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절판]
출간일 1999년 6월 25일

Lolita – Vladimir Nabokov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리.타.

-17 page.

최고의 도입부로 손꼽히는 롤리타의 도입부이다. 빛, 불, 죄, 영혼은 자신이 평생을 바칠만큼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누구보다 뜨거웠던, 사회적으로는 인정받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본인이 죽음을 선물했지만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가장 잘 요약한 단어들이라고 볼 수 있다. 입 안을 맴도는 사랑에 대한 감정을 간지럽게 걸음으로 표현하고 앞니를 건드리는 관능적인 혀로 이 소설의 시작을 알린다. 롤리타란 단어가 짧은 문장에서 3회나 반복되지만 전부 다른 운율로 읽을 수 있기에 부담스럽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대상을 불러내는 첫 번째 외침, 대상을 곱씹어 보는 두 번째 부드러운 호흡, 보내지 못하겠다는 느낌으로 끊어 부르는 마지막 이름.

돌이켜보면 내 젊은 날은 달리는 전망차가 일으키는 아침 눈보라인 듯 열차 승객의 눈앞에서 흩날리는 휴지조각처럼 창백하고 반복적인 파편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훌쩍 지나가버린 듯하다.

-27 page.

아폴로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인생의 요약본이 아닐까 싶다. 나는 달리는 전망차가 아니다. 조용히 살아가고 무미의 하루를 보낸다. 내 옆을 스치는 모든 것들은 빠르게 달리는 전차에서 떨어지는 눈보라 마냥 내 얼굴을 날카롭고 차갑게 스쳐지나간다. 창백하고 반복적인 하루는 하루가 멀다하고 빠르게 지나간다.

짤막한 웃음, 단호한 말투, 그때를 그리워하며 하루에도 열두 번씩 내뱉는 거짓말

-38 page

뚜쟁이의 앨범이 내 운명의 꽃목걸이에 엮인 또 하나의 데이지 꽃이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42 page

데이지의 꽃말은 희망, 평화이다. 험버트는 결혼이라는 결심을 하면서 자신의 비정상적 성적 충동을 바로 잡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도 예감했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미친 듯이 소유해버린 것은 그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창조물, 상상의 힘으로 만들어낸 또 하나의 롤리타, 어쩌면 롤리타보다 더 생생한 롤리타였다. 그녀와 겹쳐지고 그녀를 에워싸면서 그녀와 나 사이에 두둥실 떠 있는 롤리타, 아무런 의지도 의식도 없는-아예 생명도 없는-롤리타였다.

-103 page

외부로 표출할 수 없는 상태의 감정을 내제된 목소리로 표출한다. 눈앞의 요염한 자태에 눈길이 가지만 만질 수 없었던 험버트의 감정이 잘 드러나 있다. 그녀와 나 사이의 두둥실 떠있는 롤리타라는 말은 그의 과한 상상이 만들어낸 실체 없는 사랑의 모습이라 볼 수 있다.

그날 사람들이 무릎담요를 걷어내고 나에게 보여주었을 때 그녀는 몸을 웅크린 채로, 손상되지 않은 두 눈에 검은 속눈썹이 아직도 촉촉이 젖어 군데군데 뭉쳐 있었다. 롤리타. 너의 속눈썹처럼.

- 169 page

헤이즈에게 주었던 상처를, 눈물을 알고 있지만 마음속에 진정으로 가지고 있는 사랑의 대상은 어린 롤리타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헤이즈의 속눈썹에서 롤리타의 모습을 상상하는 모습은 영화처럼 독자의 머릿속에 그려지며, 진정한 사랑은 어느 상황에서든 머릿속에 순간 떠오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우리도 사랑을 하면서 내 앞에 있는 애인의 모습에 다른 사람의 모습을 겹쳐 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경험도 하고는 한다. 마음이 떠나 버린 경우에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소설 속 주인공 험버트는 마음이 애초부터 있지 않았다. 다른 목적으로 사랑을 연기를 하였기 때문이다.

따뜻한 위로와 감사를 정신없이 주고받다가 대화를 끝내자 기계적 고장 때문인지 마치 잭팟이 터진 듯이 내가 넣은 동전이 도로 좌르르 쏟아져 나왔다. 나는 기쁨의 순간을 미뤄야 한다는 실망감에도 불구하고 하마터면 웃어버릴 뻔했다.

