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가

배삼식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0년 2월 21일 | ISBN 978-89-374-9111-5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40x210 · 148쪽 | 가격 12,000원

분야 한국 문학

책소개

 “날도 이래 좋고 꽃도 이래 좋은데 답답하이 집 안에만 있지 마고

  내일은 우리 마캐 화전놀이나 한분 가자.” 

 

  「삼월의 눈」, 「1945」의 배삼식 신작 희곡

    전운이 감도는 1950년 4월. 김씨의 환갑을 맞아 모여 앉은 여인들이

    환갑잔치 대신 화전놀이를 떠나며 벌어지는 하룻밤 꿈같은 이야기

 

★“이들의 화전놀이는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삶의 한순간,그 기억을 마음에 새기는 일이다.” -배삼식

★“어느덧 고부관계도 주종도 손위도 손아래도 아닌 그녀들이 죽마고우처럼 어울려 노는 한판 재미나고 슬픈 놀이, 세월 지나 대청 그림자 뒤로한 채 그 기쁨 떠올리는 마음에 깨고 싶지 않은 꿈이다”. -박민정(소설가)

편집자 리뷰

작가들이 사랑하는 작가이자 평단과 독자의 신뢰를 두루 얻고 있는 작가 배삼식의 신작 희곡 『화전가』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집안을 건사하기 위해 만주를 떠돌며 산전수전 다 겪은 김씨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딸, 며느리, 고모 등이 어렵사리 한데 모인 자리. 『화전가』는 한국전쟁 발발 두 달을 앞둔 1950년 4월, 경북 안동 김씨댁 여성들의 하룻밤 이야기를 다룬다.

‘이야기꽃을 피운다’는 말은 누가 처음 생각했을까? 편안한 자장가인 듯 파도치는 웃음바다인 듯 엄마와 이모들의 대화는 밤새 들어도 지겹지 않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걱정하고 공감하고 이해하고, 그러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은 채 이어지는 대화 속에는 여성들 내면의 평화, 그 원동력이라 할 만한 비밀이 빛나고 있다. 마침내 환갑잔치 대신 화전놀이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아홉 여성들. 경신밤에는 잠을 자면 안 된다는 풍속에 따라 이들은 동이 틀 때까지 웃고 울며 떠든다. 다정하고 다감한 순간 뒤로 살육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을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채.

서울에서 유학 중인 막내딸이며 대구로 시집간 둘째 딸까지 모두 모여 들썩이는 가운데 이따금 드리우는 부재의 그림자. 때는 바야흐로 1950년. 누군가는 이념을 위해 목숨 바치고 누군가는 이념 때문에 죽어야 했던 과잉된 의미의 시대에 남편은 소식이 없고 아들은 죽었거나 갇혀 있다. 차라리 무소식이 희소식인 불행의 시대. 비극의 와중에도 여성들의 대화는 끊이지 않는다. 소박한 기억과 정직한 기대감으로 가득 찬 이들의 대화는 의미 없이 충만하고 의미 없이 아름답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한가운데에서도 일상을 포기하지 않고 삶의 터전을 지킬 수 있는 건 이토록 의미 없이 충만한 대화가 있어 가능하다는 것을, 가족 같고 친구 같은 여성들이 서로를 보듬어 주는 말들의 풍경 안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사람 냄새가 나는 작품을 쓰고자 했다’고 밝히는 배삼식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역경 속에서 사람을 보듬어 줄 수 있는 것은 함께하는 이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화전놀이, 한국식 ‘여성의 날’

일찍이 우리에게도 ‘여성의 날’이 있었다. 화전놀이는 1년에 한 번, 농번기가 오기 전 봄기운이 충만하고 꽃이 가장 예쁠 때 즐기던 꽃놀이로 여성들에게는 시집살이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다. 만주를 떠돌던 시절에는 하지 못했던 화전놀이를 떠올린 김씨는 불길하고 불안한 상황 속에서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딸들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름다운 기억을 남겨 주고 싶은 마음으로 화전놀이를 추진한다. 가장 예쁜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날인 만큼 화전놀이를 준비하는 과정도 극의 재미를 더한다. 서로 더 예쁜 옷을 입으려고 다투는 자매들의 신경전이나 결혼할 때 가져왔다 지금은 다 팔고 한두 개만 남은 장신구들에 얽힌 사연, ‘박실이’나 ‘영주댁’ 같은 택호들은 1950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구체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장면으로 표현한다.

