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그래서,

‘한국이 싫어서’

예전부터 서점에 놓여있는 것을 몇 번 보았다.

꽤 많은 사람들이 그 주변을 서성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 옆을 지나쳐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일부러였던 것 같다. 눈길은 항상 갔는데 의도적으로 눈길을 피했다.

제목이 마음에 안들었다.

한국이 싫어서

마음에 안들어.

저렇게 솔직해도 되는거야??

요즘 젊은 애들이 한국 싫다고 입이 닳도록 말하는걸 그대로 옮겨놓다니

너무 시대흐름에 편승하는거 아냐???

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눈길을 피했고, 매번 지나쳐갔다.

근데 어쨋든 나는 그 시대에서 살고 있었고 나도 그 시대의 젊은 애들이었다.

​가끔 외국으로 연수가는 친구들과 떠나기 전 만날때, 아니면 페이스북으로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묘한 감정이 들고는 했다.

부럽긴 한데, 정확히 무엇이 부러운지를 모르겠다.

현재 상황을 벗어나는 느낌이 부러운거였을까

앞으로 비단길만 놓여있는것도 아닌데

난 뭐가 부러웠던 걸까

여기서 주인공 계나는 3년차 금융회사에 다니던, 그래도 서울 소재 사립대학교를 나온, 하지만 금수저는 없어서 자립하는 평범한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한국이 싫어서’ 단지 그 이유만으로 3년동안 모은 돈 2000만원을 가지고 호주로 떠난다.

내가 여기서 못살겠다고 생각하는건…..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되어야 할 동물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 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곳 주변에 문화시설이 많았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걸 따져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 만날 나와서 사자한테 잡아먹히는 동물 있잖아, 톰슨 가젤. 걔네들 보면 사자가 올 때 꼭 이상한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 하나씩 있다? 내가 걔같애. 남들 하는대로 하지 않고 여기는 그늘이 졌네, 저기는 풀이 질기네 어쩌네 하면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있다가 표적이 되는거지.

하지만 내가 그런 가젤이라고 해서 사자가 오는데 가만히 서 있을 순 없잖아.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은 쳐봐야지. 그래서 내가 한국을 뜨게 된거야.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우는게 멋있다는 건 나도 아는데….그래서, 뭐 어떻게 해? 다른 동료 톰슨가젤들이랑 연대해서 사자랑 맞짱이라도 떠?

​이부분을 보고 안웃을 수가 없었다. 아니, 내 생활을 옮겨놓으셨어요? ㅋㅋㅋ 나도 보면 뭔가, 묘하게 튀어나와있는걸 나도 느끼는데,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네…ㅋㅋ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 어느새 정신차리고 보면 애들은 저만치 달려가고 있어 나는 뛰기 싫은데, 왜 굳이 뛰어야 하는거지? 뭐야 이상황, 무슨 설명이라도 해주고 뛰라고 말해 라고 외치고 싶은적이 한두번이 아닌데 그걸 이렇게 톰슨가젤에 잘 비유하다니, 역시 문장력 하나는 끝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일할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거 같아. 내가 어떤 조직의 부속품이 되어서 그 톱니바퀴가 되었다고 해도, 이 톱니바퀴가 어디에 끼어 있고 이 원이 어떻게 굴러가고 이 큰 수레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그런걸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난 내가 무슨 일을 왜 하는지도 모르겠고 이회사는 뭐하는 회사인지 모르겠고 온통 혼란스러웠달까. 아니 아예 알려고 하지도 않았지 중고생과 다름없었던 거 같아

(중략)

낮에 그 교육을 받으러 회사에 가자면 진짜 어디서 차라도 한 대 인도로 돌진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어. 차에 치여서 팔이나 다리라도 부러지면 좀 쉴 거 아냐

​아… 한국에서의 생활….뭐….누구나 느끼는게 아닐까. 누구나? 라고 말하기엔 너무 광범위한가. 그럼 적어도 나는 이라고 고쳐야겠다. 적어도 나는 느껴본 거니까.

