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자들
원제 The Inheritors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7년 3월 17일 | ISBN 978-89-374-6347-1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32x225 · 296쪽 | 가격 12,000원
시리즈 세계문학전집 347 | 분야 세계문학전집 347, 외국 문학
수상/추천: 노벨문학상
문명과 야만의 문제에 천착한 전후 대표 작가 윌리엄 골딩
『파리대왕』의 후속작이자 골딩 자신이 가장 아낀 작품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비극적인 대면을 통해
인간을 규정하는 핵심 속성인 폭력과 이기심에 대해 탐구한 수작
▶ 짧지만 강렬하고 다층적인 의미로 다가오며, 읽을 때마다 점점 더 진가를 발휘하는 작품.
—《가디언》
2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윌리엄 골딩의 작품 『상속자들』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7번으로 출간되었다. 윌리엄 골딩은 1954년 첫 소설 『파리대왕』을 통해 외딴섬에 고립된 소년들이 원시적인 야만 상태로 퇴행해 가는 과정을 그렸다. 인간 사회를 우화적으로 묘사한 이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이후 영화와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다. 첫 작품의 성공 이후 『상속자들』(1955), 『핀처 마틴』(1956), 『자유 낙하』(1959), 『첨탑』(1964), 『피라미드』(1967), 『통과 제의』(1980) 등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한 윌리엄 골딩은 1983년 노벨 문학상을 받으며 그 문학적 진가를 증명했다.
『상속자들』은 골딩이 『파리대왕』을 출간한 이듬해 발표한 소설로, 『파리대왕』의 후속작 격이다. 특히 자신이 발표한 작품 중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을 정도로, 골딩 문학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외딴섬에 고립된 소년들의 원시적인 생활 이야기를 그린 『파리대왕』과,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비극적인 대면을 소재로 한 소설인 『상속자들』은 후속작인 만큼 주제 면에서 연속성이 있다. 골딩은 이 두 작품을 통해 문명과 야만의 대립, 순진무구한 존재의 희생, 인간의 폭력성 등의 문제들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인간을 규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속성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끈질기게 사유한다. 문명의 옷을 입고 야만성을 끊임없이 자행해 온 인류 역사와 특히 참혹한 살육을 초래했던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허망한 폐허를 목도한 골딩은 인간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의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을 이 작품들에 담아내고 있다. 『파리대왕』의 충격과 감동을 잊지 못하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상속자들』은 인간에 대한 새로운 통찰의 기회가 될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다. 다른 존재의 목소리다!
원시 시대 네안데르탈인들의 사고 세계를 한 편의 소설로 승화시킨 작품
우리의 본성은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빼앗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한 인간이 모든 걸 가질 수 없고 같이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가르쳐 주거나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역사란 원죄의 연대기에 불과하다.—윌리엄 골딩
로크와 파와 그 사이에 낳은 아이로 추정되는 여자아이 라이쿠, 로크의 부모로 보이는 말과 늙은 여자, 하와 닐과 둘 사이에 생긴 갓난쟁이로 보이는 ‘새 아기’로 구성된 네안데르탈인 공동체는 극심한 굶주림 속에서 먹을거리를 어렵사리 구해 가며 안식처를 찾아 해변에서 얼음이 녹아내리는 산으로 이동하며 하루하루를 살아 나간다. 거대한 폭포 옆에 있는 절벽 위의 안식처인 ‘테라스(terrace)’에 도착하는 여정을 거치면서 원시인들의 세계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자신들과는 다른 ‘새로운 존재(The New People)’를 우연히 맞닥뜨리게 된다. 이 ‘새로운 존재’는 다름 아닌 현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다. 그동안 네안데르탈인 공동체를 이끌었던 나이 든 말이 죽음을 맞은 후 공동체의 지도자로 떠오른 로크는 이 새로운 존재들에 대해 가능한 사고 체계 안에서 최대한 인지하고 대항해 보려 하지만, 좀 더 교활하고 생존 능력이 뛰어난 호모 사피엔스들을 감당하는 것은 역부족이다. 위기에 처한 마지막 네안데르탈인 공동체가 결국 맞게 되는 결말까지, 소설은 독자를 조마조마하게 만들며 진행된다.
