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은 생활고에 시달리던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 노파를 죽이기까지 많은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현실의 살인으로 옮기게 되면서 시작된다. 이런 도입부는 어떻게 보면 의아하다. 로쟈는 선량한 의인으로 그려지는 보통의 주인공이 아니라 노파를 죽일 살인자로 묘사된다. 그럼에도 그는 술집에서 만난 관리와 가족들에 대한 연민을 갖는다. 살인을 계획하지만 단순한 욕망을 위해, 또는 쾌락을 위해서는 아닌 입체적인 인물 묘사에 감탄하게 된다. 그는 노파를 죽인 이후 범행현장에서 운좋게 도망치는데, 그 후로 묘사되는 그의 괴로워하는 심정이나 생각을 보면 그는 당장 그 현장에서는 도망쳤으나 노파를 죽였다는 죄의식에서는 도망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죄의식은 사람의 양심 같은 것이라서 늘 따라다닌다. 그리고 아마도 라스콜리니코프가 공무원의 집에 돈을 두고 온 마음과 같은 뿌리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 책은 1·2권으로 나누어진 장편 소설이지만 그가 노파를 죽이기 위해 고민하고 실행에 옮기는 내용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별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는 못한다.대신 노파를 죽인 후 라스콜리니코프를 쫓아다니는 죄의식과 그것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이야기가 오래 진행된다. 그것이 그에게는 일종의 벌이나 다름없었지 않을까?
이야기의 끝에서 살인자 라스콜리니코프를 자수하게 만드는 것은 소냐라는 여성이다. 소냐와 같은 상황에서 양심과 선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란 현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그런 현실을 염두에 두고 글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소냐를 존경하게 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수하는 순간까지도 살인 자체를 죄라고 여기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생각하는, 살인을 저질러도 되는 ‘비범한 인간’으로서의 태도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 뿐이다. 아마 그의 이러한 생각 때문에 소냐나 포르피리같은, 정의는 그것 그대로 정의이며 죄는 어떤 명분이 있어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들과 주인공 간의 끊임없는 갈등이 이어졌을 것이다.
소냐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죄와 벌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지극히 당연하고도 상투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과 헌신을 통해 타인의 삶을 회개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라스콜리니코프도, 술집에서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도 만약 어떤 사람을 죽여서 얻는 이득이 그 사람이 살아 있어서 생기는 이득보다 크다면, 또는 어떤 사람이 존재만으로 해악이라면 그 사람을 죽여도 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한다. 그 신념이 너무 확고해 보이고 그럴싸해서 마치 작중 세계에서는 그게 얼핏 옳은 양 그려질 때도 있다. 그러나 라스콜리니코프의 곁에는 라주미힌, 두냐, 소냐와 같은 정직하고 바른 인물들이 있고 그들로 인해, 특히 소냐로 인해 구원받는 라스콜리니코프의 모습에 그 생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시간을 많이 들여 읽어야 하는 책이지만 그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다. 죄와 벌, 사람의 본성과 가치, 목숨의 경중이나 회개와 용서에 대해 삶에서 꼭 필요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