 

■2020년의 언어로 다시 쓴 가사 문학

규방가사(內房歌辭)·규중가도(閨中歌道)·규방문학(閨房文學)·규중가사(閨中歌辭) 등으로 불리는 장르는 여성들이 주체적이 목소리를 냈던 형식으로 꼽힌다. 주로 영남지방 양반집 부녀자들 사이에서 유행했으며 6·25전쟁 이후에는 거의 소멸된 것으로 전한다. 그중에서도 ‘화전가’는 조선시대 ‘여류문학’의 한 전형으로 봄철을 맞은 여성들이 화전놀이를 하며 읊은 가사다. 배삼식의 『화전가』는 소멸 직전인 20세기 중반을 배경으로 당시 ‘가사문학’으로 쓰였을 법한 이야기를 현대 희곡의 언어로 다시 쓴다. 전운이 감도는 공포의 시대를 살아가던 김씨댁 여성들의 애환과 슬픔, 의지와 연대는 문학사에서 소외되었던 ‘여류문학’의 자리가 변방의 그곳이 아님을 방증한다.

 

■사투리에 담긴 음악성

작품 속 표현을 빌리자면 화전놀이는 “집안 어른들, 액씨들, 동기간에 시집간 액씨들꺼정 다” 모여서 “이삐게 단장허고 꽃매이 채리입고” 나가 “바람도 시컨 쎄고 꽃도 보고 꽃지지미도 부치가 농가 먹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꼬 하며 1년에 딱 하루 놀다 오는” 것이다. 『화전가』에는 지금 안동에서도 듣기 힘든 안동 사투리가 완벽하게 재현됐다. 자연스러운 사투리를 위해 작가는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베도 숱한 베 짜고 밭도 숱한 밭 매고』, 『경북대본 소백산대관록 화전가』 등의 구술 자료와 방언 자료를 적극적으로 참고했다.

지역성 짙은 사투리는 흔히 가독성을 떨어뜨리고 의미 전달을 방해하는 요소로 인식된다. 그러나 말은 의미를 전달하는 기능적 도구만은 아니다. 사투리의 음악성과 아름다움은 장식적 요소에 그치지 않고 인물의 말과 생각, 그리고 행동의 여백을 표현하는 또 다른 언어로 역할한다. 특히 안동은 우리나라 여성이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는 규방가사의 전통이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인바, 안동 사투리를 읽는다는 것은 주체적인 여성들이 남긴 문학의 유전을 읽는 일이기도 하다.

 

■작은 것들의 예술

『화전가』는 국립극단 70주년을 기념하며 제작된 작품으로 의뢰 당시 작가에게 주어진 주제는 ‘예술’이었다. 따라서 『화전가』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배삼식 작가의 대답이기도 하다. 지금은 잊힌 정겨운 풍물들, 지난 시간에 대한 소소한 기억, 기억을 나누는 행위에서 비롯되는 그리움과 아쉬움의 감정들…… 이념을 기준으로 갈라져 너무도 쉽게 서로가 서로의 적이 되었던 시절을 배경으로 처음 먹어 보는 커피나 설탕 맛에 대한 이야기, 한복 노리개나 옷감의 느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는 한없이 사소하고 무용해 보인다. 그러나 이 사소하고 무용한 즐거움을 잃지 않음으로써 과거와 미래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만이 참혹한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무기가 된다. 그것은 또한 예술의 의미이자 예술의 가치이기도 할 것이다.

 

■줄거리

김씨의 환갑. 남편은 온데간데 소식이 없고 둘 있는 알들 중 하나는 앞서 보냈으며 남은 하나는 옥에 갇혀 있다. 흉흉한 시국에 환갑상이 웬말인가 싶은 김씨(닭실할매)의 의중과 달리 서울에 공부하러 간 막내딸 봉아와 대구로 시집간 둘째 딸 박실이 등이 모이자 떠들썩한 분위기가 된다. 아들 손자 없이 여성들만 모인 자리는 생각보다 활기차다. 난생 처음 봉아가 가져온 초코렛도 먹어 보고 쓰디쓴 커피도 마셔 보고 반짝반짝 빛나는 설탕을 녹인 설탕물도 나눠 먹으며 간만에 다정한 시간을 보내는 이들. 이야기하다 보니 기왕에 하는 잔치, 집 안에서 하지 말고 화전놀이를 가자는 데 일치단결한 여성들은 분주한 가운데 화전놀이를 준비한다.