『상속자들』의 놀라운 점은 사물을 표면적으로 인식할 뿐 아니라 생각을 정교한 언어로 표현할 능력이 없는 네안데르탈인의 시선에서 그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단순하지만 명료하고도 아름답게 독자들에게 전달하며 세상을 ‘새롭게’ 보게 만든다는 데에 있다. 가장 특이한 점은 이들은 시간을 직선적으로 파악하고 분석하는 현대인들과는 다르게 세상을 늘 현재로만 파악한다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이들에게는 기억조차도 현재의 ‘그림’으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돌을 도구로 사용했던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쓰는 말은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이 돌에 대한 그림이 있어. 말이 이 돌로 가지를 잘랐어. 봐! 여기가 자르는 부분이야.”(34쪽) 현대인의 시각에서 볼 때 다소 어색하고 답답한 이들의 소통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언어와 사고 체계에 한계가 있는 이들이 오히려 서로와 진정으로 깊은 교감을 하며 이타적인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네안데르탈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호모 사피엔스
호모 사피엔스의 후예인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꿰뚫다
이 소설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경험하는 데 익숙해진 나머지 오히려 호모 사피엔스의 행동들이 기이하고도 잔인하게 느끼도록 하는 골딩의 독특한 서술 기법이 빛을 발한다. 순진무구한 네안데르탈인이 지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진화하고 우월한 ‘새로운 사람들’에 의해 파멸당하는 이야기를 통해 골딩은 원시인의 눈에 비친 호모 사피엔스를 해부하며 그 호모 사피엔스의 후손인 인간을 타자화한다.
영악하지만 파괴적인 성향의 호모 사피엔스들은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돌보는 네안데르탈인의 성정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일례로 로크가 속한 공동체 일원들은 늙어 힘이 없어진 지도자인 말을 언제나 배려하고 신경 쓴 반면, 호모 사피엔스의 지도자로 새롭게 부상한 투아미는 공동체를 이끌어 왔던 노인 말런을 무자비하게 살해하려고 계획한다. 극도의 굶주림에 어쩔 수 없이 상처입은 암사슴을 잡아먹게 되었을 때 네안데르탈인들은 생명을 죽이는 행위에 대해 깊이 죄책감을 갖지만, 호모 사피엔스들은 네안데르탈인들을 ‘숲 속의 악마’라고 부르며 라이쿠와 새 아기를 납치해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도구로 이용한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자신들을 파괴하려 한다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순수한 세계 속에 살고 있다. 불과 화살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쓰는 ‘새로운 존재’가 결국 바로 인간, 우리 자신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순간 전율이 일어난다.
이 소설은 순수세계 속에 살던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에게 자리를 찬탈당하는 것을 애도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 골딩이 단순히 자신이 인간 본성에 대한 단죄를 내리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듯이, 호모 사피엔스인 우리가 ‘상속자들’이라면 무엇을 상속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 셈인데, 결국에 독자들은 인간이 잔악한 ‘새로운 사람’들의 특징뿐 아니라 네안데르탈인의 순진무구함도 상속받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골딩이 이 소설을 가장 사랑했던 이유는 로크의 순진무구함을 회복할 수 있는 인류의 진정한 ‘진보’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옮긴이의 말」에서
사고 실험 소설 형식을 통한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
인간의 한계를 꼬집는 골딩의 문학적 재능이 빛을 발하는 소설
사실적인 설화 예술의 명쾌함과 함께 현대 인간의 조건을 신비스럽게 조명하여 다양성과 보편성을 보여 주었다.—1983년 윌리엄 골딩의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
골딩의 데뷔작 『파리대왕』은 핵전쟁이 벌어진 근미래에 한 무리의 영국 소년들이 탄 비행기가 안전한 장소로 대피하려다 태평양의 한 무인도에 불시착한 상황에서 시작한다. 흔히 이 소설은 무인도에 떨어진 소년들이 벌이는 에피소드 때문에 모험 소설로 분류되거나, 이들의 행동방식이 인간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점에서 알레고리 소설로 해석되기도 한다. 한편 실재하지 않은 상황을 가정하고 그 후에 일어날 일을 머릿속으로 상상하여 창작했다는 점에서 사변소설 혹은 사고 실험 소설로 보는 시각도 있다. 『상속자들』 역시 그 점에서 『파리대왕』과 맥을 함께한다. 특히 근미래가 아닌 선사시대를 배경으로 가정한 점만 다를 뿐, 그 상황 속에 처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해 나갈 것인지 사변적으로 풀어냈다는 점은 골딩 문학의 공통점이라 할 만큼 일치한다.
