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와 판타지의 외피를 뒤집어 쓴 시와 시인 이야기다.

  • SF와 판타지의 외피를 뒤집어 쓴 시와 시인 이야기다. 물론 소설 전체에서 특정 시나 시인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그가 각 단편에서 상위에 놓아두고 다루고 있는 것이 시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쓴 것이다. 표제작<누구에게나 아무 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부터 시와 시인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마이클 햄버거라는 시인과 맥도날드의 마케팅이 결합되는 과정을 허구와 사실의 적절한 결합으로 풀어낸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하는 의문을 품으면서 읽게 되는데 중간부터 묘하게 뒤틀린다. 바로 상상력이 만들어낸 재미가 넘쳐나는 순간이다. 이것은 다른 작품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논문 같은 전개나 회고 등을 통해 사실처럼 풀어내다가 비약이 이루어지는데 이때 이 소설 장르가 SF임을 알게 된다.

    시와 시인에 대한 고찰 혹은 가공의 사실을 집어넣은 <종이 냅킨에 대한 우아한 철학>은 T.S 엘리엇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놀라운 정보가 될 수 있다. 정밀하게 짜인 구성과 사실과 허구의 적절한 결합이 이런 일도 있구나! 하고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중간에 나오는 반전이다. <옛날 옛적 내가 초능력을 배울 때>는 시인이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제공한다. 불가의 일체유심조를 떠올려주는 수련법이 상상력과 맞물려 돌아갈 때 그 힘을 발휘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흔히 영화나 만화 등에서 만나게 되는 초능력이 여기서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인들이 사물의 본질을 보고 상상력을 덧붙이는 것을 보여주면서 살짝 초능력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그 가능성이 꽃을 핀다면 화자의 열망도 이루어질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생의 얼룩을 건너는 법, 혹은 시학>은 좀더 노골적으로 시인을 말한다. 은유의 의미를 말하면서 랭보를 끌어들여 간략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어 나오는 <라 팜파, 초록빛 유형지>는 시인을 등장시켜 노래하게 만들고,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현대 과학의 범주를 벗어난 상태로 전개한다. 소울마스터란 존재는 다음 단편 <돌고래 왈츠>에도 등장하는데 작가의 연작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탐색해본다. 그리고 예전에 읽었던 SF소설에서 돌고래들이 우주선을 조종했던 것이 떠올랐는데 과연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 모르겠다. 왈츠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음악이 중요한 장치인 것도 이 책에서 유일한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초설행>은 가공의 역사 속에 시인을 등장시켜 삶의 비극을 그려낸다. 인연도 사랑도 욕망도 사그라진 현실의 높은 벽은 안타까움만 가득하다.

    전체적으로 가독성이 좋다. 문장력이 있어 잘 읽힌다. 가끔 동일한 부사를 사용하는데 그것이 의도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단편들을 통해 드러난 풍부하고 다양한 지식은 상상력과 만나 멋진 이야기로 탈바꿈하였다. 진지한 설명 뒤에 숨겨진 반전과 농담은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주고 장르를 확신하게 만든다. 기존 SF와 분명히 차별된 내용은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나 장편을 기대하게 만든다. 진중한 문장을 넘어 조용히 퍼져 나오는 미래 세계는 이 작가에 대한 호평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말해준다. 작품은 탁월한 거짓으로 가득한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