여기서 계나는 지명이란 남자친구가 있는데 남자친구는 계나가 떠나던 때 기자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계나를 붙잡고 싶어했지만, 자신의 상황이 불안하기에 섣불리 단호히 잡을 수 없었던 지명

그가 그녀에게 말한 이야기는 호주가 생각보다 힘든 곳이다. 우리나라 행복지수 순위가 얼마나 높은지 아냐 이런류의 대화를 하며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노력을 한다

아니 난 우리나라 행복지수 순위가 몇 위고 하는 문제는 관심 없어. 내가 행복해지고 싶다고. 그런데 난 여기서는 행복해 질 수 없어.

이렇게 단호히 말하고 떠나는 그녀는 처음에 호주에 어학원에 있다가, 회계학 자격증을 따기 위해 대학원을 가게 된다.​ 그러면서 틈틈이 돈을 벌기위해 초밥집 , 음식점에서 일도 하고 좀 더 돈을 모으면서 셰어 하우스 부운영자까지 하게 된다.

그러면서 호주에서 그녀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많은 경험을 하게 되는데, 어떻게 보면 금융회사 다니며 지옥철을 눈물흘리며 다녔던 그때랑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다를게 없는 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호주에서의 생활을 서술할때는 한국에서의 태도와 매우 다르다는걸 느낄 수 있다.

그 이유는 뒤에 계속 보다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해 봤어. 나는 먹는거에 관심 이 많아서 맛있는 음식이랑 과자를 좋아하지. 또 술도 좋아해, 그러니까 식재료랑 술값이 싼 곳에서 사는게 좋아 그리고 공기가 따뜻하고 햇볕이 잘 드는 동네가 좋아. 또 주변 사람들이 많이 웃고 표정이 밝은 걸 보면 기분이 좋아져. 매일 화내거나 불안해 하는 얼굴들을 보면서 살고 싶지 않아.

그런데 그게 전부야 그 외에는 딱히 이걸 꼭 하고싶다든 가 그런건 없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아는건 ‘무엇을’ 이 아니라 ‘어떻게’ 쪽이야 ​일단 난 매일매일 웃으면서 살고 싶어.

(중략)

그록 나는 당당하게 살고 싶어. 물건 팔면서 아니면 손님 대하면서 얼마든지 고개 숙일 수 있지. 하지ㅏㄴ 그 이상으로 내 자존심이랄까 존엄성이랄까 그런것까지 팔고 싶지는 않아. 난 내가 누구를 부리게 되거나 접대를 받는 처지가 되어도 그 사람 자존심은 배려해줄거야. 자존시 지켜주면서도 일 엄격하게 시킬 수 있어 또 여유가 생기면 사회를 위해 작더라도 뭔가 봉사를 하고싶어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자주 접하는 얼굴들이 화내거나 불안해하는 얼굴, 그리고 피곤해하는 얼굴이 아니었을까. 모두가 너무 피곤하니 예민해지고 그러다 보니 상처를 서로 준다. 그게 일상화되면 거기에 상처받는 사람이 바보가 된다. 그정도는 무뎌져야 하잖아?라고 생각하는 사회분위기가 계나한텐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존엄성, 자존심 이야기- 이것도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지켜지기 힘든 하나의 것이 아니었나 싶다. 여성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존엄성? 자존심? 이런건 사실 가져봐야 불필요한 것들 1순위가 아닌가. 오히려 갖고 있으면 상처만 더 받고 정만 더 맞고, 모난 돌이 되어버리고.. 여기서 보면 호주에서는 상사가 밑에 사람에게 일은 시키되, 그 시키는것을 요구하고 그에 대한 결과물이 돌아오면 끝인 것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그 이상의 무엇을 항상 해야만 한다. 그렇게 3년을 버티다가 나간 계나는 , 아무래도 거기에서 많은 것을 느낀 것 같다.

