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네히트의 죽음의 운명에 대하여

이상향의 수도원 카스탈리안의 명인 크네히트가 현실의 삶에 균형감을 가지려고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익사하고만다.

너무나 허무하고 어이가 없고 황당하게 생각할수 있는 결말이다.

하지만 그의 죽음의 운명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는 독자에게  헤르만 헤세는 그의 전작에 크네히트의 운명을 이미 예시 한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황야의 이리 27p     사색하는 사람은 , 사색을 본업으로 삼는 사람은—-  ,땅을 물이라고 착각하는 셈이지요.                                   그런 사람은 언젠가는 익사할겁니다.

92p      정신적인 인간은 현실을 고향으로 삼지 못한다며,—-

 

그렇다.  유리알유희의 크네히트는 저자인 헤세뿐만 아니라 시대의 모든 사색자들, 지성인들의 현실에 대한 딜레마의 운명을 지적하고 잇는 것이다.

이 책의 결말 크네히트 사색자의 전형의 어이없는 죽음의 운명이 시사하는 바는 이 세계  역사에도 현재 이 사회현실앞에서도 그 개연성을 담고 있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이 세상의 현실앞에 숨막히는 답답함과 심장이 쪼여들것같은 통증을 느낀채 죽음을 맞이한다.

소크라테스,예수도 그리고 이순신을 비롯한 모든 사색자의 죽음은 그렇게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물론 헤세는 그의 마지막 작품의 세계에서 명인의 죽음이 결코 의미 없는  부고로 끝낼 생각은 아닐 것이라고 단정 지울 수가 있다.

티토라는 후계자를 통해 사색자의 사명은 계속 이어질 것을 향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비록  질식할것 같은 현실앞에 크네히트같은  운명으로 끝나겠지만 사색자는 시대적사명을 짊어 지고  세상현실을 물처럼 헤엄치려 도전할 것이라고  미래를 바라보고  예언자처럼 조용히 표효하는 헤세의 모습을 감지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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