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불가해함, 행위의 모순에 대하여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는 단편소설을 좋아한다. 집중력이 약하다는 것도 한몫하지만.

작가 체호프는 의사였다. 글 쓰는 데 많은 시간을 낼 수 없었고, 공부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에 틈틈이 짧은 글을 썼다고 한다. 빨리 돈을 받기 위해 빨리 끝낼 수 있는 단편만 썼던 레이먼드 카버 만큼은 아니었겠으나 생활고로 인해 단편소설 작가가 되는 경우는 꽤 있다.

체호프는 인생의 불가해함에 대해, 행위의 모순에 대해 이 책에서 이야기한다.

‘내 생각에 우리는 아는 것이 거의 없어요.’ (공포, 21쪽)

드미트리는 남들이 부러워 하는 가정을 꾸렸으나 정작 자신은 부인에게 거리감을 느끼고, 아이들을 부담스러워 한다. 앉은 자리에서 잠들 정도로 힘든 노동이 그의 일상이다. 다자이오사무의 <인간실격>에서 요조의 익살이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가면이었다면, 드미트리의 노동은 인간에 대한 불가해함을 잊기 위한 행위였다.

이 단편집에는 시종 어리석은 인간이 등장한다. 인물들의 행동이 어리석다고 끌끌 혀를 차면서도, 실상 내가 벌이는 일들도 타인의 눈엔 그렇게 비춰질 수 있다는 것. 그걸 깨닫는 순간 이 소설은 더이상 단순한 일상의 이야기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고 다른 사람도 그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어.’(베짱이, 79쪽)

단편 베짱이를 읽을 때 박범신의 소설 <소금> 속 첫 장면이 떠올랐다. 대학생이 된 아들을 둔 염부가 소금을 생산하기 위해 몸 속 소금이 부족해진줄도 모르고 쉬지 않고 일하다 목숨을 잃는 부분이었다. 어리석은 베짱이 올가는 남편의 성실성을 매력없는 평범함으로 폄하하고, 화가와 불륜을 저지른다. 남편 드이모프가 올가의 방탕함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느라 쓰러질 위기에 처한 것도 모르고 말이다.

체호프의 소설도 좋지만, 이 책의 표지 그림도 눈길을 끌었다. 레핀의 그림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는 러시아 혁명기에 멀리 떠났다 집으로 돌아온 가장을 맞는 장면을 나타냈다. 아이들의 표정엔 반가움과 당혹감이 서려있다. 등을 돌리고 있어 표정을 알 수 없는 여자가 부인일 것이다. 어쩌면 돌아오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남편을 만났을 때 아내는 어떤 기분일까. 뜻밖의 귀가는 일상을 깨는 기쁨일까, 일상이 깨진 불행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