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지만 매혹적인 책이다.

출간일 2007년 6월 20일

예상은 했지만 역시 쉬운 책이 아니다. 그의 다른 책도 일반 소설의 두 배 이상 시간을 투자해야 읽을 수 있었는데 이번도 마찬가지다. 읽을 때도 읽고 난 후도 생각한다. 왜? 그렇게 힘들게 읽히고 어려운지. 가장 큰 이유는 낯선 이름들과 지명 탓이 아닐까 짐작하여 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장면에서도 속도가 확연히 올라가지 않는 것을 보면 그의 문장 구조와 이야기 구성 때문인 듯하다. 깊이 빠져 한참 읽었다고 페이지를 확인하면 몇 장 보지 못한 것을 보면 그 속에 풍부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듯하지만 그 정확한 실체를 잡기가 쉽지 않다.

 

책을 읽다 많이 생각난 작가와 작품이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다. 가끔 카프카가 떠오르기도 하였지만 ‘율리시스’의 기분을 많이 느꼈다. 역자의 후기를 보면 나와 비슷하게 느낀 사람들이 꽤 있는 모양이다. 갈립이 도시 이곳저곳에서 뤼야를 찾아 헤매는 장면과 그 실체를 찾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몽환적인 분위기가 이런 느낌을 강하게 준 듯하다. 현실의 진행과 병행되어 나오는 제랄의 칼럼이 단서를 던져주기도 하지만 그 의미를 파악하기는 너무 어렵다. 복잡하게 와 닿는 이름과 지명과 옛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으로 섞여 그 실체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파묵의 책으로 세 번째 읽는다. 이전 책도 쉽지 않았고 지금도 쉽지 않다. 하지만 언제나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뭔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안개 속에 조용히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조심스럽게 다가가면 약간 손을 내밀었다 한 발 더 다가가면 멀찍이 달아난다. 텍스트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 하나의 틀을 만들고 기초를 다지기 전에는 쉽게 그 전체를 알기 어려운 소설이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완전한 틀을 알지 못하더라도 각 방에 숨겨진 이야기들은 매혹적이다. 매력 있는 이야기가 많지만 그것을 하나로 엮어내고 풀어내는 능력이 아직 나에겐 부족하다. 그래서 이 소설의 매력을 전부 느끼지 못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함께 자라 결혼한 아내 뤼야가 사라진다. 사촌 형이자 뤼야의 이복오빠인 칼럼리스트 제랄도 사라졌다. 주인공 갈립은 뤼야를 찾기 위해 이스탄불을 뒤지고 다닌다. 제랄과 뤼야가 함께 있다는 예감을 가진 갈립은 제랄의 칼럼을 읽고 단서를 추적하며, 나중엔 제랄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 속에 이스탄불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신화와 전설과 이야기와 문화 등으로 살을 채워 넣는다. 그리고 나타난 결말.

 

단순히 줄거리만 따진다면 별 것 없다. 하지만 그 내용을 생각하면 미로 속을 헤맨 듯하다. 이스탄불의 풍경, 소리, 냄새로 가득한 미로 같은 소설이란 문구에 딱 맞는 소설이다. 미로 찾기는 출구를 찾는 것이 주목적이지만 그 과정이 주는 어려움과 힘겨움이 재미를 주는 놀이다. 이 소설에서 곳곳에 숨겨진 이런 난관들을 즐길 수 있다면 엄청 재미난 소설이 될 것이다. 역자가 주석을 단 것을 기억하고, 소설 속 이야기와 역사를 이해한다면 아마 더 재미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에 읽어온 다른 나라의 소설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낯선 곳의 이야기다. 그들의 역사와 인물과 현재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재미를 충분히 누리기 힘든 소설인 것이다.

 

나는 아마 다음에 또 파묵의 소설을 들고 있을 것이다. 쉽게 들지는 못할지 모른다. 그 실체를 알 수 없지만 매혹적이고 이국적이며 미로 같은 이스탄불을 생각하면 반드시 그를 생각할 것 같다. 그리고 파묵의 소설을 한 번은 제대로 재미를 느껴보려고 차분히 책을 읽어나갈 것이다. 그 때도 모두를 이해하고 전체를 알지 못하겠지만 이전에 느끼지 못한 재미를 발견하고 즐길 것이다. 갑자기 이스탄불로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