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재미있다. 노벨상을 받은 작품인데 따분하기는 커녕 옛기억도 새록새록 나고, 끝까지 눈을 뗄 수가 없다.
실재로 스탈린 시절의 소련 수용소에서 10년을 지낸 솔제니친의 자전소설일 수도 있는 이 소설은 누가봐도 억울할 만한 이유로 수용소에 갇혀 10년을 살게 되어있는 이반 데니소비치라는 사내의 수용소의 하루를 극히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수용소에 살지 않았던 사람이면 도저히 쓸 수 없는 디테일과 감정묘사가 일품이다.
왜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 만든듯한 전혀 공감가지 않은 군드라마나 영화가 판을 치는 상황에서, 용서받지 못한자를 봤을때의 기분이랄까?
대한민국 사내의 상당수는 수용소를 경험한다. 자유의 박탈, 집단 노동, 규율, 부조리… 여러모로 군대와 수용소는 닮아있다. 뭐 연애시대의 손예진의 그 명대사 처럼 기억이란 놈은 과거의 일상까지도 추억으로 만들어 버리기에, 군시절의 기억은 10년이 지난 지금 술집 안주거리 추억이 되어있지만, 그럼에도 그 누구도 다시 돌아가라면 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전역일까지 날짜를 헤아리며 먹는것에 집착하고, 조금이라도 편해보려고 애쓰며, 그 안에서 나름의 생존방식을 체득하는 것은 2000년대의 대한민국 군대와 다르지 않다. 기상나팔, 아침점호까지의 짧은시간, 점호, 긴 일과시간, 일이등병에겐 일과시간 보다 힘든 저녁의 내무생활, 저녁점호, 취침…
나의 군시절의 하루를 새록새록 꺼내보며, 빙그레 웃음짓기도 하고, 그래도 한번쯤은 해볼만 했지? 라고 위안삼아보기도 하지만,
사실 소설속 주인공 슈호프는 더욱더 절망적인 상황이다.
억울한 누명, 10년형이고 벌써 8년을 살았지만 그럼에도 형기를 마치고 다시 돌아 갈 수 있을까 기대할 수 없는 수용소 생활,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에 남들이 받아보는 사제소포는 기대하지 못하고, 영하30도 밑으로 내려가는 혹한 속에서의 노동, 간수들, 같은 죄수들간의 착취
그럼에도 슈호프는 단한마디의 불평도, 비난도 하지 않는다.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 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정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 P208
마지막까지 그저 하루를 무사히 보낸것에 행복해 하는 사내
그리고 그것이 더욱더 스탈린의 소련을 비극적으로 그리고, 그 어떤 비판보다 효과적이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