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 나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올해는 정말 나와의 치열한 싸움을 하였다. 내가 모르는 내가 너무 많이 나와 당황했다. 머릿속으론 이해가 되는 많은 일들이 마음에 받아들여지지 않아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내 속에서 나에게 하고 싶은 무수한 많은 말들이 들리지 않아 괴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난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아직도 난 잘 모르겠다. 아직도 난 방황하고 힘들며 괴로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언제쯤이면 들을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 답을 아는 건 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아직도 나에게 나란 사람은 버겁다. 이젠 희망고문을 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난 살아가고 있다.

‘데미안’은 그 힘든 시간을 더 힘들게 한 책이다. 더 나에게 들어가라고 더 나의 소리를 들으라고 더 고민하고 더 생각하고 더 표현하고. 더 고독해지고 더 혼자인 시간을 즐기라고.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고, 그래야 타인도 받아들일 수 있고. 사람들과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없이는 인생을 즐길 수 없다고, 그래서 죽을 때까지 나를 찾아야한다고.

성장소설로만 알고 있던 데미안은 시간이 더해지면서 생각하게 되는 게 더 많아진다.

5년 전에 읽었을 때 느낌과 지금의 느낌이 다르듯이 5년 후에 읽으면 또 다를 것이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

 

어린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만나서 자신으로 향해 가는 여행을 시작하여 소년 싱클레어가 되었다.

싱클레어는 싱클레어 속에서 나오는 걸 알아보려고, 이해하려고, 살아보려고 노력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난 새가 꿈이고 알은 내가 가지고 있는 세계라고 생각했다. 꿈을 가지기 위해서도 이루기 위해서도 포기하기 위해서도 난 내가 가지고 있는 세계를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꿈을 향해 가는 문을 열 수 있다. 그 문의 뒤에 뭐가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문을 열지 않는다면 더 이상 앞으로 아무 곳도 갈 수가 없다. ​

“한 번 당신 자신의 마음속에서 성취를 확신하도록 그렇게 소망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성취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소망하고, 다시 후회하고 그러면서 두렵지요. 그 모든 것은 극복되어야만 합니다. ”

 “나비가 꿀 많은 꽃에 매달려 있듯 나는 아름다운 나날에만 매달려 있었다. (중략) 그 다음에는 무엇이 올까? 나는 어떠면 다시 싸워나가리라. 그리움에 괴로우리라, 꿈을 꾸리라, 혼자이어라. ” ​

난 문을 열고 아직 발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한발짝만 움직이면 다른 세상을 있다는 걸 아는데 내가 가진 세 살을 그 알을 깨는 게 참 쉽지 않다. 왜 이토록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찾을 것이다. 에바 부인이 찾은 것처럼 데미안이 찾은 것처럼 싱클레어가 찾은 것처럼.

난 데미안에게 싱클레어에게 조만가 다시 만나자고 인사했다. 그때는 그 문에서 나의 다른 세상을 소개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데미안’을 통해 내 인생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걸 느낀다. 다시 책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조금은 더 보인다.

5년뒤에 난 다시 싱클레어와 데미안을 만날 것이다.

그동안 여기에 난 무엇을 채워놓을까.

얼마나 나를 향해 가있을까.

​나도 그리움에 괴로워하고 꿈을 꾸고 혼자인 시간을 즐겨 나 자신이자 나 자신이 아닌 그를 볼 것이다.

그리고 인사 할 것이다.

“안녕!! 싱클레어, 안녕!! 데미안”