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조그마한 시의 꽃이 피었다.

지금도 외우고 있는 시는 거의 없다. 얼마 전 회사 워크샵 가는 중 차 안에서 누군가 외우는 시가 있느냐가 묻기에 머릿속으로 생각해보았다. 처음에 학교 수업 때문에 읽었고, 나중엔 좋아서 읽었던 윤동주의 ‘서시’가 문득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한동안 읽지 않다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하게 기억해낼 수 없었다. 그러나 가슴속엔 그 시를 읽고 외우던 그 감정이 소록소록 되살아났다. 이 시선집의 제목처럼 가슴에 조그마한 꽃을 피운 것이다.

 

50편의 시가 담겨있다. 내가 읽었던 시는 몇 편 없다. 가슴을 울리는 시도 보이고, 시인의 감성이 나와 맞닿아 있지 않은 시도 있다. 학창시절 수업을 위해 열심히 읽은 시도 보이고, 어느 날 조용히 가슴으로 머리로 다가온 시도 눈에 띈다. 현대시의 처음부터 최근의 시까지 고루 실려 있는데 그 감성들이나 느낌이 시대의 변화와 상관없이 조용히 가슴속으로 다가온다. 전체를 이해하고 느끼지 못하는 시에선 한 문장과 표현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한 문장보다 그 전체적인 흐름과 분위기에 슬며시 빠져들기도 한다. 오래전 즐겁게 읽었고 외우려고 한 시는 옛 기억을 불러오고 새로운 느낌을 전해준다. 시가 주는 즐거움이다.

 

한 편의 시마다 붙어 있는 해설은 내가 이해하고 느낀 것들과 평론가의 시각과 비교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단순히 그 시만 해설하는 것이 아니라 간결하게 시인을 이야기함으로써 이해의 폭과 깊이를 넓혀준다. 물론 이런 작업이 선입견을 심어줄 수도 있다. 하지만 나같이 자주 시를 읽지 않는 사람에겐 많은 도움을 준다. 많지는 않지만 한때 열심히 시집을 읽은 나지만 아직도 시인들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힘겨워하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눈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빈집> 전문

 

20대의 나에게 가장 큰 충격과 영향을 준 두 시인 중 한 명인 기형도의 시다. 이제는 그때와 감성이나 삶의 이해도가 많이 바뀌었지만 그때의 감정을 되살려주기에 충분하다. 이 시 선집이 그 시절의 느낌과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 이 시처럼 곳곳에서 옛 기억과 추억을 불러오는 시들이 가득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