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나라 쿠파] 현실을 잊게하는 이상한 나라의 신기한 모험, 그래도 나 돌아갈래~~~

#1. 어디선가에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야기들이 잘 섞여 있는 묘한 매력의 이야기
 
   소설에 대한 저의 짧은 식견과 경험에 ‘이사카 코타로’라는 이름 따위는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사신의 7일]이 출간되면서 아내가 관심을 보이는 바람에 덩달아 기존작 [사신치바]를 비롯 [골든 슬럼버]까지 책만 모아놓고 ‘읽어봐야겠다’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 와중에 뜻하지 않게 [밤의 나라 쿠파]를 통해 이 작가를 먼저 접하게 되었습니다. 전혀 아는바는 없지만 ‘캐릭터 묘사가 뛰어나다!’, ‘독특한 세계를 이야기하고 뜨거운 반응을 받아왔다’ 뭐 이정도로 대충 알고 있었습니다.
 
   [밤의 나라 쿠파]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역시나 ‘독특하다’였습니다. 그러면서 묘하게도 ‘이거 이거 독자라면 누구라도 금새 눈치챌 만큼 익숙한 이야기들을 차용해 그야말로 능청스럽게 접붙여 놓았구나’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막연하게는 이야기 자체가 굉장히 우화스럽습니다. 아니 뭐 우화라고 해야될 것 같습니다. 고양이 세계가 나오고, 쥐들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다 나무가 돌아댕기는 설정까지 있으니 ‘우화’가 아니라면 이상할 지경이죠. 거기다 아무렇지도 않게 걸리버 여행기도 슬쩍 끼어들었습니다.
 
   이런 식의 대담한 구성이 위화감이 전혀 없이 읽힌다는 것에서 작가가 얼마나 능청스러운지, 창조적 능력 혹은 작가적 역량이랄까? 그 탁월함이 얼마나 대단한지 [밤의 나라 쿠파] 한 권으로도 충분히 맞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식의 스토리가 어색하지 않고, 억지스럽지 않다니 감탄할 수 밖에요. 심지어 저는 이런 류의 이야기가 취향에 그다지 맞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거참, 묘한 매력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2. 지배 하는 자와 지배 당하는 자, 그 해결되지 않는 부조리를 말하다.
 
   한 편의 이야기 속에 인간사의 변하지 않는, 바꾸기 어려운 부조리에 대해 은유하는 것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서 지배 하는 자와 지배 당하는 자 간의 원초적인 속성, 인식조차 못하고 저지르는 부당함에 대해 무척이나 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권력을 가지고 싶어하지만 재미있게도 정작 권력을 손에 넣은 입장이 되면 태초에 태어나면서부터 ‘내츄럴 본 권력자’ 인냥 당연히 여기기 마련입니다. 이런 발상은 나의 권력 발현으로 인해 받게 되는 타인의 크나큰 피해에 대해서도 역시 당연시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게 됩니다. 더우기 안타깝게도 당하는 피권력자 입장도 마치 원래 그래왔던 것처럼 부당함을 느끼는 방향보다는 원래 그러려니 하고 수긍하는 방향으로 적응하게 됩니다. 이런 현상도 일종의 인지부조화 현상이겠죠.
 
   이 이야기의 주 무대인 “밤의 나라”의 주민들도 그들을 점령한 소수의 “철의 나라” 병사들 앞에 쉽사리 맞서지 못합니다. 가능한 내 문제가 아니라면 침묵하려 합니다. 이 와중에 이상적인 지도자처럼 추앙받고 신뢰받던 그들의 리더이자 권력자 칸토는 사실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온 국민을 희생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가지고도 그저 아닌 듯이 잘 포장하고 있는 보잘것 없는 자질의 권력자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이는 ‘밤의 나라’의 사정일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도 별반 다를 것 없는 상황인 듯 합니다.
 
   한편 늘 고양이에게 희생 당하는 존재인 쥐들은 우연한 계기, 즉 ’멀리서 온 쥐’의 등장과 조언으로 생각을 바꾸게 되고 급기야 고양이에게 당연시하던 가학적 태도를 바뀌어 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릅니다. 언듯 보면 새롭고도 의식있는 행동으로 보여집니다만 고양이 톰이 그것은 본능이고 약속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입장을 밝히자 그렇다면 쥐들 중 일부를 내어줄테니 마음대로 하고 나머지(리더 쥐를 포함한)는 건들지 말아달라고 재차 협상합니다.
 