-172 page

신나고 기쁜 감정을 숨긴 채 연기해야 하는 사람의 심정을 잭팟이 터졌다는 말로 표현했다. 어떤 기분인지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웃음이 가슴, 목구멍, 혀를 지나 입술 바로 앞에서 참아내야 하는 상태인 것 같다.

하반신은 기뻐하고 상반신은 슬퍼했다. 욕정의 얼굴은 늘 우울하기 때문이다. 욕망은 한시도, 심지어 벨벳처럼 보들보들한 희생양을 감옥에 잘 가둬둔 경우에도 안심하지 못하고 혹시 경쟁관계의 다른 악마나 유력한 신이 목전의 승리를 무산시키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기 때문이다.

-202 page

아껴둔 것에 대한 강한 욕망은, 그것이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을 만든다. 아껴둔 것에 대해 내가 더 사랑하지 않았고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고 지켜주지 않았기에 나를 버리고 떠날 것이라는 초조함이 발생한다.

아껴둔 것, 소중한 것은 항상 내 기대를 충족 시켜주지 않고 사라진다. 있을 때 잘해야 한다. 그것이 감정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베누스가 다녀갔다.

-269 page

내 인생이 전속력으로 날아가던 중 비행기의 옆문이 벌컥 열린 듯이 암흑의 시간이 으르렁거리며 덤벼들고 매서운 돌풍이 외로운 조난자의 비명마저 삼켜버렸다.

405 page

평생을 걸쳐 원하던 님펫과의 달콤한 여정이 모두 마무리되고 떠난 님펫을 그리워하던 시간, 그 후의 일들을 겪은 험버트의 처절한 심정을 엿볼 수 있다.

이런저런 유명한 등장인물이 책의 앞표지와 뒤표지 사이에서 어떻게 변모하든 간에 우리의 마음속에서 그 사람의 운명은 이미 정해졌고, 마찬가지로 우리는 친구들고 우리가 정해놓은 이런저런 논리적, 상투적 유형에 맞게 행동하기를 기대한다. (중략) 우리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모든 것을 정해두고 어떤 사람이 그대로 고분고분 행동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만족감을 느끼는데,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만족감도 커진다. 반면에 우리가 판단한 운명에서 벗어나버린 경우는 파격을 넘어 파렴치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426 page

 

인간관계에 대한 소설가(화자 험버트가 아닌) 나보코프의 생각이 담겨있다. 나는 이 문단이 롤리타를 관통하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험버트든 돌로레스든 둘 다 이기적인 존재이다. 심지어 샬럿마저도 이기적인 캐릭터이다. 모든 캐릭터들이 타인의 운명을 정해놓고 그에 맞춰 행동해 주길 기대한다. 그로 발생하는 갈등들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라고 느꼈다.

이런 행동들은 실제 우리의 생활에 매우 밀접하게 나타난다. 친구들과의 대화 중에 회사 동료와의 토론 중에 가족과의 이야기 중에 나타난다. 그 모습들은 대하는 상대방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지만 전체적인 형태는 나보코프가 설명한 바와 같다. 서로 상대를 정해두고 그에 맞춰 행동해주길 기대한다. 기대한 대로 움직일 경우 본인은 만족스러운 표정과 함께 ‘역시’라는 생각을 품게 된다. 이 생각이 밑거름이 되어 꼰대라는 자기주장 강한 인격체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그날과 비슷한 일이 있을 때마다 롤리타의 심정은 무시해버리고 오히려 비열한 나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 내 방식이고 버릇이었다.

461 page

앞서 말한 나보코프의 이야기와 험버트의 이야기가 만나는 단락이다. 험버트는 돌로레스와 샬럿의 관계를 표상적으로 보이는 부분에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섞어 이기적으로 해석했다. 정상적인 어미와 딸이 아니라. 그로 인해 험버트는 돌로레스에게 어머니는 애증의 관계가 아닌 증오의 관계라고 해석했으며 이를 밀고 나갔다. 역시나 이기적인 캐릭터의 면모다.

<총평>

나보코프는 소설 책에 의미를 담지 않는다고 했다. 오로지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영감에 맡긴체 글을 써 나갈 뿐이라고 한다. 회화의 예술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현대 미술은 그림이 가리키는 방향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보는 사람의 마음 속에 남은 감상과 경험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소설을 어떻게 보았을까?

