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노르웨이의 숲’이고 ‘상실의시대’라는 같은 내용의 다른 제목으로 나온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은 책 중 후반부가 지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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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타이틀이 왜 노르웨이의 숲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 검색을 했기때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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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노르웨이의 숲일때, 나한텐 단지 아주 디테일한
야한 일본 연애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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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상실의 시대’로 바뀐 순간
이 책에 나온 모든 사람들이 인간과의 관계가 끊어지거나 어떤 부분을 상실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우리들도 마찬가지 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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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지 야설이라 생각했는데 제목과 약간의 해설이 더해지니 이게 현대인의 상실감과 슬픔으로 바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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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을 때와 비슷하다. 처음 나에겐 그 책은 그냥 인간이 벌레로 변하고 결국 죽는 좀 특이한 얘기였으나 그것은 책 뒤의 ‘해설’을 통해 ‘현대인의 삶’, ‘가장으로서의 삶’으로 변했고 그것과 같은 맥락이란 생각이 든다.
이책도 마찬가지로
그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라고,
36개국 이상 번역 된 책이며 ,
전 세계 베스트 셀러가 된 이유가 있을거라며 그걸 찾아내기 위해 해설을 보고 검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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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미도리처럼 마르크스를 읽고 이해가 안된다고 스스로 받아들이는게 훨씬 본인 답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 다 읽는 책을 보고 똑같아 지려는 사람들. 그런 미도리에게 문제의식이 없다, 사회성이 결여되었다는 말을 하는 독서모임의 선배들의 말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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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소개할 때는 나를 무식하다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냥 야설이라 할랜다.
다시 읽는 기회가 있으면 또 다른게 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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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나오는 노래 몇곡을 찾아 들었는데 좋았다. 노르웨이 숲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