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작가와 처음 만난 ‘상류엔 맹급류’ 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묘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소설은 웬만하면 두 번 읽지 않는데 오랜만에 다시 읽고 싶게 만드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은교씨와 무재씨와 여 씨 아저씨와 전자상가와 오무사와 오래되어서 귀한 것을 오래되었다고 버리는 것과 가마와 슬럼과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주인공이 ‘오무사’라는 전구판매점을 찾아가는 과정인데 마치 물 속에 잠수라도 한 것 처럼 한숨에 읽어내려갔다. 찾아가는 길이 미로 같은게 이니라 문장과 문장의 단어와 단어 사이가 이게 참 미로 같아서 내가 지금 오무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인지 주인 노인이 전구를 고르고 있는 것인지 희고 검은 글씨들을 쫒아가고 있는 것인지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기고 있는 것인지 물속에 몸을 맡기고 있는 것인지 헛갈렸다.

언어를 낯설게 만들면서 의미를 확장시키는 문체도 인상깊었다. 눈의 가독성은 높은데 의미를 파악하는데는 다소 딜레이가 생겨 마치 몸만 저만치 앞서 뛰어가고 영혼은 그자리에 남아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특이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책을 다시 읽고 싶은 걸지도.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는데 요 근래에서야 나도 그림자가 가끔 일어서는 것 같다. 따라갈 뻔 했지만 다행이도 따라가지 않았다. 모두들 자신의 그림자가 일어섰다면 만났다면 따라가지 않도록 조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