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트세대도 아니고 재즈도 잘 모른다.
그렇지만 길 위에서를 읽을 때, 어떤 흐름을 따라 샐이 있는 그 길 위에서 작열하는 태양을 정수리로 정확히 받아내며 다 떨어져가는 신발을 끌고 땀과 먼지에 쩔어 냄새나는 몸을 하고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그 길 위에서 비루한 삶을 이어가는 누군가를 만나서 나의 저열한 마음을 확인하고 그런 모습에 또 다시 비루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을 통해 무의미와 고통을 알아가도,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고 한때의 친구를 외면하는 날이 오더라도 길 위에 있고 싶었다.
삶이 나를 비참하게 할지라도 길 위에 있다면 반드시 어디론가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참하기에 어디로든 가야만하고 어디로 가려면 길이 있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이뤄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잭 케루악도 길 위에서 알게 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