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거짓말

거짓말 칠 줄 모르는 사람이 거짓말을 마주했을 때 보이는 반응은 보통 두 가지다. 절대 속지 않겠다고 안간힘을 쓰거나 포기한 채 그럭저럭 속거나.
속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은 한껏 키운 의심으로 상대방을 위협한다. 하지만 의심은 거짓말을 시들게 하기는커녕 더 무성하게 만들어 주는 거름이 된다.
거기에 진실에 대한 집착까지 더해지면 거짓말은 거대한 숲을 이룬다. 숲의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려고 애써 봐도 제대로 보이는 건 거의 없다.
고잣 멀리 가느다랗게 흔들리는 나뭇가지나 엷은 울음소리 정도를 마주할 수 있을 뿐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음식이 공기와 만나는 순간 썩기 시작하는 것처럼 거짓말은 감정과 만나는 순간 밑바닥부터 무너진다.
거짓말이 내려앉는 건 순식간이다. 그 자리엔 진실이 눈을 부릅뜨고 오도카니 앉아 있다. 눈을 마주치는 순간 진실은 나를 집어삼킬 것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진실을 알아서 좋을 건 없었다. 불신은 몸을 피곤하게 만들 뿐이었다. 한 번 싹튼 의심은 울창하게 자라나 시들 줄 몰랐다.
온몸을 꽁꽁 옭아맬 때까지도 성장은 멈추지 않았다.
진실을 기대했지만 몰랐더라면 좋았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때론 아닌 줄 알면서도 믿었다. 애써 믿는 척하기도 했다.
그게 훨씬 낫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차라리 최선을 다해 속는 편이 현명할 수 있었다. 사막에서 살아남으려면 곧 오아시스가 나올 거란 거짓말을 믿어야 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
거짓말을 알애챌 수 있었던 것은 의심했기 때문이 아니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거짓말을 잘 치는 사람은 절대 속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알아채더라도 잘 속아 주는 사람이 거짓말도 잘 친다.
속지 않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버려야 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
농담은 진실과 거짓말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발을 걸치고 있다. 그래서 여차하면 어디로든 도망칠 수 있는, 얼마쯤은 얍삽한 방식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
“늙었다고 잘 속는 줄 아니?”
“그럼?”
“잘 속는 사람은 따로 있어.”
“그게 누군데?”
“누구긴 누구야.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이지. 그런 사람들이 어물쩍 거짓말에 기대는 거야.”
ㅡㅡㅡㅡㅡㅡㅡㅡㅡ
숨겨야 할 건 다 드러내 버리고 정작 말하고 싶은 건 죄다 왜곡시킬지도 몰랐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진실은 만날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무도 모르는 샛길로 숨죽여 다가와 어느날 갑자기 튀어나온다.
마치 거짓말처럼.
ㅡㅡㅡㅡㅡㅡㅡㅡㅡ
치밀한 거짓말은 내가 감정을 철저하게 흉내 내고 있다고 해서 나오는 게 아니다. 이미 그 감정에 빠져들었을 때 거짓말은 보다 강고해진다.
그러니 나에게 사랑은 거짓말인 줄도 모르면서 치는 거짓말이어야 했다.
.
.
거짓말은 하는게 아니라 치는것이라 시작되는 서두의 글부터가 참 마음에 들었던 책.
책 속에는 거짓말 자격증이라는게 나오고, 2급인 주인공이 1급을 취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나, 주변에 누가 자격증을 가지고 거짓을 말하는지 혹은 진실을 말하는지 끊임없이 의심하는 모습들이 나온다.
읽는 내내 이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점점 가늠하기 어렵고 힘들어진다.
진실은 거짓이 되고, 거짓은 진실이 되는 공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네 환경들과 모습이 다르지 않다. 거짓이 아니면 살기 어려운것처럼 모두가 거짓을 진실처럼 내뱉으며, 결국은 그것의 실체가, 진심이 무엇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씁쓸함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