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가

배삼식
출간일 2020년 2월 21일

단순히 제목이 귀엽단 이유로 ‘벽속의 요정’을 읽고 엄청난 감명을 받아 배삼식 작가의 책을 눈에 띄는 대로 사모으고 있다. 이 책은 희곡이다. (당연함. 사실 배삼식 작가님은 극작가시다.) 희곡이란… 국어교과서에 등장하면 반 친구들이 역할을 나눠서 낭독을 했던 추억 이후로는 내 독서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는데, 한참이 지난 지금, 생각보다 거부감 없이 읽혀서 오히려 놀랐다. 무대나 의상을 설명해주는 보조문들이 머릿속 상상을 구체화시키며 몰입도를 높인다. 인물들이 헷갈릴 법 하면 앞으로 넘어가 요약된 인물소개를 다시 한 번 보면 된다. 이토록 편리한 독서법이라니. 왜 진작에 희곡을 보지 않았나 의문스러울 지경이었다.

다만 화전가의 배경은 40년대 안동이기때문에 옛 말투와 안동사투리가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나는 사투리를 쓰지 않지만 대충 문맥으로 내용이 파악가능했다. 어머니의 환갑을 맞아 오랜만에 고향집에 집결한 가족들의 이야기인데, 본가와 떨어져 지내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공감가는 부분도 있고 그 가족의 분위기가 잘 느껴져서 어딘가 몽글몽글 촉촉해졌다. 세 딸과 두 며느리, 집안일을 도왔던 두 가정부까지 여성들이 모여서 환갑 기념으로 화전놀이를 가기로 결심한다는게 너무 귀엽고… 힐링 그 자체이다. 인물들의 대화에 자연히 드러나는 서사도 인상적이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다양한 감정이 표현된다는게 재밌었다.

벽 속의 요정이나 먼 데서 오는 여자만큼 슬프진 않네~~ 하고 보다가 결말을 보고 이 극의 배경이 된 날짜를 봤다가 별안간 오열하는 사람이 됐다. 정말 너무하세요들…. 결말을 곱씹으며 다시 읽으면 아마 벽 속의 요정보다 더 슬플 것 같다. 벽 속의 요정이 내내 슬프다 그래도 행복엔딩으로 끝난다면, 화전가는 반대로 내내 은은한 행복을 주다가 핵폭탄 슬픔엔딩을 맞는다. 부디 날짜를 자세히 보며 이 책을 읽고 하이킥 마지막화 본 사람 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