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강한 영향은 1Q84였지만 그전부터 읽어보고 싶던 책이기도 했다. 문체와 소설의 성격상, 분위기가 <동물 농장>과 매우 흡사하면서 더 어둡고 냉정한 느낌이었다. 나는 정치적인 내용에 대해서 가타부타 얘기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없다. 그래서 이 책을 보면서 느꼈던 그 경고의 메시지들을 적확한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오웰의 책은 그런 점에서는 어렵지만, 반면에 정말 재밌게 읽힌다. 순수한’reader’로서의 즐거움이었다.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서 거의 단숨에 읽어버린 것 같다. 그 짧은 <동물 농장>은 집중을 못해서 며칠에 걸쳐서 굼뱅이 기어가듯이 읽었는데 훨씬 두꺼운 <1984>는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으로 읽었다.
미래 사회의 암울한 전망을 보여주고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는 무거운 소설이지만 그 상황 설정이 정말로 있을법하게 구체적이고 내용 전개도 흥미로워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마지막에 윈스턴이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고 했을때는 싸늘한 공포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저항하고 마음속 깊은 곳은 언제나 인간성을 간직하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던 윈스턴도 결국은 다른 인간들과 똑같은 생각으로 똑같이 죽게 된 것이다.
정말로 이런식의 세뇌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은 그 공포심을 극대화시켰다. 우리는 말그대로 ‘정보화’시대 사람들이 아닌가. 오웰은 미래를 생각하며 꾸며서 쓴 내용이지만 지금은 모두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그저 민주주의체제 아래 자유와 평등을 외칠 수 있다는 것이 다를 뿐.(외친다고 다 그렇게 되는 건 아니지만) 자유를 마음속으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이라.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나라고 윈스턴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권력은 수단이 아닐세. 목적 그 자체이네. 혁명을 보장하기 위해서 독재를 행사하는 게 아니라 독재를 하기 위해서 혁명을 일으키는 걸세. 박해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박해일 뿐이네. 고문의 목적은 고문이고 말일세. 그처럼 권력의 목적도 권력 그 자체이네.”
이제야 리틀피플이 의미하는 바가 어떤건지 어렵풋이나마 알 것 같다. 문학동네 61호 남진우의 작품론에선 이렇게 말한다. ‘리틀 피플의 등장은 빅 브라더의 죽음 이후에도 사회 곳곳에 모세혈관처럼 분포돼 유지 작동되는 미시권력의 원천을 보여준다. 그들은 역사 저 너머 신화세계에서 찾아온 손님들이다.’ 리틀피플 역시 가상의 존재다. 어떤 목적을 위한 힘들이 상징적으로 만들어진 것. 세계의 균형을 위해서 필요한 존재일 수도 있지만 인간의 입장에선 선도 악도 아니고, 필요한지 불필요한지 조차 알 수 없다.
빅 브라더가 보이는 상징이라면 리틀 피플은 보이지 않는 상징이고, 그 둘은 어떤 식으로든 ‘균형’을 위해서 존재했다. 이 두 상징을 엮어서 생각하자면 이런 이해관계가 나오는 것이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이런 느낌이 맞는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어렵풋이’ 알 ‘것’같은 느낌일 뿐. 그리고 이렇게 주지적이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들이 순수한 재미를 주는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