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잔인한 영화를 싫어한다. 더 정확히 이야기 하면 잔인한 영화의 장면들을 보는 것을 싫어한다. 영화의 잔인한 장면을 보고 나면 그 잔상이 오랫동안 남아서 괴롭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에 본 영화 중에서 악당이 포로의 배를 가르고 장기를 꺼내는 장면이 있었다. 그 포로는 자신의 장기가 꺼내지는 장면을 보며 기겁을 한다. 그 영화를 보고 나서 한 참을 그 영상에 시달렸다. 때로는 내가 수술대에 누워 있고, 내 눈 앞에 나의 내장이 드러나는 듯한 상상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서도 이런 불편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이다. 오래 전부터 제목을 보면서 읽지 말아야지 생각 하다가 결국은 읽게 되었다. 읽는 내내 내가 봐서는 안 될 것들을 보는 것처럼 불편했다. 한국이라는 생명체에서 내장을 드러내 놓고 보여 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내장을 보는 것은 한국이라는 생명체이며, 동시에 내 자신이었다. 모든 것이 사실인데, 그 사실을 보는 것이 불편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것들을 인정하는 것들이 불편했다.

이 소설은 주인공 ‘계나’는 한국이 싫어 호주로 떠난 젊은 여성이다. 그녀는 마치 친구에게 편지를 쓰듯이 자신이 한국을 떠난 이유와 호주에서의 삶을 담담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그녀는 한국에서는 꽤 좋은 대학을 나온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한국에서는 이류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것도 아주 발버둥 쳐야 그나마 이류의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녀는 학교를 졸업한 후 힘들게 중견 증권사에 취직한다. 그리고 매일 닭장 같은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한다. 다람쥐 책바퀴 같은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직장 생활을 한다. 주위에서는 다들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삶에 의문을 느낀다. 정말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 것일까? 그리고 자신이 직장에서 모은 2천만원을 가지고 호주로 떠난다.

이 책에서는 계나의 시선으로 한국이라는 생명체의 내장을 들춰낸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그 내장을 잘 볼 수 있도록 우리의 시선 앞에 던져 놓는다. 부와 학벌로 계급을 만들고, 자신의 계급 위로 올라가기 위해 벌버둥을 치면서도, 자신의 아래 계급은 철저히 무시하고 조롱한다. 그녀는 남자 친구 부모님을 만나고 온 날 서러움에 폭발하여 남자 친구에서 쏘아 붙이다.

“야, 그리고 너희 집이 뭐 그렇게 잘났어? 내가 이건희한테 무시를 당했으면 이해를 하겠다. 너희 집이 강남에 아파트 한 채 있는 거 말고 가진 게 또 있어? 대학 교수가 그렇게 높은 자리야? 교수는 빌딩 경비 딸 무시해도 되는 거야?” (P82)

 

 

호주에서의 삶 역시 쉽지 않다. 호주로 도착하는 날 그녀는 생리가 터졌지만 속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공항에서 숙소까지 간다. 숙소는 주차장을 개조한 여러 명이 공동으로 쓰는 곳이었다. 그녀는 호주에서 최저임금도 못 받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처지와 같은 몇 사람을 만난다. 실패도 하고 좌절도 한다. 그 사이에 헤어졌던 남자 친구는 방송사 기자가 되어 그녀에게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말한다. 그녀는 잠시 한국에 돌아와 혼란을 느낀다. 그러나 다시금 한국의 현실을 보고 호주로 발길을 돌린다.

계나에게 있어서 호주는 결코 한국보다 살기 편한 곳이 아니다. 그러나 계나는 한국이라는 곳에서 살 수가 없었다. 아무런 미래도 없이, 하루 하루 살아가기에 바쁜 현실들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 결국 그녀는 한국을 버린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나가 마치 집을 나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생하는 우리들의 딸처럼 보였다. 누군가는 그녀에게 어른스러운 말투로 “학생 이래서는 안 돼! 집으로 돌아가야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죽 하면 집을 나갔을까?’ ‘조금만이라는 마음을 받아 줄 공간이 있다면 저 고생을 하며 집을 나가지는 않았을텐데……’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한국이 조금만이라도 계나를 받아 주었다면 어땠을까? 조금만이라도 그녀가 마음을 붙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몰아붙이지만 말고 조금이라도 숨을 쉴 여유를 주었다면 어땠을까? 한국이라는 생명체의 내장이 내 앞에서 꿈틀거리는 것 같아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