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의 난해함에 있어서 생각의 깊이로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심오함에 버금가고 문장이해함에 라틴어공부할때처럼 수수께기푸는 듯하다.
독파하기가 쉽지 않다 .몇달이나 걸려 겨우 한권을 읽었으니 말이다. 오기를 불러가져다주기에 충분한 매력을 지닌 책이다. 끝까지 읽는냐 ,포기하고 마느냐 ,,,,
오기로 학창시절에 괴테의 파우스트도 읽었는데 말이다. 하긴 머리에 남는게 가물가물해도 그래도 끝까지 읽었다는 그 자체가 주는 만족감도 있으니까.
책 읽는 것도 일종의 의식의 싸움이다.아니 이 책을 쓴 저자 프루스트라말로 의식의 전사다. 평생동안 자기 의식의 세계에 힘을 쏟은 자들이다.
이들은 얼마나 자기 의식을 파고 들어간 자들인가 하면 사유의철학자 헤겔이 한번은 생각에 깊이 심취해서 산책중에 신발한쪽이 벗겨져 버린것도 모른채 걸어다녔을 정도로 의식에 몰두한 자들이다.
그런데 프루스트의 소설의 내용을 담고 있는 그의 의식은 그 이전까지 어떤 의식의 종류와는 다른 독창성이 있다. 글을 쓰는 동기가 여타 다른 작가처럼 분명한 의식속에 줄거리를 엮어가는 아니라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간에 그것들의 심연에 담겨져 있던 기억들이 어떤 동기들을 인하여 쏟아져 나와 의식세계에 가득히 메워진 회상의 스토리들을 언어로 그림을 그리되 어떤 부분은 정밀묘사 하듯이 어떤 부분은 인상적인 것으로 그려낸다.잠이 드는 듯 마는 듯한 무의식의 공간에서 갑자기 불현듯 떠오르는 현상, 마들렌의 향의 차를 입에 대는 순간 전혀 평상시 의식의 공간안에 있지 않던 상념들이 쫘악 밀려들어오는 경험의 세계를 말하고 있다, 나도 온천욕을 즐기때마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곤 한다 나른하게 몸을 물에 맡기고 거의 무념무상, 그런데 물기를 머금은 피부에 아주 세미한 미풍이 피부와 솜털을 애무하듯 스치는 그 순간 온몸은 신선한 상쾌함으로 기분이 향기에 취한듯 최고조이다. 그러면서 어김 없이 나의 의식에 밀려드는 소년시절의 고유한 피서 , 아주 더울때에 자전거를 타고 한시간가면 천혜의 모래백사장이 한없이 펼처져 있는 내성천에서 어느 다리 밑의 그늘진 곳에 멱을 감고 잠시 누워있노라면 어디선가 산들 산들 다가오는 공기가 감칠나게 내 피부와 솜털을 애무하는 바로 그 상쾌한 느낌이 막 떠오른 것이다 . 고향의 향수, 노스텔지어를 불러 일으킨다. 잠시 눈을 뜨지 않고 감미로운 상념에 내 의식을 맡긴다. 프루스트의 의식의 세계는 결국 모든 일상인의 그것과 다를바 없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초반부분을 읽어 보았는데 마치 프루스트의 이 의식의 소설기법을 그대로 옮긴 듯하여 보였다.
프루스트 작품이 어렵기는 하나 사실 우리들 모두가 체험하는 것으로 흐르는 시간속에 녹아 있는 삶의 이야기를 그의 독창적인 의식의 기법으로 들려주기에 20세기 문학의 선구자로서 당연히 세상은 그의 작품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