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_무라카미 하루키_침묵은 동의를 의미했다. 그러니 그 침묵을 멈추어야 한다.

또한 다자키 쓰쿠루를 제외한 넷에게는 아주 사소하고 우연한 공통점이 있었다. 이름에 색깔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남자 둘은 성이 아카마쓰(赤松-빨강)와 오우미(青海-파랑)이고, 여자 둘의 성이 시라네(白根-휜색)와 구로노(黒埜-검정)였다. 다자키만이 색깔과 인연이 없었다. 그 때문에 다자키는 처음부터 미묘한 소외감을 느꼈다. 물론 이름에 색깔이 있건 없건 그 사람의 인격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건 잘 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애석하게 생각했고, 스스로도 놀란 일이지만 꽤 상처를 받기도 했다. 다른 넷은 당연한 것처럼 곧바로 서로를 색깔로 부르게 되었다. 아카()’ ‘아오()’ ‘시로()’ ‘구로()’라고. 그는 그냥 그대로 쓰쿠루라 불렸다. 만일 내게도 색깔이 있는 이름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수도 없이 진지하게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랬더라면 모든 것이 완벽했을 텐데, 하고


정말 쓰구루에 이름이 노랑이 있었다면 완벽한 오방색(우리나라 전통색상-흑,백,적,청,황)인데, 하고 나도 생각했다. 난 별자리의 색깔로 상처받은 적이 있었다. 그 상처를 인식하고 나도 내가 상처를 받았음에 놀았다. 나의 별자리는 전갈자리이다. 왜인지 모르지만 나의 머릿속엔 전갈자리하면 보라색이 떠오른다. 그런데 난 그 보라색과 어울리지 못한다. 사람을 12가지로 분류하는 그 별자리와 어울린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생을 살면서 그리 중요하지 않는다. 그런데  난 그 별자리가 날 받아들이지 않는 기분이 들어서 속상했다.
그래서 사소함은 그냥 사소함이 아니다. 그 아무것도 아닌 것에 사람은 자신의 존재 가치의 유무를 평가하기도 하니 말이다.

쓰쿠루는 사소함이 사소함이 아닐 정도로 그들을 정말 좋아했고, 그들이 있어 삶의 균형을 잡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해 7월 쓰쿠루의 삶의 균형은 깨졌다. 오랫동안 함께 해온 네 명의 친구들에게서 우리는 앞으로 널 만나고 싶지 않아, 말도 하기 싫어.”라는 절교 선언을 받았다. 쓰쿠루는 변명도 이유도 모른 체, 그들의 선택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대학교 2학년 7월부터 다음 해 1월에 걸쳐 다카지 쓰쿠루(多崎つくる)는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날을 기점으로 쓰쿠루의 인생은 변했다. 타인에게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무색이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색이 스스로 되었다. 그렇게 한정된 곳에 한정된 감정으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인생을 살았다.


분명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고, 그것이 나에게 일어났다는 것은 아마도 좋은 일이었을 거야. 맞는 말이야. 하지만 그랬던 만큼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 아니 거부당했을 때의 충격이 너무 컸어. 상실감, 고독감………. 그런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어.”
그렇지만 16년이란 세월이 흘렀잖아. 당신, 지금 30대 후반의 어른이야. 그때의 아픔이 아무리 컸다고 해도 이제 슬슬 넘어설 때도 되지 않았을까?.”
넘어선다.”

상처는 시간이 지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었다. 그냥 방치하면 진물도 생긴다. 상처가 마를 시간도 없이 계속 건들리면 진물에서 고름도 나오게 된다. 더 심해지면 도려내야 한다. 상처가 흉터로 남기에는 나을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마음의 상처엔 우리는 나을 시간을 주지 못한다. 그렇다고 도려내지도 못하고. 고름이 가득 찬 상태로 방치한다. 4명의 친구들 이후 처음으로 마음속에서 강하게 붙잡고 싶은 사람인 사라의 조언에 쓰쿠루는 16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상처를 돌보기 시작했다. 고름을 제거하기 위해서 먼저 고름을 짜내기 위해 노력을 해야 했다.

  몸의 중심 가까이에 차갑고 딱딱한 것이, 1년 내내 녹지 않는 동토의 중심부 같은 곳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그것이 가슴의 통증과 숨 막힘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자기 안에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여태 그는 몰랐다.
그렇지만 그것은 올바른 가슴 아픔이면 올바른 숨 막힘이었다. 그것은 그가 확실히 느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앞으로 그 차가운 중심부를 스스로의 힘으로 조금씩 녹여 내야 한다.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동토를 녹이기 위해서 쓰쿠루는 다른 누군가의 온기를 필요로 했다. 자신의 체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쓰쿠루는 16년이 지나 자신의 상처를 보기 시작했고, 느끼기 시작했다.
난 모든 사람이 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냥 자신만의 개성으로 자신만의 색과 형태로 살아간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는 부족함이 늘 있으니, 어떤 사람은 색만 있고, 어떤 사람은 형태만 있는 것이다. 쓰쿠루는 형태만 있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주위에 색만 있는 사람들이 넘쳤고, 그들에게 서로가 있어서 완벽한 관계가 된 것이 아닐까.
색은 형태가 없으면 담아내지 못한다. 어딘가 담아야 그 색이 오래가는 것이다. 형태도 색에 따라서 매력이 달라진다. 어떤 것을 담아내는 그릇인가에 따라서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부족한 자신들을 채워가면서 누군가의 온기를 필요로 하면서 살아간다.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에 휩쓸려 사라져 버리지는 않았어.
우리는 그때 뭔가를 강하게 믿었고, 뭔가를 강하게 믿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을 가졌어. 그런 마음이 그냥 어딘가로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지는 않아.


모든 것은 사라져버리지 않아. 모든 것은
나도 쓰쿠루에게 말해 주고 싶다.
넌 정말 멋지고 색채가 넘치는 다자키 쓰쿠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