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엇과 데이비드는 직장 파티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누가봐도 지극히 정상적이지만, 문란한 혼전 성관계, 이혼, 혼외정사, 산아 제한, 마약 같은 것들을 부정한 행위라 여기며 거부하는, 오늘날의 보기드문 부부다. 그래서일까, 보수적이고 답답한 사람, 수줍고 비위 맞추기 어려운 사람, 그리고 비호감 형용사들이 끝없이 이들에게 붙어 다닌다. 하지만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전통적 의미의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한 계획을 세워 나간다.
그들은 자기들에겐 말도 안되는 정원이 무성한 거대한 빅토리아풍으로 신혼집을 정했다. 이유는 자식을 많이 낳을 예정이고 아이들이 맘껏 뛰놀 수 있고, 매년 흩어진 핵가족들이 모여 파티를 즐길 수 있어야 할 공간으론 제격이고 이것이 이들이 원하는 행복한 가정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둘의 월급을 보태도 능력 밖이라는 걸 알면서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계획대로 잘 흘러가면 좋으련만 어디 그게 맘처럼 쉬운 것이겠는가. 곧 첫아이 루크가 태어나고 이 년 뒤 둘째 헬렌이, 그 후 이 년 뒤 셋째 제인이 태어났으며 그 후 삼 년 뒤 넷째 아이 폴이 태어난다. 주위 가족들의 만류에도 조언에도 아랑곳 않는 해리엇과 데이비드.
이들은 아이를 낳고 기르고 가정을 꾸리는 필요한 경제적 능력과 부모가 되기 위한 준비가 전혀 없는 상태였고, 자기들이 원하던 아이를 많이 낳는 것과 꿈꿔오던 가정을 꾸리는 것에만 급급했던 나머지 결국 데이비드의 아버지와 해리엇의 어머니로부터 경제적 지원과 가사와 육아의 원조를 받는다.
이런 와중에 해리엇은 다섯째 아이를 임신한다. 시간적 터울이 없었던 출산으로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하지만 다섯째 아이는 무언가 특별?하고 어딘가 섬뜩한 기운을 준다. 해리엇은 미칠 것 같았고 쉽게 화을 내고 심지어 뱃속의 아기가 자기에게 독을 퍼뜨린다고 중얼거리기도 한다.
그동안 네 명의 아이를 출산했지만 힘들어도 나름 잘 견뎌왔다고 견뎌냈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임신은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3개월인데 강한 태동을 느꼈고, 정확히 어떻다고 말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눈물을 흘려야 했다. 5개월이 되었을 때는 배가 부풀고 뒤틀렸다 가라앉고 태아의 힘이 워낙 커서 잠을 잘 수 없을 지경이다.
해리엇은 아이를 저주하며 진정제를 처방받아 먹는다. 그 약을 먹고 나면 한동안은 조용해졌고 끊임없이 박차고 격렬한 움직임에서 벗아날 수 있었다. 산모의 모든 생각과 음식은 태아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우리가 태교를 하는 이유도 태아에게 모든 좋은 것만 주려는 마음에서 하는 것이고 태아는 엄마의 그 모든 것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다섯째 아이가 나왔을 때의 모습은……
가히 정상적인 아이라고 보기엔 어딘가 생김새도 크기도 모든 게 기이한 모습, 정말 아이같이 생기지 않은 아이의 모습이다.
먹는 힘이 너무 세서 젖을 물리기 힘들정도이고 너무 무거워 안고 있을 수도 없고 넉달 째는 끙끙거리며 해리엇의 손을 잡고 일어서기까지??? 이 아이가 바로 다섯째 벤이다.
