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

키니어 씨는 어떻게 생겼던가요? 조던 박사님이 묻는다.

부잣집 나리처럼 생겼더라고요. 내가 대답한다. 콧수염도 길렀고요.

그뿐입니까? 조던 박사님이 묻는다. 제대로 관찰하지 않았군요!

빤히 쳐다보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대답한다. 그리고 마차에 탄 이후에는 쳐다볼 수가 없었고요. 보닛 때문에 고개를 완전히 돌려야 볼 수 있었거든요. 선생님은 보닛 써 보신 적 없죠?

 

 

그러고 2주 동안 모든 것이 매우 평온하게 흘러갔군요. 조던 박사님이 말한다. 내 진술서를 보고 하는 말이다.

예, 맞아요. 내가 대답한다. 그럭저럭 별일 없었죠.

그런데 모든 것이라는 게 뭘 말하는 건가요? 일상이 어떤 식으로 이어졌나요?

네? 무슨 말씀이세요?

날마다 어떤 일을 했느냐고요.

아, 예전과 똑같았어요. 내가 말한다. 제가 해야 할 일들을 했죠.

미안하지만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조던 박사님이 말한다. 해야 할 일들이 어떤 거였나요?

나는 그를 쳐다본다. 그는 조그만 하얀색 네모가 그려진 노란 넥타이를 하고 있는데, 농담을 하는 게 아니다. 정말 모르는 거다. 그와 처지가 비슷한 남자들은 자기가 어지럽힌 것을 치우지 않아도 되지만, 우리는 우리가 어지럽힌 것뿐 아니라 그들이 어지럽힌 것까지 치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그들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앞날을 걱정하거나 저지른 일의 결과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잘못이라기보다 그렇게 길러졌을 뿐이다.

 

 

마음만 먹으면 그의 손으로 집은 어떻게 해 볼 수 있었다. 아무리 못해도 바닥과 계딴을 쓸고 자기 방의 가구에 쌓인 먼지는 털 수는 있었다. 하지만 숨죽인 불행의 냄새, 한풀 꺾여 느릿느릿한 퇴락의 냄새가 축 늘어진 커튼에서 풍겨 나오고 쿠션과 가구에 찌든 것은 감출 방법이 없었다.

 

 

이야기 한가운데 자기 자신이 들어가 있으면 그건 이야기가 아니라 난장이다. 음울한 포효, 앞을 볼 수 없는 상황, 깨진 유리와 갈라진 나무의 잔해, 회오리바람에 휩쓸린 집 혹은 빙산에 부딪히거나 급류에 휩쓸려서 승선한 어느 누구도 어쩔 도리가 없는 배처럼. 그러고 난 다음에야 이것이 이야기 비슷하게 된다. 자기 자신이나 다른 누구에게 이것을 들려줄 때.

 

 

신문에서는 제가 처음에 침착하고 기분이 좋아 보인 데다 눈도 맑고 초롱초롱해다고, 그걸 보면 얼마나 냉정한지 알 수 있다며 그걸 가지고도 뭐라고 했어요. 하지만 제가 흐느끼거나 큰 소리로 울면 죄책감의 표현이라고 했을 거 아니에요. 사람들은 이미 저를 유죄로 단정짓고 있었어요. 범죄를 저지른 게 분명하다고 일단 결론을 내리면 제가 뭘 하든 범죄의 증거로 해석하잖아요.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여도 불편했던 걸 보면 편안함이라는 것은 익숙함인가 봐요. 그즈음에 저는 깨끗한 시트가 깔린 널찍한 침대보다 좁은 감옥 침대에 익숙해져 있었던 거죠.

 

 

이 퀼트 패턴은 이름이 ‘천국의 나무’인데,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참 똑똑한 여자였던 것 같아요. 성서에서는 ‘나무들’이라고 하지 않아요. ‘생명의 나무’와 ‘선악과나무’, 이렇게 두 개의 다른 나무가 있다고만 하죠.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나무가 한 그루뿐이고 생명나무 열매와 선악과가 같은 거에요. 그리고 그걸 먹으면 죽지만, 먹지 않아도 죽긴 마찬가지에요. 그걸 먹으면 좀 더 유식해져서 죽는 거죠.

그런 식이 되어야 인생살이와 더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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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6부작으로 구성된 드라마로 먼저 접했다. 주연배우의 연기가 워낙 좋아서 밤을 새가며 한 번에 다 봤다. 보통 원작 소설이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재밌으니깐 이 책도 당연히 그렇겠지 생각하며 샀는데 아쉽게도 나에게는 드라마가 더 재밌었다. 책이 의외로 두꺼워서 그런지 지루한 부분도 중간중간 있어서 읽는 데 오래 걸렸다. 솔직히 박사의 어머니와 험프리 부인이 나눈 편지는 불필요한 것 같다. 박사의 근황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좀 쓸데없는 내용처럼 느껴졌다. 분명히 책은 엄청냐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닌, 그냥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하게 작가의 다른 작품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