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위한 열정과 현실에 대한 책임감 사이

시리즈 세계문학전집 38 | 서머싯 몸 | 옮김 송무
출간일 2000년 6월 20일

소설은 재밌어야 한다.

라는 작가의 지론대로 ‘정말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 때문에 고전산책의 첫 타자로 이 책을 선택하는 데엔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자신이 어릴 적 꿈이었던 사람은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수능 성적에 맞춰서 간 대학에서 전공한 과목에 맞춰서 자신의 진로가 결정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전공과 다른 회사에 취업을 한 사람도 간간이 보이지만. 나만 해도 어릴 적 품었던 꿈과는 다른 전공을 직업으로 삼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내가 비단 나 하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각자 다른 소망을 품은 채 힘든 현실을 버텨내기 위해서 묵묵히 일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다 갑자기 내 꿈을 위해서는 더 이상 멈춰있을 수 없을 때, 지금이 아니면 이 끓어넘치는 열정을 포효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모든 것을 다 포기할 수 있을까? 

소설 속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우리의 이러한 고민을 보란 듯이 비웃으며 타파하는 인물이다. 40대 중반의 평범한 아저씨, 증권업에 종사하던 찰스 스트릭랜드는 예술에 대한 불타오르는 자신의 열정을 해소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 그 모든 것에는 자신의 아내와 두 자식이 있으며, 적당히 사치를 부릴 만큼의 재산도 있으며, 꽤 안정적인 직장도 있다. 자신은 떠난다는 쪽지를 남기고서 그림을 그리기 위한 약간의 돈만 가지고 파리로 향했을 뿐이다. 압생트를 즐겨마시며 본인 그림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끔찍이도 싫어했다. 파리를 떠난 이후 문명 세계를 혐오하며 원시적인 타히티로 흘러가 오직 그림만을 그렸던, 죽고 나서야 예술성을 인정받은 화가. 

과연 이 인물이 소설 속에만 존재할까? 놀랍게도 찰스 스트릭랜드의 모티브는 후기 인상파 화가인 폴 고갱이다. 민음사 책 표지가 그의 그림이다. 물론 극화되면서 실제와 다른 부분도 있고 꾸며진 부분도 있다. 모티브가 되는 쪽은 소설보다 더욱더 괴팍했으며, 성격 파탄자였고, 여성 편력 또한 심했다는 것. 하지만 문명을 싫어하고 타히티로 들어가 예술혼을 불태웠다는 것은 같다.

 

책은 묻는다. 너도 스트릭랜드처럼 꿈을 좇아 현실의 모든 것을 뒤로할 수 있겠느냐고.

많은 고민이 뒤따랐지만- 결론적으로 나의 답은 ‘아니오’다.

모든 것을 버리는 선택을 하고 결국 자신의 최고의 작품을 그린 스트릭랜드의 그림에 대한 갈망과 열정에는 때때로 경외감을 느끼기는 했다. 하지만 그 열정에서 소외되어 버려진 가족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가정 안에서 그림을 그릴 수는 없었을까? 가족들이 자립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떠난 것이다. ‘쪽지’ 한 장만 남기고. 가족이라는 책임에서 자유로운 그가 오히려 이상했을 뿐이다. 또한 내가 스트릭랜드를 이해할 수 없는 데에는 윤리적인 문제도 있다.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의 부인과 눈이 맞아 불륜을 저지르고 동거를 시작하지만 곧 그녀를 버리고 만다. 그 부인은 버림받은 충격으로 자살을 하게 되는데 그에 대한 조금의 연민조차도 가지지 않는다. (작 중 여자들은 모두 사랑 ‘따위’와 세상의 환락을 쫓는 존재인 양 묘사가 되는 것이 불쾌한 점도 일부 작용했을 것이다.) 여기서 되려 내가 지극히 평범한, 윤리적인 인간임을 깨닫게 된 것도 유머라면 유머.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버릴 정도로 나를 열정에 휩싸이게 할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어느새 30대가 된 오늘, 책장에 꽂혀있는 나만의 <20대 버킷리스트>를 보며 실행하지 못한 목록이 아쉽다.

  

난 과거를 생각하지 않소. 중요한 것은 영원한 현재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