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보는 헤세

전쟁이 끝나고 야기된 혼란스러움은 헤세에게도 큰 어려움이었다. 특히 그가 정신적으로 힘든 때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을 사주 만에 탈고했으며, 이는 1919년 헤세 개인적으로 더없이 소중했던 여름을 겪은 이후였다. 그 여름을 겪으며 이 책을 내겠다 결심했다고. 그것도 사주만의 탈고라니 대단하다. 이 작품 등을 쓰며 불안과 같은 부정적 감정들을 승화시키고 ‘싯다르타’를 쓸 수 있는 힘을 길렀다. 다시 있을 긴 여정을 위한 준비 작품이다. 헤세의 여타 작품과 마찬가지로 자전적 성격이 강하다.
미술 같은 예체능에도 재능이 있던 헤세는 그림도 그렸다. 오래 전 어느 헤세 미술전에서 서정적이던 헤세의 그림을 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여기, 화가 클링조어가 나온다. (헤세가 의도한 대로) 고흐와 많이 겹친다.
클링조어는 유명한 화가로서 나름의 만족스러운 삶을 보내다 문득 죽음을 느낀다. 곧 다가올 죽음과 몰락을 여름의 작품으로 승화시키며 겸허히 받아들인다. 자신만 느끼고 볼 수 있는 ‘그림자(죽음)’를 반기고 그를 향해 인사한다. 두렵지 않은 건 아니지만 죽음을 반긴다. 마지막 열정을 다 쏟아 작품을 완성한다. 그리고 몰락 이후는 당연하게도 새로운 것의 탄생이다.

당시 흐름과 함께 읽어야 좋을 듯하다. 그리고 내용과 별개로 문장이 아름답다. 클링조어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모든 문장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