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고 불편하지만 끝까지 읽게 만든다.

  • 1000쪽이 넘는 소설이다. 워낙 호평을 받은 책이라 감히 도전했다. 1주일이 꼬박 걸렸다. 어려운 책이 아닌데도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충실히 읽을 시간이 부족한 것도 하나의 이유다. 하지만 2차 대전 당시 유대인들이 겪어야 했던 비극을 알기에 무작정 달려갈 수 없었다. 그 유명한 홀로코스트가 머릿속에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 속 두 주인공 언드러시와 클러러는 조금 경우가 다르다. 낯선 유럽 역사 속에서 조금 다른 유럽을 본 것이다. 그들의 비극이 다른 곳의 비극보다 아주 조금 적다고 해도 말이다.
  • 현대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말할 때 팔레스타인을 그냥 지나갈 수 없다. 20세기 초반 그들이 겪은 엄청난 비극이 다시 재현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흔히 하는 말로 개인은 선량하고 착하지만 이들을 모은 집단이 나쁘다는 말처럼, 아니 쉽게 한국의 예비군들은 군복만 입혀놓으면 개가 된다는 말처럼 나치의 광풍은 거대하고 참혹하다. 이 소설 속에서 헝가리 군대의 모습 중 일부가 그렇다. 현대 중동은 수많은 비극을 품고 있다. 홀로코스트 산업이란 단어가 만들어질 정도의 홍보 때문인지 팔레스타인의 수난을 다룬 문학이나 영화가 등장하고 있다. 적들에게 배운 것일까? 단순히 소설에만 집중하지 못하는 나쁜 습관이 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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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헝가리 출신 유대인 언드러시는 잡지 표지를 잘 그린 것 때문에 파리 건축학교 장학생이 된다. 이 장학금은 헝가리 유대단체가 지원하는 것이다. 아직 유럽에 전쟁의 기운이 발현하기 전이기에 그에게 이 기회는 도저히 놓칠 수 없는 행운이다. 환전을 위해 간 은행에서 부딪힌 하스 부인이 그가 파리에 간다는 것을 알고 조그만 부탁을 한다. 아들 요제프에게 뭔가를 전해달라는 것이다. 며칠 동안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먼 거리를 생각하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여기에 한 노부인이 파리에서 편지를 부쳐달라고 요청한다. 이 조그만 인연이 나중에는 아주 중요한 인연임이 밝혀진다.

     

    낯선 파리. 아름다운 파리다. 하지만 불어도 제대로 할 줄 모르고 방도 구하지 못한 그에게 너무나도 낯설다. 어렵게 방을 구하고 학교에 간다. 그가 바라는 건축가의 길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서 그는 유대인 친구들을 만난다. 자신들의 모임이 시작된 것이다. 처음에 이 장면들을 보면서 살짝 반감이 생겼다. 유대인들이 너무 폐쇄적인 것이 아닌가 하고. 하지만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들이 미국에서 자신들만의 사회를 만들어 생활하는 것을 떠올리니 너무 당연한 일이다. 만약 이것을 비판하고 욕한다면 코리아타운이나 차이나타운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좋은 친구와 선생과 학교가 갖추어졌다고 삶이 행복하지는 않다. 부족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돈이다. 그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한 헝가리 유대인단체가 정부의 헝가리 유대인 해외 송금 금지로 장학금을 보낼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좋은 선생과 친구는 다른 방법을 찾아준다. 거기에 언드러시의 노력이 보태져야 한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언드러시는 기차에서 만난 유대인 노버크의 도움으로 나머지 돈을 벌게 된다. 이 직장은 그에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한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클러러다. 그녀는 가슴 아프고 참혹한 과거를 지닌 채 딸 엘리자베스와 살고 있다. 그녀를 본 순간 사랑에 빠진다. 이 둘의 강한 사랑이 시작한다.

     

    두 권으로 나누어진 이 소설에서 1권은 언더러시의 파리 생활을, 2권은 헝가리로 돌아간 후 겪게 되는 2차 대전 당시 헝가리 유대인의 삶과 비극을 보여준다. 1권에서 사랑을 시작하는 한 청춘의 고뇌와 열정이 다루어진다면 2권은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유대인의 비극이 이어진다. 다행이라면 헝가리 유대인이 상대적으로 덜 고생했다는 정도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작가가 비극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사랑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면 나의 감성이 메말랐거나 좀더 강한 자극받기를 바란 것인지 모르겠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답답한 것은 그들이 선택한 길이다. 역사의 비극을 아는 상태에서 분명하게 비극이 보이는데 그들은 사랑 때문에 가족 때문에 그곳에 머문다. 그들에게 닥쳐올 비극을 생각하면 정말 답답하다. 물론 달아난다고 그 시도가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나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의 참혹함과 나치의 잔혹함을 아는 나에게 이것은 강한 불안감을 전해준다. 혹시 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하고. 이 긴장감과 불안감이 재미있게 읽힐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다. 헝가리 유대인이란 특성 때문에 더 그렇다.

     

    비극을 알지만 다른 결말이 나오길 기대하면서 읽었다. 그 기대는 어느 정도 충족되었다. 하지만 역사가 보여준 비극을 모두 벗어날 수는 없다. 비록 헝가리 유대인이 폴란드나 독일 유대인에 비해 조금 더 나은 대우를 받았다고 해도 말이다.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르게 되면서 벌어지는 몇 가지 사건 중 하나는 완전히 예상을 벗어난다. 엄청나게 참혹한 비극이 있는 와중에도 인간을 지키려고 노력한 헝가리인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는 늘 시대의 앞잡이나 동조자가 있다. 이 때문에 생기는 비극은 또 다른 아픔이자 기억이다.

     

    정말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언드러시와 친구 멘델이 노무부대 안에서 신문을 만든 것이다. 이런 여유가 어쩌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하고 말이다. 이것도 역시 결과를 아는 사람만이 느끼는 불편함이다. 이런 홀로코스트 관련 문학은 늘 이런 불편함과 불안감을 가지고 읽을 수밖에 없다. 역사를 바로 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려준다. 가볍게 시작할 수 없는 분량에 내용이다. 하지만 읽으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작가의 고증을 통한 묘사와 서술은 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