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의 소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바나나스러운 소설. 무언가 몽환적이면서 우울하기도 하고 반면에 따뜻함도 함께 느낄 수 있는 느낌. 안개 속을 거니는 듯, 꿈을 꾸고 있는 듯하지만 다 읽고 나면 가슴 한켠에 무언가 남아있게 하는 소설이 바로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이다.
책은 굉장히 얇다. 책의 모든 내용과 요시토모 나라의 무언가 꽁해있는 표정의 일러스트들을 쭉 훑어보고 나니 책을 읽는데 한시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짧은데도 요시모토 바나나의 스타일을 마음껏 발휘한 것을 보면 그녀의 글을 쓰는 능력은 역시 대단한 듯 하다.
이야기는 주인공 미쓰코 엄마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석공일을 하던 아빠는 점점 일이 줄어가고 집안의 분위기는 점점 쓸쓸해져만 간다. 한편 미쓰코의 동네에는 아르헨티나 빌딩에 살고 있는 아르헨티나 할머니가 살고 있다. 이름이 유리라는 것과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져 있는 의문의 여인. 친구들 사이에서는 놀림꺼리, 무시할만한 꺼리고 치부되고 있다. 그런 아르헨티나 할머니와 미쓰코의 아빠가 만나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믿고 싶지 않고 부끄러웠지만 직접 유리를 만나고 그녀의 집을 방문하고, 그 옥상에서 아버지가 만들고 있는 비석을 보고나서는 모든 것이 편안해진다. 잘은 몰라도 아르헨티나 할머니의 보이지 않는 마력이 있어서가 아닐지..
바나나는 이 짧은 이야기 안에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말로 형용하기 힘든 그 어떤 것들을 굉장히 많이 담고 있다. 읽은 시간은 굉장히 짧았지만 그 여운은 책을 읽은 시간보다도 오래갔다. 논리정연하고 앞뒤가 딱딱 맞는 글들을 좋아하는 나지만 가끔 우울하고 모든 일이 엉망진창, 괴로울 때 바나나의 소설은 효과 좋은 영양제가 되어 준다. 이번에도 영양제 역할을 톡톡히 해준 고마운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