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어쩌면, 수많은 우연의 결과로 이루어진, 오직 한번 뿐인 가볍고 가벼운 것인데… 다들 지나치게 심각하게 여기고 무거운 부담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무거움과 가벼움에 대한 세계관을 결코 가볍지 않게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테레자를 사랑하지만 사랑과 성생활은 별개라고 생각하는 토마시와 그의 연인 사비나. 테레자는 토마시의 끊임없는 바람에 괴로워하고 집착하며 삶의 묵직한 무게에 짓눌려 있지만, 사비나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사람과 상황을 배신하며 삶의 가벼움을 유지한다. 두 여인의 상반된 모습이 얼핏 무거움과 가벼움의 표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혼란스러워 한다.
한 사람을 온전히 무거움 또는 가벼움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삶의 부담을 좀 더 가볍게 여겨도 괜찮다고 얘기하는 듯 했다.
꽤나 분량이 있는 책이었지만, 서로 다른 캐릭터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니 금새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가 자주 떠올랐는데, 전달하고자하는 메세지는 달랐지만 주인공들의 상황이나 성격의 설정이 꽤 비슷한 것 같았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영향을 받은 연결고리는 없는 듯 했지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무척 재밌게 읽었던 터라 비슷한 문위기의 작품을 만나서 더 좋았다. 각각 서로 다른 캐릭터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 흥미롭고 즐겁게 느껴졌다.
상당히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는데,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작가의 심오한 세계관을 말하기도 하고, 일인칭과 전지적 시점을 넘나들며, 장소와 시간이 앞 뒤 구분없이 마구 뒤섞이는 식이었다. 하지만 전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고, 막힘없이 잘 읽혔다. 실험적인 시도와 독자들이 좋아하는 느낌이 잘 어우러져 매력적인 글이 된 것 같았다.
1984년에 쓰여진 소설이니 고전이라고 하기엔 최근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고전으로 인정받는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었던 재미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