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에 들어갈 때마다 눈에 밟히는 책이 있었으니, 바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다. 위풍당당하게 2권이 정면으로 딱! 매번 읽어야지, 하면서 애써 외면했던 지난날. 이유는 전에 읽다가 몇 장 못 넘기고 바로 치웠던 못난 기억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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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말은 또 왜 이리 어려울까. 발음도 힘든데 주인공 이름만 3개가 등장한다. 라스콜니코프, 로디온, 로쟈. 하나로 통일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책장 한 면에 이 3개의 이름이 중구난방 쓰인다. 뉘가 뉜지 갈등하다가 문맥과 정황으로 스토리를 꿰어야 하는 “매우 적극적인” 독서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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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연체의 글로 해설, 등장인물의 대화가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진다. 호흡이 매우 길어 중간에 끊어보지만, 잘못 끊었다가 앞장을 다시 읽어야 할 수도 있다. 반면 오롯이 책에서 느껴지는 정서는 독자에게 그대로 전이된다. 마치 현장에 있는 것과 같은, 내가 등장인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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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제목을 <죄와 벌>로 지었을까. 작품은 단순한 범죄, 처벌을 넘어선 인간의 본성, 도덕성, 자유 의지, 구원 등과 같은 문제를 탐구한다고 한다. 로쟈는 끝까지 자신의 살인죄를 인정하지 않고, 나폴레옹과 같은 비범한 자가 되지 못한 것 자체를 괴로워한다. 나는 그에게 일어나는 내적 고통, 심적 혼란 등이 물리적인 징역형 이외 받은 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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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냐는 로쟈와 여러모로 대비되는 인물이지만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는 면에서 동질감이 느껴지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들은 살인자와 창녀라는 무자비한 밑바닥 어딘가에 있지만, 소냐의 끊임없는 희생으로 ‘구원’이라는 한 줄기 빛을 보며 작품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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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죄와 벌은 무엇일까. 나는 작품에서 말하는 초인이 아니므로, 규범적인 양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죄라고 할 수 있다. 이 죄의 범위는 윤리적인 ‘죄’와 사건을 직접 저지르는 ‘범죄’로 나뉘므로 일상에서 흔히 발생하는 전자 측을 범죄까지 아우르는 죄라 생각한다. 이를 어겼을 경우 지배당할 죄의식, 고통이 곧 가혹한 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