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눈

배삼식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1년 12월 31일 | ISBN 978-89-374-2058-0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33x196 · 532쪽 | 가격 22,000원

책소개

「먼 데서 오는 여자」 「1945」 「화전가」 등 대표작 수록

아픈 역사가 사라지는 자리,
생생한 기억을 불러오는 목소리

편집자 리뷰

극작가 배삼식의 대표작을 묶은 희곡집 『3월의 눈』이 ‘오늘의 작가 총서’로 출간되었다. 매회 매진을 거듭하는 「3월의 눈」과 「먼 데서 오는 여자」, 「화전가」 를 비롯해 오페라로도 제작되며 한국 오페라의 흐름을 바꿨다는 평을 받은 「1945」 , 대산문학상과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열하일기 만보」가 수록되었다. 배삼식은 시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을 선보이며 대중과 평단 모두의 호평을 받는 한국의 대표적인 극작가다. 특히 갈등을 극 전체에 흩트려 놓거나 갈등의 바깥을 기입하는 배삼식만의 형식은 독보적이다. 이는 단단하고 빈틈없는 갈등 구조를 뼈대로 하는 전통적인 서사를 벗어나려는 작가의 형식적 실험이다.
이 개성적인 형식은 그가 역사를 그리는 태도와도 조응한다. 「3월의 눈」을 중심으로 다섯 편의 수록작을 읽을 때 독자들은 ‘역사와 기억’이라는 주제에 가닿는다. 역사를 기록하는 배삼식의 방식은 한 사람이나 하나의 사건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를 살아 낸 이들의 다채로운 목소리를 그대로 드러내고 사건 앞뒤의 분위기를 기록하는 것이다. ‘과거의 기억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싶었다’는 작가는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통해 시간이 지나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생생한 기억을 풀어놓는다.

 

■ 새로운 기억의 형상
첫 번째 수록작인 「3월의 눈」의 배경은 재개발로 허물어지고 있는 고택이다. 노부부의 소소한 대화 속에 과거에 대한 회상이 이어지는 와중에, 곧 사라져 버릴 집 위로 눈이 내린다. 한 계절의 끝에 내리는 ‘3월의 눈’은 잊히고 사라지는 것을 다루는 이 작품집 전체에 대한 은유다. 「먼 데서 오는 여자」에서 여자는 점차 흐려지는 기억 속 여전히 떠오르는 아픔을 이야기한다. 현재와 과거가 뒤섞인 여자의 기억에는 동시대인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회적 참사가 생생하다. 집단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아픈 역사를 잊을 수 없는 이의 목소리가 다시금 기억하기를 요구한다.
개인이 마주해야만 했던 역사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배경으로 작품 전반에 깔려 있다. 「화전가」는 꽃이 가장 아름답게 핀 봄날 꽃놀이를 갔던 경북 지방 여성들의 전통을 다룬다. 화전놀이를 준비하는 가족들의 대화는 다정하고 유쾌하지만, 문득문득 찾아오는 침묵은 한국전쟁을 목전에 둔 불안한 시기의 아득함을 상기시킨다. 「1945」는 종전 소식이 들려 온 1945년의 만주를 배경으로 조선을 향해 가는 향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일본군 위안소에서 일했던 명숙과 미즈코의 시선으로 1945년이 재현될 때, 일제강점기와 해방기의 역사에 대한 집단적 기억에 새로운 형상이 새겨진다.

 

■ 대화의 예술
본래 공연을 위해 쓰인 희곡은 대사와 지시문으로 구성된다. 대사가 대화를 이루고, 간결한 지시문이 동작과 표정, 그리고 침묵을 표현한다. 배삼식의 희곡은 이 소박한 형식으로 가능한 가장 커다란 감동을 이끌어낸다. 어떤 말은 침묵 속에 오롯이 떠 있고 어떤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다성적인 목소리가 된다. 「열하일기 만보」는 이러한 대화의 예술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작품 중 하나다. 정체불명의 짐승 ‘연암’이 한 마을에 가져온 혼란이 마을 사람들의 일상적이고 관념적인 대화를 통해 그려진다. 인물들의 고유한 어투는 그들의 개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화전가」의 생생한 안동 사투리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음악성을 띤다. 이처럼 작품 속 대사들은 고유한 리듬감으로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단 한 문장의 울림이 되어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 추천의 말

