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는 여진의 이야기가 재미있었고, 영무의 이야기는 슬펐다. 영무의 트라우마 때문에 자리잡은 무뚝뚝함에 외로움을 느끼는 여진. 영무가 여진에게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그래서 자신이 이런 모습을 가지게 된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면 결말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그 둘은 어떻게 변해있었을까.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조금만 더 다가갔더라면, 조금만 더, 한 걸음만 더, 그렇게 두 걸음 더… 그랬더라면 말이다.

여진의 외로움은 이 대목에서 드러난다.

“그날 문을 두드린 사람이 석현이나 영무가 아니라 동창이나 옛 직장 동료였다 해도 여진은 흔들렸을 것이다. 눈 내리는 겨울밤이었고 그녀는 배가 고프고 충분히 외로웠으니까. 텅 빈 미용실에서 지내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지기를 기다리고, 사랑에 빠질 준비가 돼 있었으니까.”

그날 문을 두드린 사람이 석현이 아니길 바랐다. 영무이길. 영무가 문을 두드려 여진의 공간으로 발을 들여주기를 바랐다. 여진은 사랑이 필요했고, 사랑을 하고 싶었고, 사랑에 빠지고 싶었으니까. 그게 영무여야만 했다고, 나는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기억을 떠올며 그런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