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최근에 뮤지컬 영화로 개봉이 되면서 출판사의 홍보 및 세일 등으로 또 한번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나도 그 중의 한사람으로 영화를 보기 전에 미리 책을 한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으로 민음사의 위대한 개츠비를 구입하여 읽게 되었다.
소설의 서두에 닉은 어렸을 적 아버지의 충고의 말을 회상하면서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않고 유보해 두는 관대한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동부에서의 경험(소설의 주내용) 은 더이상의 관대한 태도를 가지지 못하게끔 하였기 때문에 그곳을 떠나 왔다고 말한다. 그곳에서 톰과 데이지, 조던 베이커 등의 여러 사람들에게 경멸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유인즉 톰의 경우 부유한 집안과 재물을 배경으로 그 뒤에 숨어사는 인물이다. 직접 자기 자신이 무엇인가를 해본 적이 없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직접적으로 책임 지려고 하지도 않는다. 다만 돈으로 해결할 뿐이다. 그리고 자기 사촌 동생인 데이지 역시 속물이다. 돈 때문에 사랑을 배신하고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음을 알고 있어도 부유한 생활에 대한 미련 때문에 그것을 못 본체 한다. 그리고 개츠비가 자기 대신 사고를 뒤집어 쓰고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장례식에 조차 나타나지 않는다. 주인공 닉은 이런 이 부부에게 염증을 느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조던 베이커는 골프 선수로 승리를 위해 규정 위반쯤은 고민도 하지 않고 저지른다. 이런 사람들 속에서 만난 개츠비는 주인공이 보기에 다른 사람이었다.
사실 개츠비는 젊은 나이에 부를 쌓기 위해 부정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인물이었다. 소설에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조폭과도 연결되어 있고 부당 채권 거래, 밀주 등과 같은 방법 등으로 돈을 벌어드린 것이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알 수가 있다. 주인공이 밝히고 있지만 경멸하는 행위를 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개츠비와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개츠비만이 탁월하고 창조적이고 비범한 인물이고 낭만적인 사람이며 끝으로 정당한 사람이라고 밝히고 있다. 아마도 개츠비가 이런 부를 쌓게된 목적이 다른 사람들과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개츠비가 부를 쌓은 목적은 단 하나 바로 5년전 사람을 되찾기 위해서 였다. 닉이 개츠비를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개츠비는 웨스트 에그에서 이스트 에그에서 비쳐오는 초록색 불빛을 동경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데이지가 살고 있는 집의 불빛이었다. 그렇듯 개츠비는 데이지와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자신의 배경을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부를 축적하고 데이지와 만날 계기를 만들기 위해 닉의 집 옆으로 이사를 하게 되고 의도적으로 그에게 접근하게 된것이다. 사랑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랑을 위한 그의 희생적 사랑에 닉은 감동했다. 그러했기에 개츠비가 죽기 얼마 전 그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개츠비 한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들 보다 낫다고 선언적인 말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것이 작가가 전하고 싶었던 주제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당시 1920년대 경제 호황을 누리던 시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만 축적하는 그런 시대에 대한 비판, 순수 이상주의에 대한 회귀 등에 대해서 말이다. 이 소설이 1925년에 나왔고 1929년대 갑작스런 주식시장 붕괴로 인해 경제는 바닥을 치게 되었다. 이렇듯 대공황이 도래한 것이 마치 개츠비의 죽음이 보여주는 예언적 의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