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으로 등단한 저자 김미현의 평론집. 1990년대 문학을 주제론, 작가론, 작품론으로 나누어 성, 악마성, 사랑, 대중성이라는 프리즘를 통해 박완서, 이윤기, 은희경과 배수아 등의 글을 분석했다. 금기와 법기에 대한 욕망과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을 발견하는 능력, 주례사나 선전 문구라고 비난받는 1990년대 작품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 책에는 그동안 저자가 발표했던 19편의 평론이 주제론, 작가론, 작품론의 세 범주로 나뉘어 실려 있다. 저자는 이 세 가지 차원에서 1990년대 이후 한국 문학의 흐름을 다각도로 분석하면서 독특한 시각으로 한국 현대 문학의 정체성을 찾고 있다. 문학을 담고 있는 상자? 판도라 상자 속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신들의 선물이자 인간에게 남은 희망이다. 그러나 인류에게 내려진 벌이자 모든 재앙의 근원일 수도 있다. 판도라 상자 속에 넣어진 문학, 이것이 우리 시대의 문학이 처한 상황이고, 그 상자를 열어 <희망으로> 꺼내는 것이 김미현 평론의 작업이다. 1부인 \”문학의 황도(黃道)\”에서는 성(性)과 악마성, 여성 작가들의 언어, 해방 이후의 연애 소설, 베스트셀러 소설([국화꽃 향기], [가시고기], [상도])을 다루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이후의 문학을 악마성이라는 주제로 솜씨 좋게 엮어내는 것이나, 성과 언어를 병치시킴으로써 언어의 독점자로서의 남성성을 폭로하고, 동시에 여성 작가들이 다양한 전략과 방식으로 그런 폭력성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부분은 저자의 독특한 시각을 보여 준다. 2부인 \”문학 십자군의 행로\”에서는 이윤기, 김이태, 송경아, 박완서, 은희경, 배수아에 대한 작가론이 실려 있다. 작품을 꼼꼼히 분석하고 있지만, 평론을 위해 작가와 작품을 희생시키지는 않는다. 작가를 지망하던 자신이 박완서론을 쓴다는 것은 <객관적인 평론이 아니라 유치한 연서(戀書)>라고 말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인간적인 애정과 관심 위에서 작품에 접근하고 있다. 3부인 \”문학이라는 상형 문자\”는 8편의 작품론을 담고 있는데, 그것들이 따로 떨어져서 파편적으로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앞의 1부, 2부와 긴밀히 연결되면서 책 전체와 조응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은희경의 작품은, 1부에서는 <해방 후 연애 소설>의 장기적인 관점에서 분석되고, 2부 작가론에서는 모진 세상에 대한 작가의 <농담>으로 파악되며, 3부에서는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라는 구체적인 작품이 분석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저자의 시각이 일관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층위에서 인간이라는 다각형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저자의 평론이 단지 작품과 작가의 분석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여성 작가들의 작품 분석을 통해 여성의 언어, 즉 성과 언어의 문제를 제기하는 데서 이 점은 잘 드러난다.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희망을 찾아내려는 나희덕, 억압적이고 남성적인 사회의 논리를 폭로하려는 김정란, 그런 사회에 위악적인 웃음을 지어 보이는 은희경을 다루면서, 저자는 <여성의 언어>라는 새로운 분석의 차원을 보여 준다. 나희덕은 <그러나>라는 말을 통해 끊임없이 부정들을 긍정적인 모성성으로 되돌려 놓으며, 김정란은 일부러 <비틀어진 말>을 사용함으로써 여성들은 <말을 빼앗긴 짐승>이라는 사실을 폭로하고, 은희경은 <모순의 언어>를 통해 상실된 자아를 회복시킨다. 그리고 이런 차원의 분석만이 이 여성 작가들이 <사이의 시학>을 가지고 있음을, 기존 언어의 이분법적 그물망에 매이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언어로 말하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따라서 저자의 언어 분석은 단순히 작품론이나 작가론 차원의 것이 아니라, 사회, 성, 주체 등이 얽혀 있는 감춰진 현실의 매듭을 드러내는 것이다. 일반 독자에게 가깝게 다가가는 평론 김미현의 평론은 다양한 작가와 작품을 통해 사회,문화적 흐름들을 읽어 낸다. 1990년대의 주요 작품은 물론이고, 대중 문학 평론을 기피하는 다른 평론가들과는 달리, 베스트셀러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국화꽃 향기]의 경우처럼 출판 전략에 따라 문학이 더욱 상업화되어 가는 경향을 지적하면서, 진정한 문학의 경계는 어디인지 묻고 있다. 이처럼 저자는 순수 문학이나 대중 문학에 대한 논의와 함께,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날카롭게 바라보면서 문화 전반을 읽어내려 한다. 그것은 저자의 시선이 문학을 넘어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미현의 평론은 별다른 생각 없이 베스트셀러를 집어 들었던 독자들에게, 이 시대에서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그것은 현학적이고 생소한 이론을 끌어들여 문학을 <분석>하지 않고, 평범한 말도 재치 있게 고쳐 쓰면서 진부한 것을 신선하게 드러내는 방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것저것 읽은 작품은 많은데 현대문학이 잡히지 않는 안개처럼 느껴지는 독자, 날카로운 분석과 따뜻한 시선이 함께 들어 있는 평론을 읽고 싶은 독자, 기형적인 듯 보이는 현대인의 정체성이 사실은 솔직함이었음을 깨닫고 싶은 독자에게 <아메바급 평론가>라고 자처하는 김미현의 글은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문학의 황도 -섹스와의 섹스.슬픈 누드-1990년대 소설 속의 성 …15 -불한당들의 문학사-1990년대의 악마주의 소설 …41 -여성.말하(지 못하)는 타자-여성언어의 자궁과 배꼽 …67 -연애부터 연애까지-해방 이후의 연애소설 …104 -Shall We Read-최근 베스트셀러 소설의 명암 …124 문학 십자군의 행로 -삶.아주 낮은 하늘-이윤기론 …151 -실낙원.오르페우스의 유목지-김이태론 …169 -새로운 문학 십자군의 행로-송경아론 …189 -다섯 개의 사랑으로 남는 당신-박완서론 …210 -짐작과는 다른 말들-은희경론 …223 -소설 바이러스-배수아론 …236 문학이라는 상형문자 -사랑의 상형 문자-은희경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245 -시지프 이후의 시지프들-박상우의 \”내 마음의 옥탑방\” …264 -사랑의 나무들-이승우의 \”식물들의 사생활\” …279 -위반의 변증법-이윤기의 \”그리운 흔적\” …294 -무덤에서 요람으로-조경란의 \”움직임\” …306 -이미지와 살다-배수아의 \”부주의한 사랑\” …317 -어떤 사람만이 어떻게 날아야 하는 지를 안다-김승희의 \”왼쪽날개가 약간 무거운 새\” …336 -유산과 불임의 발생학-신경숙의 \”깊은 슬픔\” …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