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인간과 사회를 관찰해서 그대로 써내는 발자크의 사실주의 소설작품, 고리오 영감.

발자크는 고전주의 작품을 조금도 차용하지 않고, 내용이나 구성, 언어에 있어서도 날것 그대로를 사용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작품이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모든것을 소설을 통해 완벽히 그려내려고 했다고 한다. <인간 희극>이라는 큰 틀 안에 모두 137편의 소설을 채우려 했는데 결국 완성된 것은 91편, 그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가 바로 <고리오 영감>이다. 각 소설들이 커다란 덩어리의 일부라는건 극 중 인물들이 다른 작품에서 다시 등장한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인물 재등장 기법)

 

이 소설은 당시 파리의 한 하숙집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장황하게 묘사되지만 비루한 하숙집 풍광, 그리고 그 곳에 사는 역시나 비루한 고리오 영감.

그는 한 때 많은 부를 소유했지만 두 딸의 허영심 혹은 본인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점점 몰락해간다.

또다른 축을 이루는 법대생 으젠, 청운의 꿈을 품고 가족들의 희망을 업은채 파리에 상경했지만 두꺼운 법전과 현란한 파리의 사교계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결국 죽음을 앞에 둔 고리오 영감. 하지만 두 딸은 찾아오지조차 않는다. 마침내 후회하고 딸들에게 저주를 퍼붓지만 그것을 죽음을 코앞에 둔 바로 그 순간이었을 뿐이다. 으젠은 끝까지 그의 곁을 지키며 사람들의 이기심과 속물성에 치를 떨지만 마지막에 다시 고리오 영감의 둘째딸네로 저녁을 먹으로 간다. 뭐지? 뒷이야기가 다시 궁금해진다. 이제 <고리오 영감>은 끝이나고 으젠 라스티냐크를 중심으로 새로운 소설이 시작될것만 같다.

 

사실 읽으면서 조금 지루했었다. 단순한 핵심에 다다르기 위해 지나치게 먼 길을 빙빙 도는 느낌이 나를 지치게 했다. 하지만 해설을 읽고, 다른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결 의미있는 작품으로 다가왔다. 멜로드라마적 비극성과 인간사의 희극성이 잘 표현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비극적인 내용을 묵직한 비장미없이 우스꽝스럽게 그린 느낌이다. 작품 속에 매력적인 범죄자로 등장하는 보트랭의 뒷이야기도 궁금해진다.

 

*책 속에서

 

“인간들은 악덕은 용서하면서도 어떤 인간의 우스꽝스럽고 이상한 짓은 용서하지 않는 법이다.”

 

“어쩌면 진정한 겸손이나 무기력 또는 무관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에 고통받는 사람에게 계속 참으라고 하는게 인간 본성일까?”

 

“결국 그는 그녀에 대해서 이치를 따져주는 역할을 할 힘과 그녀 마음을 언짢게 할 용기와 그녀와 헤어질만한 덕성도 없었다.”

 

“…모르는 사람을 도와주어서 자존심을 만족시키는 사람들도 있다. 즉 애정의 원이 자기들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덜 사랑하게 되고, 멀어질수록 더욱 친절해진다.”

 

“자기 견해를 절대로 바꾸지 않는다고 자랑하는 사람이란 항상 외곬에 빠진 사람이고, 자신이 절대로 실수하지 않으리라고 믿는 바보일세. 원칙이란 결코 없네. 단지 사건들만 존재한다네.”

 

“파리라는 좋은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의 하나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태어나서 살다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이오. 그러니 이러한 문명의 혜택을 누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