   저자는 이 우화같은 이야기를 통해 ‘사람이나 쥐나(개나 소나 말이나 닭이나 어느놈 할 것 없이) 타자를 희생시켜 나의 안위를 확보하겠다는 이기적인 입장은 똑같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은유를 통한 사회고발이랄까? 뭐 그런 느낌으로 말이죠.
 
 ”바로 그거야. 누구든 자기보다 작은 존재에 관해서는 의식이 흐려지기 마련인지도 몰라. 배짱을 부리자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우리도 너희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어. 하지만 누구나 자기가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며 살고 있는거 아닐까.”p217~8 
 
   이 짧은 상황속에서도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약자가 한편으로는 또 강자가 되는 갈등의 역학에 대해 치밀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쥐들이 고양이들의 부당한 공격에 의한 동족 쥐들의 죽음을 막고자, 고양이와 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덫을 만드는 식물을 뽑는 과정에서 벌레의 집을 부서뜨리고 그로 인해 원래 쉬어야만 하는 잠복기에 벌레들이 이례적으로 나돌아 다니게 됩니다. 벌레 입장에서는 바로 그 쥐들이 쥐들에게는 고양이가, 고양이들 입장에서는 인간이, 인간 입장에서는 큰 나무 쿠파가 그들을 위협하는 강자가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인간들의 위협인 큰 나무 쿠파는 심지어 인간들의 지도자가 만들어낸 지배장치에 지나지 않기까지 하죠. 흥미로운 이야기속에 실로 무서운 이야기들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3. 현실은 언제나 행복하지만은 않아, 그래도 우리가 딛고 살아야만 하는 곳이지…
 
   믿고 있던 부인에게 팽당한 주인공은 그야말로 평범한 공무원입니다. 저도 비슷한 입장에 놓여 있기는 하다보니 제 입으로 할 말인가 싶기는 하지만, 과연 오늘날 평범한 공무원이 평범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평범을 넘어 부러운 존재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주인공 설정이라면 일용직이거나 계약직이거나 비정규직이거나 뭐 이런 저런 좀더 어려운 환경의 주인공이어야 하지 않나.. 그래야 작금의 현실사회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인공의 직업이 뭔가가 중요한 설정은 아니므로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인간’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자면 뜬금없이 배를 타고 현실인지 꿈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묘한 나라에서 휘말리는 이야기는 마치 현실속의 강한 충격과 좌절을 맛 본 인간이라면 누구나 쉽게 취할 수 있는 현실도피적 태도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좀더 실용적으로 보면, 게임이나 영상 등의 가상세계에 빠져있는 태도나 더 나아가 책 읽기에 집착하는 것도 큰 틀에서는 현실도피의 일종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아직까지는 현실이 행복한 쪽에 훨씬 가깝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만, 대체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이 일반적입니다. 다행이도 현대는 우리가 현실을 회피하기에 좋은 다양한 수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현실을 직면하기를 피하고 있기도 하고, 현실과 이상을 왔다갔다 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이런 방식이 결코 나쁘지만은 않은 것도 같습니다만 이 작품의 말미에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은 조금 위험합니다.
 
“나는 밤이 되면 혼자 위를 향하고 누워서 드넓은 하늘과 반짝이는 별빛을 만끽했다.” p518
 
“구멍을 파든, 물건을 들어 올리든 “대단해. 대단해.” 하고 감격하고 감사하고 의지하는 바람에 나도 썩 싫지 않은 기분이었다. (중략) 아이들로부터 듣는 칭찬이 기쁘기도 했다.” p519
 
“갑자기 톰이 “이걸 타면 돌아갈 수 있지 않아?” 하고 말하는 것을 듣고 처음으로 ‘돌아간다.’라는 선택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렇구나. 돌아가는 길도 있구나.”하고 중얼거렸다.(중략) 나는 돌아갈 나의 집을 떠올려 봤다. 가족에 관한 생각은 한동안 머리속에서 사라지고 없었다.(중략) 정신을 놓지 않도록 뇌가 잊으려고 했던 건지도 모른다.” p525
 
   아무리 여행이 즐겁고 여행지가 아름다워 만족스러워도 우리는 결국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떠나 있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렵고 집에서의 일상생활은 더욱 힘겨워 질 수 있습니다. 적당히 나갔다가 적당히 돌아오는 것.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내 삶의 터전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참, 재미없기도 합니다. 바람핀 아내에게 돌아가는 주인공에게 변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신기한 경험을 통해 내면의 변화가 약간은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재미있으나 없으나 신비로운 모험을 떠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바로 돌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