선사시대인 만큼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실제 이야기는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골딩만의 문학적 상상력이 더욱 빛을 발한다.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하고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정복했다.’라는 진화론적 사실 하나만으로 이 두 종족이 살던 세계와 이들이 느끼고 살아온 세계를 그린 것은 『상속자들』이 유일하며, 문학사적으로도 독특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그들 아래에는 안개가 숲과 초원을 가리고 산 옆에서 조용히 쉬고 있었다. 그들은 안개를 향해 가파른 쪽을 따라 뛰어가기 시작해 날듯이 내려갔다.풀은 젖어 있고 잎 사이에 걸쳐 있는 거미줄이 발목에 달라붙었다. (……) 경사가 완만해지고 덤불이 더 많아졌다. 그들은 안개의 경계를 향해 내려갔다.
“태양이 안개를 빨아 마실 거야.”(53~54쪽)
사람들은 침묵을 지켰다. 삶은 충족되었고 더 이상 음식을 찾기 위해 멀리 갈 필요가 없고 내일은 안전했고 그 이후에 날은 너무 요원해서 아무도 그날을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삶은 매우 아름답게 가라앉은 허기처럼 느껴졌다.(65~66쪽)
“나에게 그림이 있어. 다른 사람이 음식을 찾고 있고 사람들은 사냥을 해…….”
그녀가 도전적인 태세로 늙은 여자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배가 고파.”
닐이 바위에 등을 비볐다.
“그것은 나쁜 그림이야.”(110쪽)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라 흩어져 사라졌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다른 사람이 불을 가졌고, 사람들은 결코 들 수 없었을 아주 두껍고 젖은 통나무를 사용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파와 로크는 공유할 수 있는 그림을 전혀 찾지 못한 채 연기에 대해 생각했다. 섬에 연기가 있고 섬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 그들의 삶에는 이것에 대해 추리할 어떤 판단의 준거도 없었다.(114쪽)
파에게서 공포가 전해졌다. 그것은 공유된 그림이 아니라 일반적인 감각과 쓴 냄새, 정적과 고뇌에 찬 주의력, 부동 상태와 긴장된 의식이었고 같은 감정들을 그에게 자아내기 시작했다. 이전 어느 때보다도 확실히 두 명의 로크가 있었다. 안과 밖의 로크였다. 안쪽의 로크는 계속 쳐다볼 수 있었다. 하지만 바깥쪽의 로크는 숨을 쉬고 듣고 냄새를 맡고 항상 깨어 있어서 또 다른 피부처럼 집요하고 그를 조여들었다. 그것은 그의 뇌가 그림을 이해하기 훨씬 전에 두려움에 대한 지식과 위험의 감지를 그에게 강요했다.(163쪽)
로크가 앞으로 달려갔고 타나킬의 비명 소리가 물을 가로지르는 라이쿠의 비명 소리를 울렸고 그는 공포에 떨었다. 그가 횡설수설하며 돌출부 입구에 섰다.
“라이쿠는 어디 있어? 라이쿠를 어떻게 한 거야?”
타나킬의 몸이 쭉 펴졌다가 휘었고 그녀의 눈이 돌아갔다.
그녀가 비명을 멈추고 누웠고 웃는 이 사이에 피가 보였다.(248쪽)
상속자들 11
작품 해설 271
작가 연보 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