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사람들의 중심에 서서 반짝반짝 빛나던 때가 있었다는 걸 자꾸만 잊게 된다. 끝이 없는 집안일과, 놓치면 깨질세라 꼭 안고만 있고 싶은 유리같은 아이들이 가끔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정신적 허기는 밑빠진 독처럼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겠는 때도 있다. 아이들을 키우며 내 자신을 갈아넣는 것, 전혀 아깝지 않다. 하지만 행복한 일이라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더 이상은 예쁜 것과는 거리가 먼 나를, 잘해내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 모든 일들을 자꾸만 외면하고 싶었고 그래도 자꾸 눈에 보일 땐 밑도 끝도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 나의 내면의 소리에 응답해준, 과감하고도 결단력있는 언어들투성이의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를 읽으며 한동안 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를 기르며 배우고 읽고 쓰는 삶이 나만 어려운 게 아니라 그 모든 이들도 견뎌내야했던 일이라는 점에 위로를 받았고 이 책의 주인공들이 나와 함께할 것이기에 앞으로는 외롭지 않을 것 같았다.
치열하게 읽고 쓰고 살아남았던 25명의 여성들 주인공이다. 그렇게 우리의 앞에 발자취를 남겨준, 읽고 쓰는 삶을 개척해왔던 그녀들을 과감하고 단호한 문장들로 써넣은 장영은 작가님은 그녀들과 연결해주는 영매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들의 실패를 담담하게 풀어놓고 또 그녀들의 승리를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그녀들의 삶 자체가 고난 끝에 찾아오는 승리였고, 축제였기에 그녀들을 위한 화려한 미사여구도 필요치 않았다. 존재만으로도 빛이나니까!
“난 삶을 사랑해. 비록 여기 이런 식의 삶일지라도.”라며 부유한 자들의 전유물이라는 글쓰기로 부유해진, 가난했던 프랑스 소녀 마르그리트 뒤라스, 어린 시절의 불행했던 기억을 글쓰기로 승화시켜 50편이 넘는 작품을 써낸 도리스 레싱, 매일 열 시간 이상 읽고 쓰는 일에 모든 것을 걸었던 버지니아 울프, 자신에게 닥친 불운을 새 출발의 기회로 전환시켰던 승부사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이 여성작가들은 크게 실패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에 굴복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더 크게 도약했다.
나도 나에게 지워지는 한계에 굴복당하지 않으리라, 평온하고도 안온하게 싸우고 내 삶을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134년만에 나에게 도착한 에밀리 디킨슨의 ‘세상에 보내는 나의 편지’처럼 나의 장엄하면서도 다정한 손길로 세 아이를 키워내고 끊임없이 책을 읽고 쓰고 살아가겠다. 언젠가 나도 그녀들처럼 세상에 편지를 띄울 수 있도록, 그리고 또 다른 그녀들에게도 긍정의 응답을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