이기주의적인 사람들의 대화는 깊은 피로를 남긴다. 이 소설 또한 다 읽고 나니 굉장한 피로가 몰려왔다. 피로는 비단 소설에 깊게 빠져들어 읽었던 감정적인 소모에 의해서 뿐 아니라 그들의 생활 방식이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였다. 소설 속 모든 캐릭터들은 이기적인 면모를 과시한다. 험버트는 그 누구의 말도 믿지 않으며 자신이 보고 경험하고 판단한 것들을 근거로 다른 사람들을 재단한다. 돌로레스 헤이즈는 나이가 어린 캐릭터니 그러려니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도 험버트를 떠나 딕과 결혼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알래스카에서 사업을 시작한다며 파렴치하게도 험버트에게 회신 주소없는 편지를 보내 돈을 요구한다. 기대했던 돈보다 많은 돈을 수중에 얻고도 험버트를 위한 마음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어미 샬럿은 어떤가. 험버트의 첫 등장에 반해버린 샬럿은 그의 감정은 생각하지 않은채 불도저처럼 사랑을 갈구하고 비극적으로 쟁취한다.

나의 삶은 어떠한가? 나 또한 가족들과의 대화에서, 친구들과의 이야기에서, 직장 동료들과의 토론에서 내 입장만을 고수하려 한다. 경쟁사회에서 내 몫을 잡는건 내가 해야할 일이기 때문이라는 거창한 방패를 들고 말이다. 누군가가 내 의도와 다른 이야기를 하면 가슴 속의 울화가 신물처럼 올라왔다가 체면이라는 호흡이 그것을 가라앉힌다. 친구와 약속을 잡는 기준도 나의 중점으로 이야기하고 그게 안될 시에는 조금은 감정이 처지게 된다. 이런 모습들을 롤리타를 읽으며 조금은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소설 속 캐릭터처럼 비극적으로 삶을 마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롤리타라는 소설은 영어가 된다면 영어로 꼭 읽어보고 싶다. 문장과 단어를 가지고 노는 나보코프의 문체를 직접 느껴보고 싶어서 이다. 김진준 번역가가 문학동네에서 번역한 롤리타에는 많은 주석들이 있었다. 이는 소설을 읽는 내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원작에서의 장난같은 단어 유희들, 다른 소설에서 차용되어 상징하는 바를 설명해주는 것들이 소설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었다. 한국말로도 이러한 유희가 가능하다면 혹은 유희를 보여준 책이 있다면 좋겠다.

책을 다 읽고 덮자마자 드는 생각은 돌로레스가 불쌍하다. 라는 느낌이었다. 화자는 험버트여지만 험버트가 사랑해 마지 않는 돌로레스에 대한 이야기는 험버트의 험담으로 끝낼래야 끝낼 수가 없었다. 소설의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험버트에 감정이 몰입되어 돌로레스의 시큰둥한 반응들이 긍정적으로 와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설의 말미에 배부른 상태에서 험버트를 맞이하고, 비극적인 과거와 달리 새로운 희망찬 삶을 꿈꾸는 모습에서 그녀의 삶을 응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전부 표현되지 않았던 그녀는 분만과정에서 사망했다는 이야기로 마무리가 된다. 이 비극적인 결말이 오히려 더 돌로레스에게 감정을 몰아 줄 수 있었던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우리는 소설을 감정의 다양성을 느끼기 위해 읽는다. 비록 미성년자와의 비도덕적인 사랑에 대한 내용이지만 감정의 고리를 수 없이 많이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험버트의 개인적인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소설 답지 않게 주변 인물에도 감정을 쉽게 이입할 수 있었다. 험버트라는 캐릭터가 인간묘사를 잘한 덕분일까? (사실 험버트의 목소리로 묘사가 된건지, 나보코프의 목소리로 묘사가 된건지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2번 읽었지만 다음에 또 읽어 보아야 할 것 같다. 해설 부분에 이 책은 두 번 이상 읽어 봐야한다고 적혀있다. 그 이유는 험버트의 목소리와 나보코프의 목소리가 섞여있기 때문이란다.

(페이지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