국외자라는게 참 서럽구나, 그런 생각을 했고 나는 이곳에서는 평생 국외자게쑥나, 그런 체념도 했지. 그런데 난 한국에서도 국외자였어.

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 솔직히 나라는 존재에 무관심했잖아? 나라가 나를 먹여주고 입혀주고 지켜줬다고 하는데 나도 법지키고 교육받고 세금내고 할건 다 했어

내 고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 대한민국이라는 그 나라 자체를 . 그래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 줄 구성원을 아꼈지, 김연아라든가 삼성전자라든가, 그리고 못난 사람들한테는 주로 ‘나라망신’이라는 딱지를 붙여줬어.​

그녀에게 후회는 없었다. 오히려 너무나 견고해져버렸다. 그녀는 확실히 어느 나라도 선택하지 않는 제 3자가 되었다, 우리에게도 저 구절은 어느정도 느낄 점이 있는 부분이 아닐까. 이 책이 인기있고 지지를 많이 얻는건 이 책의 기본 주제에 다들 공감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밥을 먹는동안 나는 행복도 돈과 같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행복에도 ‘자산성 행복’과 ‘현금 흐름성 행복’이 있는거야.

어떤 행복은 뭔가를 성취하는데서 오는거야. 그러면 그걸 성취했다는 기억이 계속 남아서 오랫동안 조금 행복하게 만들어 줘. 그게 자산성 행복이야. 어떤 사람은 그런 행복 자산의 이자가 되게 높아. 지명이가 그런 예야. ‘내가 난관을 뚫고 기자가 되었다’ 는 기억에서 매일 행복감이 조금씩 흘러나와. 그래서 늦게까지 일하고 몸이 녹초가 되어도 남들보다 잘 버틸 수 있는거야.

어떤 사람은 정반대지. 이런 사람들은 행복의 금리가 낮아서, 행복 자산에서 이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이런 사람은 현금 흐름성 행복을 많이 창출해야 돼. 그게 엘리야. 걔는 정말 순간순간을 살았지.

(중략)

나는 지명이도 엘리도 아니야. 나한테는 자산성 행복도 중요하고 현금흐름성 행복도 중요해 그런데 나는 한국에서 나한테 필요한 만큼 현금흐름성 행복을 창출하기가 어려웠어 나도 본능적으로 알았던 거지. 나는 이 나라 사람들 평균 수준의 행복 흐름 으로는 살기 어렵다, 매일 한끼만 먹고 살라는거나 마찬가지다 하는걸

(중략)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지 않나. 자기 행복을 아끼다 못해 어디 깊은 곳에 꽁꽁 싸놓지 그리고 자기 행복이 아닌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는거야. 집 사느라 빚 잔뜩지고 현금이 없어서 절절 매는거랑 똑같지 뭐.​

 

​어떤 책보다 이렇게 행복을 잘 설명해줄 수 없다.

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되돌아보았다.

분명 나는 현금흐름성 행복이 강한 사람이다. 나는 과정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결과가 무엇이든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제일 싫어하는 말이 ‘참고 견디면 나중에 행복해진다’ 이다. 미래의 행복을, 언제 올지도 모를 그 날을 위해 현재 행복을 다 포기하라는 말이 제일 싫다

하지만 한국은 이러한 현금 자산성 행복보다는 자산성 행복을 더 당연하게 생각하고, 여기에 끼워맞추라고 강요한다. 현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미래를 생각 안하는 생각없는 사람으로 낙인찍는다.

그런게 싫어서 떠난게 아닐까 계나는.

그녀는 한국에 돌아와 잠시 지명과의 미래를 생각해보다 다시 호주로 떠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난 이제부터 진짜 행복해질거야. 라고

​정말 한 두세시간 집중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남 얘기가 아닌거같아서

마지막에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충만한 채로 호주에 도착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나도 나 자신에게 그렇게 명확하게 말하는 날이 왔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