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가슴 뛰는 책을 만났다. 단 한 줄도 쉬이 넘기지 않고 읽었던 것 같다. 6펜스라는 화폐의 가치는 영국에서 가장 낮은 단위로 유통되었던 은화의 값이라고 한다. 물질 세계를 뜻하는 것이 6펜스라면, 달은 닿고 싶지만 닿을 수 없는 먼 환상의 존재같이 느껴지는 그러한 몽상의 것이 아닐까. 누구나 꿈꾸지만, 사치라고 생각하는 그러한 것. 나는 단 돈 몇 푼에 갖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들을 저울질하며 결국에는 보류(포기라 말하지 않으련다)하는 삶을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언제나 달을 꿈꾼다. 여기서의 나의 달이란 토씨 하나 빼 놓지 않고 다음의 문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는 그림을 그렸고, 책을 읽었으며, 저녁이 되어 날이 어두워지면 아타와 함께 베란다에 나가 앉아 담배를 피우며 밤하늘을 바라보기도 하였다.’
스트릭랜드는 무뢰한이다.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 그는 낳아 놓은 자식에 대한 책임감도 없고 부인에 대한 염치도 없으며 심지어 자신을 도와준 이의 아내를 품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돌을 던지지는 못하겠다. 그리고 손가락질 하지도 못하겠다. 그렇다고 나의 입장이 스트릭랜드의 예술적인 과정과 결과물들이 그가 행한 사회적 부정행위들을 분쇄 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가졌다는 것은 아니다. 명확하게 이거다, 저거다 할 수는 없지만 나는 적어도 그의 인생을 욕하고 싶지는 않다. 스트릭랜드의 인생은 나같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당장에 가질 수 없는 꿈이다. 나병으로 죽은 그의 말년까지도, 나에게는 환상적으로 다가온다. 내가 품고 있는 예술가에 대한 환상도 참 말 다 한 것 같다.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한 번도 불평하지 않던… 눈이 멀어 죽기 직전까지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는 그 예술에 대한 열정은 도대체 어디서 부터 기인했던 것일까. 또 그 끊임 없음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도대체 얼마나, 죽을 만큼 사랑해야 그럴 수가 있는 것인지 나는 정말 궁금하다. 알고 싶고, 품고 싶었다.
폴 고갱의 생애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달과 6펜스를 읽으며, 고갱이라는 화가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몇년 전, 런던의 테이트모던 갤러리에서 고갱전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편협한 몇 백개의 단어들의 조합으로는 설명 못할 그 때의 그 감정들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아, 맞아. 그랬어. 이런 느낌이었어. 책을 읽으면서 그 때 타히티의 사람들을 화폭에 담아낸 그 그림들이 생각났다. 다시 보고 싶었다. 고갱의 그림들이. 그리고 스트릭랜드와는 별개로 폴 고갱의 삶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졌다. 조만간 책을 사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