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책을 고르라고 하면 어릴 적 나는 항상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제인 에어를 골랐다. 처음으로 읽어본 두꺼운 소설이었기에 제인 에어를 더더욱 좋아했던 것 같다. 동물 새끼들은 처음 본 생물체를 어미로 여기고 사람들은 첫인상을 중요시 여기듯 제인 에어는 내게 첫 소설로써 내 독서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다른 좋은 소설을 읽어도 황야를 달리면서 로체스터로부터 멀어지려는 제인 에어가 생각난다. 캐릭터 제인 에어는 불타오르는 젖은 장작의 느낌이 난다. 제인 에어가 하는 행동들은 지극히 정적인데 생각과 마음은 고민과 열정이 항상 교차한다. 어릴 때 숙모와 함께 살 때의 행동만 제외하면 학교에서나 가정교사를 일할 때는 제인 에어는 침착하기만 하다. 그래서 로체스터가 불가에서 자기 이야기를 터놓으며 가지 말아 달라고 할 때 그걸 거절하는 제인 에어의 모습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그 순간이 제인 에어의 행동이 가장 클 때로 느껴진다. 사실 로체스터와 불가에서 하는 이야기가 상당히 길다. 그럼에도 중간에 힘이 빠지거나 지루하지 않다. 제인 에어라는 소설이 계속해서 관음적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기 때문에 마침내 입으로 서로를 이야기하는 부분은 강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웃긴 사실은 로체스터와 제인 에어는 소설 속에서 이야기를 오래 나눈다는 것이다. 대놓고 말동무가 되어 달라고 로체스터가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왜 불가에서의 대화가 왜 이리 다른 대화에 비해 강렬할까? 다시 생각해보면 제인 에어와 로체스터는 서로의 대화에서 무언가를 하나씩 숨기고 있었다. 그게 어느 쪽이든 말이다. 제인 에어와 로체스터의 첫만남에서 로체스터는 자기가 고용주라는 사실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제인 에어와 로체스터가 말동무가 되어 달라 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그림을 보고 피아노를 치는 장면에서는 로체스터는 제인 에어가 뭐가 숨기고 있는 여성이라고 말하고 제인 에어는 로체스터와의 대화가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로체스터가 점 보는 노인으로 분장해 제인과 이야기할 때는 자신이 로체스터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잉글램 양이 온 후에는 제인 에어는 자신이 그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숨기기 급급해하며 로체스터와 대화한다. 대화를 하고 있지만 서로 모든 걸 내려놓고 대화하지 못한 이들이 드러나 버린 사실과 무너져버린 미래의 계획 위에서 하는 첫 대화가 인상 깊지 못할 리가 없다.
제인 에어를 여러가지의 번역 버전으로 읽었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역시 처음 읽었을 때 봤던 민음사의 제인 에어다. 어떤 사람들은 그냥 유치한 로맨스 스토리라 하지만 나한테는 그 어떤 책보다 강렬한 책이다. 오늘 밤도 제인 에어를 읽고 잠에 들기 어려워하며 뒤척일 게 분명하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와 똑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