배삼식의 작품은 분명 무대화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독서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경지에 매번 이른다. 희곡이 대사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자. 저 방언들과 입말들이 귓가를 여지없이 때리는데, 어떻게 그 삶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겠는가. 뒷짐 지고 바라볼 수 있겠는가. ―박민정(소설가) | 추천의 글에서

 

「3월의 눈」을 좌표 삼아 다시 읽는 다섯 편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집단을 구분하기 위해 작동하는 이념이 아니라 집단으로부터 개인을 회복하기 위해 발견되는 이념을 읽는다. 한 사람을 위한 이념 위에서 완성된 과거가 해체되고 해체된 시간들이 다시 조립되는 과정을 거쳐 어디에도 없는 기억의 집, 나의 집이 완성된다. ―박혜진(문학평론가)| 해설에서

 

 

■ 본문에서

이순    이 사람아, 왜 여기 이러구 있어……. 집은 오래 비워 두면 안 되는 거야. 비워 줄 땐 비워 주더래두 돌아가야지, 그만 돌아와야지. 아이구, 이 착한 사람아, 자네 넋은 어디 두고 몸만 남았는가. 나는 집을 잃었구 자네는 집만 남았는가. 그래, 거기서라두 한숨 푹 주무시고 일어나거들랑 자다 일어난 듯 돌아오게. 꿈에서 깬 듯이 돌아가게. ―「3월의 눈」에서

 

남자    돌아왔구나!

여자    가긴 내가 어딜 갔었다구 그래.

남자    갔었지. 멀리 갔었지. 돌아와 줘서 고마워.

여자    멀리 간 건 당신이지. 난 늘 여기서 당신을 기다렸고. ―「먼 데서 오는 여자」에서

 

교충    꼭 그것 때문만이 아니라, 아시다시피 제가 잘하는 건 기억하는 일밖에 없잖아요? 전 이 마을의 모든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는데, 여길 떠나면 그게 죄다 아무 소용없게 되잖아요. 전 언젠간 그 기억들을 바탕으로 저만의 이념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그래서……. ―「열하일기 만보」에서

 

독골할매    봄에, 삼짇날 지내고 딱 요만 때시더. 음석도 장만하고 술도 장만하고, 그륵도 싸들고 해가, 경개 존 데로 나가니더. 집안 어른들, 액씨들, 동기간에 시집간 액씨들꺼정 다 모이가 이삐게 단장허고. 꽃매이 채리입고 나가니더. 나가가 바람도 시컨 쎄고 꽃도 보고 꽃지지미도 부치가 농가 먹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꼬, 그래 일 년에 딱 하루 놀다 오는 게래요……. ―「화전가」에서

 

명숙, 립스틱을 꺼내 미즈코의 입술에 발라 준다.

그리고 자신의 입술에도 바른다.

명숙    어때?

미즈코  기레이요.(예뻐.)

명숙    너도 예뻐. ―「1945」에서

목차

3월의 눈 7
먼 데서 오는 여자 57
열하일기 만보 127
화전가 241
1945 373
작품 해설 514
추천의 글 525

작가 소개

배삼식

1970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전문사 과정을 마쳤다. 1998년 「하얀 동그라미」로 데뷔했다. 2003년 극단 미추의 전속 작가이자 대표 작가로 활동하며 「삼국지」, 「마포황부자」, 「쾌걸 박씨」 등의 마당극과 뮤지컬 「정글 이야기」(창작), 「허삼관 매혈기」(각색)를 비롯해 「최승희」(창작), 「벽 속의 요정」(각색), 「열하일기만보」(창작), 「거트루드」(창작), 「은세계」(창작) 등 다수의 작품을 만들었다. 이후 「하얀 앵두」(창작), 「피맛골 연가」(창작), 「3월의 눈」(창작), 「벌」(창작) 등 왕성한 작품을 선보이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극작가로 자리매김했다. 2007년 「열하일기만보」로 대산문학상과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2008년 「거트루드」로 김상열연극상을, 2009년 「하얀 앵두」로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2015년 「먼 데서 오는 여자」로 차범석희곡상을, 2017년 「1945」로 ‘공연과 이론을 위한 모임’ 올해의 작품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배삼식 희곡집』 과 『1945』 , 『화전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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