 놓지 않았다.
저의 자살 충동에 대해 다시 언급하자면, 늘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지만 저는 때때로 자살이라는 유혹에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엄마, 안심하세요. 제 작업을 마무리하지 않고서는 결코 자살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모든 자료들이 옹플뢰르에 있는 데다가 온통 뒤죽박죽인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옹플뢰르에서 마음을 다잡고 일을 해야 합니다.
―1861년 5월 6일 자 편지 「자살이라는 유혹」 중에서
살아생전 출간한 단 한 권의 시집 『악의 꽃』만으로 시적 혁명을 이루어낸 보들레르는 46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낭만주의와 형식주의를 넘어서며 시의 새로운 지평을 연 시인은 이후 상징주의 시 계보를 잇는 폴 베를렌, 아르튀르 랭보, 스테판 말라르메를 비롯하여 수많은 시인에게 영향을 주었다. “금속 펜으로 글을 쓰는 일은 마치 흔들거리는 바위들 위로 나막신을 신고 걷는 것”과 같다고 표현한 보들레르의 처연하고 빛나는 삶을 서간집을 통해 만나 볼 수 있다.
1부
1 여행 다니는 삶(1832년 2월 1일) 19
2 유일한 작은 신사(1832년 3월 3일) 22
3 반란자 막내(1833년 3월 25일) 25
4 선물 감사 편지(1833년 11월 23일) 28
5 저에게 실망하지 말아 주세요(1834년 2월 25일) 31
6 베르사유의 그림들(1838년 7월 17일) 36
7 문학에 질려 버렸습니다(1838년 8월 3일) 41
8 복습 교사(1839년 2월 26일) 46
9 양복점에 빚진 돈(1841년 1월 20일) 50
2부
10 스물다섯 살의 유서(1845년 6월 30일) 55
11 위대한 속죄양께(1848년 8월 21일 또는 22일) 60
12 너무도 명랑한 여인(1852년 12월 9일) 64
13 소설의 작은 세계(1853년 3월 15일) 68
14 고해(1853년 5월 9일) 72
15 가엽고 외로운 영혼(1854년 2월 16일) 76
16 익명으로 보내는 찬가(1854년 5월 8일) 79
17 철학적 정신(1856년 1월 21일) 83
18 꿈 이야기(1856년 3월 13일) 88
19 『새로운 이상한 이야기들』(1856년 3월 26일) 94
20 필요한 단 한 명의 여성(1857년 8월 18일) 98
21 정숙함의 절대적 결여(1857년 8월 31일) 104
22 황후 폐하께(1857년 11월 6일) 109
23 행복에 관한 계획(1858년 2월 19일) 112
24 고야 그림에 투자하라(1859년 5월 14일) 119
25 인생은 끝없는 고통(1859년 5월 16일) 125
26 사랑하는 연인이여(1859년 12월 17일) 135
27 에드거 앨런 포에 대하여(1860년 1월 8일) 138
28 대단한 고백(1860년 6월 26일) 142
3부
29 자살이라는 유혹(1861년 5월 6일) 147
30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지원합니다(1861년 12월 11일) 163
31 아카데미 입후보에 관하여(1861년 12월 23일) 166
32 『파리의 우울』, 고독한 산책(1861년 12월 25일) 172
33 어떤 고난도 유희로(1862년 1월 24일경) 176
34 언제나 고독을 꿈꿉니다(1862년 1월 31일) 181
35 “이제는 벼랑 끝이다.”(1862년 12월 13일) 184
36 외곬의 도덕적 의도에 대한 증오심(1863년 10월 10일) 190
37 차원이 다른 진지한 즐거움(1864년 4월 9일) 193
38 묘한 평행 관계(1864년 6월 20일경) 196
39 화가 마네에게(1865년 5월 11일) 200
40 독서의 즐거움(1866년 1월 15일과 2월 5일) 204
41 『악의 꽃』이라는 잔혹한 책(1866년 2월 18일) 212
42 침묵보다 질책이 좋습니다(1866년 3월 5일) 222
43 긴 작업의 열매(1866년 3월 30일) 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