어느 날은 벤의 바로 위 형 폴이 벤의 침대의 보호 창살 사이로 손을 넣었는데 벤이 그 손을 움켜쥐고 폴의 팔을 창살에 대고 뒤로 꺾어버렸다. 폴의 비명이 아니었다면 아마 팔이 부러졌을 지도 모를 상황. 정상적인 아이라면 이제 막 뒤집기를 해야할 아이인데 어떻게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벤은 가족들에게 심지어 엄마인 해리엇에게도 친근감은 전혀 없고, 오히려 포악하고 잔인하다. 무엇보다 벤의 등장으로 그들의 가정생활이 파괴 되고 있다. 집안엔 어둠과 공포가 깔리고 벤의 폭력성 때문에 아이들과 부모는 위협을 느낄정도다. 사람은 누구든지 벤의 시선을 느끼고 등이나 어깨를 돌려버린다. 그 애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침묵에 잠겼고 사람들을 흩어지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들, 해리엇의 가족을 회피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점점 벤은 부모는 물론 누구에게서도 사랑은 커녕 무서운 존재로 자리 잡았으며 어느 누구에게나 위협이 될 수 있는 벤과 함께 살 자신이 없기에 그들은 의논 끝에 벤을 요양소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벤으로 인해 단란했던 가정이 박살이 났지만 해리엇은 고민 하던 끝에 벤을 요양소에서 데리고 오고, 그로인해 가족과 친척들로부터 외면 당하며 네 명의 아이들은 뒤로한채 벤만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결국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친척들집으로 뿔뿔히 흩어지고 벤은 해리엇의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더욱 신경질적이고 섬뜩한 아이로 자란다.
해리엇은 데이비드와 꿈꿔왔던 행복한 가정, 아이들을 원하는 만큼 많이 낳아 기르고 싶었던 꿈은 더이상 꿈이 아니었고, 오히려 자신으로 인해 가족들을 흩어지게 만들어 버렸다. 부모는 분명 아픈 손가락에 더 신경이 가고 쓰는 건 당연하다. 해리엇에겐 벤은 아픈 손가락이다. 하지만 그건 그냥 아픈 손가락 딱 그 뿐 이었다는 것.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되자 해리엇은 벤을 동네 건달에게 돈을 주면서까지 맡겨버린다. 그나마 벤이 마음을 연 사람이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리엇은 방관자로 행동하며 전혀 모성애가 깃든 엄마로서의 모습이 아닌, 그저 자신이 꿈꿔왔던 아내의 역할에 충실하기만 했던 것. 다른 아이들과 남편에겐 전혀 미안함과 죄책감 같은 것도 없이.
아이들을 키울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 아이를 많이 낳길 바라던 해리엇과 데이비드에게 하늘이 내린 벌이었던가.
원치도 않은 아이가, 기형아가 태어났다고 해서 방관하거나 버리는 부모는 없다. 물론 지금 현실에선 감당하기 힘들어 손을 놓는 부모들도 종종 있긴 하지만. 아이가 이상이 있으면 부모로서 최선을 다해 아이의 상태를 점검하고 특수 교육을 시키고 아이와 충분한 교감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그게 부모의 역할이자 관심과 사랑이다. 하지만 여기서 보여준 해리엇의 행동은 방관, 또는 무책임, 한마디로 양육이 아닌 사육하는 것으로 밖엔 보이지 않는다.
읽으면서 충격은 물론 아이라는 존재가 이렇게도 무섭고 공포스러울 수도 있구나를 느낀 작품이다. 사전 정보를 알고 읽었지만 직접 읽으니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고 소름도 돋았다.
다섯째 아이로 인해 끈끈한 가족애를 그린 이야기가 아닌 한 아이로 인해 그 아이에게 보여준 모성애의 파국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 한편으론 우리 부모들에게 보여주는 교훈 같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어찌보면 해리엇과 데이비드의 무분별한 가치관으로 가족 모두가 고통과 이별 아닌 이별을 맛봐야 했던, 그리고 나머지 네 명의 아이들이 받아야 했던 고통과 외로움, 부모의 사랑, 이 모든 것을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고민해봐야할 문제들인 것 같다. 짧지만 강렬하게 다가온 책.
사랑, 결혼, 가족, 모성애 등 완벽한 가치관은 없다?란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책. ^^;;;;
이 책을 읽고 나니 후속작이 궁금해 진다.
후속작 <세상 속의 벤>은 집을 떠난 벤이 그의 힘과 모자란 지능 때문에 어떻게 인간들에게 착취를 당하는지, 프랑스로 브라질로 안데스 산맥으로 끌려 다니며 자신과 같은 종족을 찾는 벤을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꼭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