 

■추천사

총성 소리 연기 자욱 아직 선연한데 둘러앉은 여인들, 노느라 정신없다. 세상 서러웠던 이야기 해 가며 세상 진귀한 것들 꺼내 놓고 구경하며, 살아본바 나라 망하고 시절은 하수상해 오지도 않는 바깥양반 환갑상만 가득 차려 놓고 울먹이던 서러움뿐인 여인들. 그 서러움 부려놓으며 울고 또 운다. 앞뒤로 되뇌는 사월은 잔인한 달…… 『화전가』에는 대문자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슬픔과 투쟁,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나가려는 사람들의 놀이가 회화처럼 담겨 있다. 노래란 무릇, 잘 살아내려는 비통이 아니던가. 마루에 모여 앉은 시엄마, 시고모, 올케, 언니, 동생 들이 참혹한 시절을 맞고 보내며 노래한다. 사월은 아름답고 또 그 아름다움 선명하기에 비참한 시절이라는 것을. 어느덧 고부관계도 주종도 손위도 손아래도 아닌 그녀들이 죽마고우처럼 어울려 노는 한판 재미나고 슬픈 놀이, 세월 지나 대청 그림자 뒤로한 채 그 기쁨 떠올리는 마음에 깨고 싶지 않은 꿈이다. -박민정(소설가)

 

■본문 발췌

 

“빌 것도 없는 인생이 와 이래 힘드노?”

 

“입안에 단맛은 퍼지는데, 독골할매는 왜인지 눈물이 난다.”

 

“봄에, 삼짇날 지내고 딱 요만 때시더. 음석도 장만하고 술도 장만하고, 그륵도 싸들고 해가, 경개 존 데로 나가니더. 집안 어른들, 액씨들, 동기간에 시집간 액씨들꺼정 다 모이가 이삐게 단장허고. 꽃매이 채리입고 나가니더. 나가가 바람도 시컨 쎄고 꽃도 보고 꽃지지미도 부치가 농가 먹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꼬, 그래 일 년에 딱 하루 놀다 오는 게래요…….”

 

“그래, 우리 봉알랑은 시집가지 마라. 시집 가가, 우리겉이 사지 마고, 공부도 마이 하고, 마 천지에 훠얼훨 돌아댕기매 귀경도 원대로 하고. 시집은 가가 머하겠나?”

 

“저녁 바람이 불어와 회화나무 새순을 흔든다. 두 여인, 저무는 빛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이윽고 하늘 저편에서 희미한 소리. 종소리가 울려오기 시작한다. 두 여인 위로 어둠이 밀려오고, 그 어둠처럼 고요하며 충만한 소리가 그들을 완전히 감싸 안을 때까지, 두 여인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다.”

목차

1장 종소리

2장 경신야 1

3장 경신야 2

4장 화전놀이

5장 종소리

 

작가의 말

작가 소개

배삼식

1970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전문사 과정을 마쳤다. 1998년 「하얀 동그라미」로 데뷔했다. 2003년 극단 미추의 전속 작가이자 대표 작가로 활동하며 「삼국지」, 「마포황부자」, 「쾌걸 박씨」 등의 마당극과 뮤지컬 「정글 이야기」(창작), 「허삼관 매혈기」(각색)를 비롯해 「최승희」(창작), 「벽 속의 요정」(각색), 「열하일기만보」(창작), 「거트루드」(창작), 「은세계」(창작) 등 다수의 작품을 만들었다. 이후 「하얀 앵두」(창작), 「피맛골 연가」(창작), 「3월의 눈」(창작), 「벌」(창작) 등 왕성한 작품을 선보이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극작가로 자리매김했다. 2007년 「열하일기만보」로 대산문학상과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2008년 「거트루드」로 김상열연극상을, 2009년 「하얀 앵두」로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2015년 「먼 데서 오는 여자」로 차범석희곡상을, 2017년 「1945」로 ‘공연과 이론을 위한 모임’ 올해의 작품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배삼식 희곡집』 과 『1945』 , 『화전가』가 있다.

독자 리뷰(2)

독자 평점

4.2

북클럽회원 6명의 평가

한줄평

작가의 희곡을 더 읽고 싶개 만드는 작품

밑줄 친 문장

알아듣지 못하고 흘려보낸 목소리들이 허공에 떠돕니다. 그것을 더듬는 것은 늘 때늦은 일입니다만.
자지 마라. 자만 안 된다.
독골할매 꼬초레?
박실이 초꼬레뜨.
봉아 촥릿.
도서 제목 댓글 작성자 날짜
화전가
안수찬 2021.11.26
배삼식
글쓰는공대생 202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