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에 이 작품을 영화로 먼저 만났다. 지금 기억에 남기로는 여자 주인공의 강렬한 눈빛과 함께 어두침침한 배경 그리고 좀 야했다는 것밖에 없다.

40대 초반이 되어 원작 소설을 읽게 된 지금은 그때 느꼈던 거랑 많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이것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의도대로 변모된 탓도 있겠고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하는 생각에 주름과 기미 걱정에 빠진 요즘의 나에게 조금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15살의 프랑스 소녀가 메콩 강을 건너는 나룻배 위에서 턱을 괴고, 초가지붕 나뭇단 익사체 호랑이 물소 등등이 들러붙어 만들어진 히아신스 섬 같은 덩어리들을 몰고 가는 물살을 바라본다. 민소매에 등과 가슴이 패인 생사 원피스에 펠트 모자를 쓰고 파우더와 립스틱으로 화장을 한 소녀에게서 예쁘진 않아도 사람을 끄는 매력 같은 게 느껴진다.

리무진을 탄 부자 중국인이 그곳에서 그녀에게 반하고 그녀도 그가 싫지 않은 눈치다.

그들은 그 뒤로 중국인 거리의 어두침침한 숙소에서 은밀하게 만나기 시작한다.

그녀가 그에게 ‘날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습관적으로 다른 여자들에게 하는 것처럼 대해 달라’고 말하자 그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다 괴로워한다.

 

 

이런 그녀를 20대의 나는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저 그런 영화로 남았는지 모르겠다. 물론 지금도 그녀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녀의 상황들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머나먼 타국 베트남에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큰아들만 바라보는 엄마는 우울증과 정신질환을 앓고, 큰오빠는 마약과 노름 그리고 포악하고 잔인하다. 작은 오빠는 그 밑에서 힘겹게 살다 병으로 죽었고, 그리고 이런 상황들을 지켜보며 지냈을 그녀 또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차라리 중국인 남자와 도망이라도 가버렸다면 그녀의 삶이 더 나아졌을까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얇은 책 두께와 달리 읽고 나서 잔잔한 파도 같은 여운을 계속 주는 작품이다.

소녀의 개성강한 옷차림과 함께 나이답지 않은 노숙함이 보이는 얼굴이 머릿속에 남아, 왠지 애처롭고 불쌍하단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