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 당시 토마시는 은유란 위험한 어떤 것임을 몰랐다. 은유법으로 희롱을 하면 안 된다. 사랑은 단 하나의 은유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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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시는 테레자를 버려진 아이로 은유했다. 버려진 아이를 구한다는 것은 문명의 시작이라 생각했다. 둘의 강박에 가까운 사랑은, 둘만의 문명은 버려진 아이를 강가에서 주워 오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사랑의 시작은 무엇일까? 사랑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면 누구나 한번쯤은 던져 볼 법한 질문이다. 밀란 쿤데라 역시 사랑의 시작을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다고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곁을 스쳐 지나가는 가운데 인연이라 불리우는 사람은 어떻게 나를 찾아오는 것일까?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나타날 수 있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 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그저 침묵하는 그 무엇일 따름이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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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만 한다고 상상한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삶이 아닐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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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은 나를 지나가고 누군가와는 긴밀한 인연을 맺는다. 사랑이 시작할 때, 이 사람은 우연이 아니라는 강한 믿음을 갖는다. 만날 수 있었던 낮은 확률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필연적이었을 뿐이라고 위로한다.

사랑은 사소한 인연으로 시작되고 진행된다. 사랑이란 감정은 어느덧 익숙한 감정이 되어 초기의 살가운 느낌을 이어 갈 수 없게 된다. 사랑은 어느덧 변했다.

동정심을 갖는다는 것은 타인의 불행을 함께 겪을 뿐 아니라 환희, 고통, 행복, 고민과 같은 다른 모든 감저오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동정은 고도의 감정적 상상력, 감정적 텔레파시 기술을 지칭한다. 감정의 여러 단계 중에서 이것이 가장 최상의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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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변형은 다양하다. 정으로 불릴 수도, 동정으로 불릴 수도 있다. 이별의 상황에 다다른 남녀는 서로의 이별 후 모습을 마음껏 상상한다. 상대방은 내가 슬퍼하는 것만큼 슬퍼하고 있을 것이다. 내 슬픔이 깊을수록, 추억이 강할수록 서로에 대한 상상력은 비대해져 간다. 이 때, 서로는 동정심을 느낀다. 나도 이렇게 아픈데 너도 이렇게 아플까? 슬픈 얼굴을 하고 있을까? 밥은 제 끼니에 먹을까? 상대방을 혼자 집을 보는 미취학 아동만도 못하게 상상하고 동정한다. 그 순간 사랑의 감정은 다시금 불타오른다.

하지만 동정은 상대방이 눈앞에 없을 때만 작용한다. 눈앞에 선 멀쩡한 상대를 보았을 때 동정은 의문으로 천천히 식어가고 이따금 사랑은 변질되어 서로를 빗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